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프랑스

메울, 에타안느

정준극 2008. 3. 13. 10:07
 

디바? 노 메르씨!

에티안느 메울


 

에티안느 니콜라스 메울(Etienne Nicolas Méhul: 1763-1817)은 역사적인 프랑스혁명 전야의 폭풍 속에서도 작곡가로서의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혁명에 적극 동조한 그는 훗날 나폴레옹을 위한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의 오페라계 입문은 파리에서 글룩을 만나고서부터였다. 글룩은 메울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도록 지도하는 한편 오페라를 작곡해 보도록 권유했다. 글룩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1790년에 완성되어 초연된 첫 오페라 Euphrosine는 즉각적으로 ‘브라보!’의 소리를 들었고 이어 내놓은 작품들도 모두 안타여서 전 유럽에 그의 명성이 휘날리게 되었다. 메울은 오페라 이외에도 발레곡, 칸타타, 애국적인 노래,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3편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교향곡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메울은 30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중에서 약 15편 정도는 아직도 사랑을 받아 공연되고 있다. 이들 작품 중에서 가장 성공작은 오페라 코믹인 Joseph(조셉)이다. 이 오페라는 구조에 있어서 하이든의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리듬의 움직임과 통합성은 베토벤의 G단조 제5번 교향곡과 비교할수 있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메울은 오케스트라 활용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는 바이올린보다 첼로의 역할을 강조하였으며 관악기에서는 혼(Horn)을 중요시했다. 실제로 오페라 Uthal(우탈)에서는 바이올린 파트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페라 Ariodant(아리오당)에서는 훗날 바그너의 전유물이 된 Leitmotiv (reminiscence-motif)를 바그너보다 먼저 시도했다. 베토벤이 휘델리오(Fidelio)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트럼펫의 외침, 베버의 스코어링, 그리고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는 메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헨리 4세의 사랑’도 인기였다. 그는 여성이 주역이 되는 오페라를 거의 작곡하지 않았다. 여성을 출연시켜야 하면 다만 조연일 뿐이었다. 여성은 관객 및 후원자로만 모셨다.

 

'이집트의 요셉' 그림 


메울의 오페라 수첩

● Euphrosyne(Le Tyran corrigé: 타락한 폭군. 코미디. 1790 파리 이탈리아극장) ● Stratonice(1792 파리 이탈리아극장) ● Adrien(1799 파리 Grand Opéra) ● Ariodant(1799 파리 OC) ● Irato(L'Emporté: 1801 파리 OC) ● Une Folie(A madness. 미친 사람: 1802 파리 OC) ● Le trésor supposé (Le danger d'ecouter aux portes: The Danger to Listen to the Doors. 보물찾기: 1802 파리 OC) ● Joanna(1802 파리 OC) ● Héléna(1803 파리 OC) ● Les deux Avengles de Tolèdo(Two Blind Mem of Toledo: 톨레도에서 온 두 명의 장님: 1806 파리 OC) ● Uthal 1806 파리 OC) ● Gabrielle d'Estrées(Les Amours d'Henri IV: 영국에서는 Loves of Henry IV: 1806 파리 OC) ● Joseph(1807 파리 OC) ● La Journée aux aventures(The Day with the Adventures: 모험의 날: 1816 파리 OC) ● Valentine de Milan(밀라노의 발렌타인: 1822 파리 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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