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백년의 발자취/고대 그리스-21세기

(1880-1940) 바르토크와 코다이: 푸른 수염과 하리 야노스

정준극 2008. 3. 5. 09:50

(1880-1940) 바르토크와 코다이: 푸른 수염과 하리 야노스


[역사의 팁: 그때 그 당시]

1888: 구스타브 말러가 부다페스트 오페라의 음악총감독이 되었으나 반대 여론을 감당하기 어려워 2년만에 사임하였다.

1902: 엔리코 카루소가 축음기에 노래를 취입함으로서 최초의 레코드 테너가 되었다.


벨라 바르토크

               

벨라 바르토크의 ‘푸른 수염의 성’은 드빗시의 ‘플레아와 멜리상드’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마쟈르(항가리)의 전래 이야기에 기본을 둔 ‘푸른 수염의 성’은 ‘플레아와 멜리상드’와 마찬가지로 상징주의 및 표현주의 작품이다. ‘푸른 수염의 성’은 사이코 드라마이다. 그러나 드빗시보다 감정이 더 풍부하고 무겁다. 어떤 사람들은 바르토크의 작품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서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바로토크는 어디까지나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순전히 개인적인 발전을 이룩한 사람이다.


바르토크의 '푸른 수염의 성'. 유디트에 나쟈 미하엘 


푸른 수염’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을 매혹시킨 스토리이다. 그래서 소설, 시, 희곡, 그리고 오페라까지 나오게 되었다. ‘푸른 수염’에 대한 이야기는 실화라고 한다. 프랑스의 장군으로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길 드 레(Gilles de Rais: 1404-1440)에 얽인 비밀스럽고 신비한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로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오페라에서는 푸른 수염 공작이 자기의 부인들에게 성안에 있는 어떤 특별한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였으나 이를 어긴 부인들을 여섯명이나 살해하였고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부인에 의해서는 오히려 자기 자신이 죽임을 당한다는 스토리로 구성되어있다. 이 스토리는 1697년 프랑스의 작가 샤를르 페로(Charles Perrault)가 소설로 만들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코다이의 '하리 야노스'. 부다페스트 국립극장


한편 헝가리의 오페라는 바르토크의 친구인 코다이(Zoltán Kodály)에 의하여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코다이의 Háry János(하리 야노스)는 코미디이지만 음악적으로는 사이코 드라마인 바르토크의 작품과 서로 경쟁적 입장이었다. 불행하게도 하리 야노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당시에 푸치니의 오페라가 판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하리 야노스에서 발췌한 오케스트라 조곡은 인기를 끌었다. 하리 야노스에는 마쟈르(Magyar)적인 향취가 높이 배어있다. 코다이는 헝가리 민속음악의 채집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졸탄 코다이 기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