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820-1890) 보헤미안 라프소디: 동구의 오페라

정준극 2008. 3. 5. 09:39

(1820-1890) 보헤미안 라프소디: 동구의 오페라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838: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고 하는 제니 린드(Jenny Lind)가 스톡홀름에서 데뷔 연주회를 가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서 가진 비엔나 연주회에서는 30회의 커튼콜을 받을 정도로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연주회에 참석했던 마리아 테레사 여제는 자기의 꽃다발을 제니 린드에게 직접 주기 위해 몸소 무대 앞까지 다가갔다.

1841: 안톤 드보르작이 프라하부근 마을에서 태어났다.

1842: 보헤미아의 폴카가 유럽에서 대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스메타나가 오페라 ‘팔린 신부’에서 폴카를 사용한 것이 유행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1883: 뉴욕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중산층들이 아카데미 오브 뮤직(Academy of Music)의 박스 좌석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새로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의견을 모으고 80만불을 모금하여 건설했다.


베드리치 스메타나


국민주의 오페라를 완성하기 위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글링카만 이 아니다. 예를 들어 Bela's Flight(벨라의 비행)을 작곡한 요제프 루지츠카(Josef Ruzitska: 1775-1823)와 Bánk-Bán(반크 반)을 쓴 훼렌크 에르켈(Ferenc Erkel: 1810-1893)도 같은 반열에 들수있는 작곡가들이다. 반크 반은 특히 헝가리에서 찬사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안드라스 바르타이(Andras Bartay: 1799-1854)는 헝가리 최초의 오페라 코믹인 The Trick(트릭)을 남겼다. 이들과 함께 미할리 모소니(Mihaly Mosonyi: 1845-1870)와 예노 후바이(Jeno Hubay: 1858-1937)등은 벨라 바르토크(Bela Bartok: 1881-1945)가 등장할 때까지 전통음악에 기본을 둔 오페라 작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들이다. 헝가리와 함께 오페라의 세계에서 보헤미아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보헤미아는 1859년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동유럽 국민주의 오페라의 위상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나라이다. 보헤미아 출신으로 가장 뛰어난 작곡가는 베드리치 스메타나(Bedrich Semtana: 1824-1884)이다. Prodana Nevesta(팔려간 신부: The Bartered Bride)는 스메타나의 대표작이다. 스메타나는 체크 음악의 발판을 마련해 놓은 위대한 인물이다. 안톤 드보르작(Anton Dvorak: 1841-1904)의 민속 오페라인 Rusalka(루살카)도 민족음악의 기반을 다져준 아름다운 작품이다.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