(1860-1950)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관능적, 극단적, 그리고 보수적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893: 차이코브스키가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가 울었다.
1911: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가 드레스덴에서 초연되었다. 슈트라우스는 그로부터 38년후인 1949년에 세상을 떠났다.
'장미의 기사'에서 옥타비안. 엘리나 가란차
바그너가 휩쓴 이후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답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페라의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뛰어난 작품들을 남긴 거장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오페라에 집념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30세가 훨씬 넘어서부터 겨우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아마 아버지의 성화가 큰 역할을 했다는 얘기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뮌헨궁정악단의 혼 연주자였다. 다행하게도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작곡가들이 작품을 내 놓아도 돈이 부족하여서 출판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그는 아무런 걱정 없이 자기 작품을 척척 출판할수 있었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는 데에는 그보다 좋은 방법이 없었다. 그러는중 한스 폰 뷜로브(Hans von Bülow)라는 후원자가 나타났다. 지휘자 겸 평론가였다. 그는 바그너의 전처와 결혼했던 일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한 그가 21세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마이닝겐(Meiningen) 궁정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초빙하였다. 그로부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지휘자로서의 관록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지휘하는 스타일은 별로 대단하지 않았지만 음악적 해석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를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언제나 의자에 앉아서 심심하게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살로메'. 일곱 베일의 춤
당시 대부분 독일 작곡가들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신화적인 작품을 쓰기에 바빴다. 그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 그의 아버지가 바그너 스타일을 따라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의 교향시들은 어느 스타일에도 속하지 않는 그야말로 메이드 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였다. 어느틈엔가 두 편의 오페라가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살로메와 엘렉트라였다. 신화에 기반을 둔 작품들이지만 그보다는 심리학적 통찰에 의한 작품들이었다. 언어는 응축되어 있으며 인간의 콤플렉스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음조를 따른 것이 아니라 반음계의 색채가 짙은 것들이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무절제한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 같으면서도 질서있게 정리된 것이었다.
'엘렉트라'. 시카고 리릭 오페라. 니나 스템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처음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 고전적인 스타일을 따르는듯 싶었다. Der Rosenkavalier(장미의 기사)가 좋은 예이다. 마치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물길을 따라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음악이다. 어찌 보면 이것저것을 복합해 놓은것 같다. 어떤 부분이 아리아인지 판단하기 어려운듯한 음악의 연속이다. 하지만 여기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독특한 관능미가 스며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내놓은 Ariadne auf Naxos(낙소스의 아리아드네), Die Frau ohne Schatten(그림자 없는 부인), Arabella(아라벨라) 등등은 또 다른 스타일이었다. 음악과 스토리의 오랜 갈등을 보는 것과 같은 작품들이다. 어떤 사람은 ‘대하기 불편한 중류 사회’라는 표현을 했다. 싫으면서도 빠져 들어가지 않을수 없는 그런 부류를 말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이단을 보는 것과 같은 작품들이다. 바로 이것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이다.
'그림자 없는 부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 > 고대 그리스-21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60-1915) 드빗시의 조용한 반란: 플레아와 멜리상드 (0) | 2008.03.05 |
---|---|
슈트라우스 구별하기 (0) | 2008.03.05 |
반크-반(Bánk-Bán) 아야기 (0) | 2008.03.05 |
(1820-1890) 보헤미안 라프소디: 동구의 오페라 (0) | 2008.03.05 |
(1840-1890) 차이코브스키: 진정한 열정의 표현 (0) | 2008.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