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니제티의 동생 도니제티 파사 (주세페 도니제티)
롯시니의 오페라에 Il Turco in Italia(이탈리아의 터키인)이란 것이 있다. 이 이탈리아의 터키인이 누구냐면 바로 오페라의 귀재 게타노 도니제티의 동생 주세페 도니제티 파사(Guiseppe Donizetti Pasha: 1788-1856)이다. 원래 이름에 파사(Pasha)라는 이름이 더 붙여진 것은 터키 음악 발전을 위한 공로 때문에 터키의 술탄으로부터 영광스럽게 받은 칭호를 간직했기 때문이다. 주세페 도니제티는 형인 게타노 도니제티보다 아홉 살 어리다. 이 두 형제는 삼촌 고리니(Gorini)로부터 처음으로 음악수업을 받았다. 동생 주세페 역시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 났다. 주세페는 열 몇 살 되던 해에 형처럼 음악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프라(Pra)음악원에 입학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서 입학할 수가 없었다. 독일 출신 작곡가로서 그 음악원의 교수로 있던 마이르(Mayr)는 어린 주세페의 재능을 특별히 생각하여서 집에 데려다가 개인 교습을 하기 시작했다. 스므살 때에 군대에 소집되어 군악대에서 플루트를 맡았다. 그는 나폴레옹의 휘하에 들어가 오스트리아와 스페인 전투에도 참여했다. 나폴레옹이 황제에서 폐위되어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주세페도 몇 명의 군악대원과 함께 나폴레옹을 따라 엘바 섬으로 갔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여 다시 황제가 되자 주세페는 워털루 전투에도 함께 참전하였다. 나폴레옹이 패배하여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다시 유배를 가게 되자 이번에는 따라 가지 않고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당시 터키에서는 술탄 마무드2세(모하메드2세)가 반대파인 극단주의 개혁파 군대를 물리치고 다시 정권을 잡고 있었다. 술탄은 터키 군대를 유럽처럼 현대화 하려고 했다. 우선 착수한 것이 군악대의 재편성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튜린에 있던 주세페 도니제티가 터키주재 사르디니아대사관 직원의 소개로 터키군악대의 현대화 교관으로 초빙되었다. 주세페가 40세 때의 일이었다. 주세페는 악보로부터 시작하여 악기에 이르기 까지 터키군악대의 모든 것을 유럽식으로 바꾸었다. 술탄군악대는 주로 로시니의 행진곡 등을 연주했다. 술탄 마무드2세는 대만족이었다. 유명한 Mahmudiye March(마무디예 행진곡)은 주세페 도니제티가 술탄 마무드2세 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마무드2세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술탄 아부드메시드가 새로운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Mecidiye March(메시디예 행진곡)는 주세페 도니제티가 신임 술탄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리스트(Liszt)도 술탄 메시드를 위해 연탄곡을 작곡하여 헌정했다. 주세페 도니제티의 명성은 날로 높아갔다. 터키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사르디니아 국왕이 주세페에게 훈장을 수여하였고 프랑스 정부도 레종 도뇌르(Legion d'Honneur)를 수여한 사실만 보아도 잘 알수 있는 일이다. 주세페는 53세 때에 터키군의 대령으로 진급하였고 이어 술탄으로부터 파사라는 칭호를 받았다. 파사는 터키의 지체 높은 귀족에게만 허용되는 명예로운 호칭이다. 그로부터 주세페는 자기 이름에 파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주세페는 유럽의 음악을 터키에 전파하였지만 반대로 터키음악을 유럽에 전달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원래 터키에서 ‘터키 드럼’이라고 부르는 악기가 유럽에 전파되어 ‘베이스 드럼’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연주도 터키식으로 했다.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은 도니제티 파샤를 모델로 삼았다는 얘기도 있다.
'이탈리아의 터키인'(바르톨리와 코르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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