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870-1930) 베르크와 쇤베르크: 표현을 위한 투쟁

정준극 2008. 3. 5. 09:49

(1870-1930) 베르크와 쇤베르크: 표현을 위한 투쟁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889: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황태자 루돌프가 애인 마리아와 함께 비엔나 근교의 마이엘링에서 자살했다. 이로서 세계역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간접적으로는 세계1차 대전이 일어났다.

1901: 미국에서 래그타임 음악(Ragtime Music)이 대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년후 관심에서 멀어지다가 1970년 폴 뉴만이 주연한 스팅(The Sting)에서 스콧 조플린의 래그타임 음악이 사용되면서부터 활기를 되찾았다.


알반 베르크


1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예술계에서는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표현이 큰 명제로 대두되었다. 이 조류의 한 가운데 있었던 것이 이른바 제2의 비엔나학파라는 대규모 서클이었다. 이 서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세명의 작곡가가 있다. 20세기 전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인물들이다. 아놀드 쇤베르크(1874-1951), 알반 베르크(1885-1935), 그리고 안톤 베베른(1883-1945)이다. 모두 독일 계통이다. 베베른은 실제로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다. 그러나 표현을 위한 투쟁에서 한몫을 했다.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1872-1942)와 프란츠 슈레커(1878-1934)의 오페라는 당시로서 커다란 연구 대상이었다. 독일에서 그런 실험적 작곡가들이 자주 나오고 있음은 철학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는것 같다. 이들은 자기 자신들의 사상을 최대한으로 완벽하게 표현코자 노력했다.

 

알반 베르크의 '룰루'. 비엔나 슈타츠오퍼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