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프랑스

마이에르베르, 자코모

정준극 2008. 3. 13. 10:08
 

그랜드 오페라의 대명사

쟈코모 마이에르베르


 

‘륄리표 오페라’를 잠시 역사의 뒷전으로 흘려보내고 그로부터 2백년이 지난 18세기에는 이른바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가 출현하였다. 쟈코모 마이에르베르(Giacomo Meyerbeer: 1791-1864)는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를 주도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의 오페라는 규모가 크고 웅대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생각건대 그는 훗날 20세기 대규모 쇼 비즈니스와 스펙터클한 영화산업의 선각자였을 것이다. 그는 여러 나라의 독특한 스타일을 발췌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소화하였다. 그는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 즉 베르디와 바그너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베르디의 그랜드 오페라와 바그너의 환상적인 무대는 분명히 마이에르베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마에에르베르는 재능이 뛰어났지만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마이에르베르의 원래 이름은 야곱 리브만 베르(Yaccob Liebmann Beer)였다. 아버지 유다 헤르츠 베르(Judah Herz Beer)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설탕공장을 하여 돈을 모은 사람이고 어머니 말카 리브만 바이어 불프(Malka Liebmann Beyer Wulff)는 베를린의 유명한 상인 겸 은행가의 딸이었다. 아버지의 이름에서 볼수 있듯이 마이에르베르는 유태계였다. 마이에르베르의 큰 형은 독일에서 상당히 유명한 극작가였다. 마이에르베르의 무대 기질은 그의 형으로부터 전수 받은것 같다. 마이에르베르의 둘째 형은 천문학자였다. 1820년에 역사상 처음으로 달 지도를 그린 대단한 인물이다. 마이에르베르의 기계적 무대장치는 바로 이 둘째 형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예언자'


베를린 부근의 포겔스도르프(Vogelsdorf)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마이에르베르는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보여 독일에서 오페라 작곡으로 대성코자 마음먹었으나 생각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아무도 마이에르베르의 이름을 알아주지 않자 명성을 얻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야곱이라는 이름도 이탈리아식으로 쟈코모라고 바꾸었다. 마이에르베르는 이탈리아에서 로시니 스타일의 오페라를 만들어 냈다. 한번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점점 마이에르베르를 찾기 시작했다. 마이에르베르는 너무나 인기가 높아서 한때는 로시니의 라이벌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마이에르베르가 이탈리아에서 작곡한 Il Crociato in Egitto(이집트의 십자군)는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이 오페라의 성공은 마이에르베르를 파리로 오게 했다. 마이에르베르는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를 만들어 내는 일에 착수할수 있었다. 그로부터 마이에르베르는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바그너가 반유태주의를 내세우며 마이에르베르를 공공연히 공격했지만 마이에르베르는 ‘유치하긴! 떠들려면 떠들어라! 대결하려면 오페라로 하자!’고 하면서 관심도 두지 않았다. 마이에르베르는 고향 베를린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그는 평생 조상들이 지니고 있었던 유대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아프리카 여인'(플라치도 도밍고-그레이스 범브리)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고나면 곧 바로 그 오페라의 아리아를 따라 부르게 된다고 한다. 마이에르베르의 오페라를 보고 나면 무대 세트에 대하여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고 한다. 마이에르베르는 베토벤처럼 위대한 음악가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를 후원하는 귀족, 부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작곡가였다. 우선 그의 프랑스표 그랜드 오페라는 무대장치로서 관중을 압도한다. 무대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웅대하다. 여기에 온갖 새로운 기계 장치를 도입한다. 그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빼어 놓도록 한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초대규모이다. 마치 관중들을 날려 보낼 것처럼 엄청난 음향을 쏟아 낸다.


마이에르베르의 대표작 Les Huguenots(위그노)에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감칠듯 스며있다. 그리고 드라마는 힘이 담겨있다. 그야말로 베르디에 버금하는 무게 있는 오페라, 즉 Opera seria의 표본이다. 하지만 마이에르베르의 다른 오페라들을 보면 ‘무게가 있거나 위대하다’는 생각은 사라진다. Le Prophéte(예언자)에서는 주인공이 스케이트를 타고 발레를 하는 것 같은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우습지도 않은 예언자의 모습이다. Starlight Express(스타라이트 엑스프레스)는 마치 예언자의 후속편 같은 인상을 준다. Robert le diable(악마 로베르)에서는 옷을 벗어 던진 수녀들이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저속하고 유치한 연출이었다. 하지만 획기적이었다. 오늘날 마이에르베르의 오페라는 공연이 거의 기피되고 있다. 워낙 무대 장치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한 오페라에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의 정상급 성악가가 동시에 출연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이에르베르의 첫 오페라 공연은 그가 불과 19세 때였다. 그는 생전에 모두 22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마이에르베르의 오페라는 그가 활동할 당시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그의 Les Huguenots(위그노)는 그가 세상을 떠난후 65년 동안 파리 오페라에서 1천번이나 공연되었다. 매년 거의 20회나 공연되었다는 계산이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인 푸치니의 라 보엠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첫 공연을 가진후 100년이 지나서야 1천회 공연을 기록하였을 뿐이었다.

 

 '위그노' 초연무대 스케치


마이에르베르의 오페라 수첩

● Der Fischer und das Milchmädchen(어부와 우유 아가씨: 1810 베를린 제국오페라하우스) ● Jephtas Gelübde(1812 뮌헨 Hofoper) ● Wirth und Gast(또는 Aus Scherz Ernst) (1813 독일 슈트트가르트) ● Das Branderburger Tor(브란덴부르크 문: 1814. 베를린) ● Gli amori di Teolinda (1816. 이탈리아 베로나) ●Romilda e Costanza(1817. 이탈리아 파두아 Teatre Nuovo) ● Semiramide riconosciuta(1819. 이탈리아 토리노 Teatro Regio) ● Emma di Resbur해(1820. 밀라노 Teatro alla Scala) ● Margherita d'Anjou(1820. 밀라노 Teatro alla Scala) ● Eduardo e Cristina(1820) ● L'esule di Granata(1822. 밀라노 Teatro alla Scala) ● Il crociato in Egitto(1824. 베니스 Teatro la Fenice) ● Robert le diable(1831. 파리 Theatre de l'Opera) ● Les Huguenots(1836. 파리 Theatre de l'Opera) ● Le Prophète(1841) ● Das Hoffest von Ferrara(1843. 베를린) ● Ein Feldlager in Schlesien(1844. 베를린 Hofoper) ● Vielka(1847. 비엔나 Therater an der Wien) ● L'étoile du nord(1854. 파리 OC) ● Le pardon de Ploermel(1859. 파리 OC) ● L'africaine(1865. 파리 Theatre de l'Opera) ● Gott und die Natur(가곡적 라프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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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르 베르(Jules Beer)

작곡가 미하엘 베르(Michael Beer)의 아들이며 자코모 마이에르베르의 조카인 쥘르 베르는 1833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첫번째 오페라는 두 편의 단막 오페라인 En Etat de Siege 와 Les Roses de M. de Malesherbes 였다. 각각 1859년과 1861년에 지인들을 초대하여 개인 살롱에서 공연하였다. 다음번 오페라는 La Fille d'Egypte(이집트의 아가씨)로서 1862년 4월 23일 테아트르 리릭에서 초연되었다. 그후 그는 좀 더 그랜드한 작품에 도전하여 1871년 3월 4막의 Elisabeth de Hongrie(헝가리의 엘리사베스)를 브뤼셀의 테아트르 라 모네(Théâtre de la Monnaie)에서 선보였다. 그의 대표작이다. 쥘르 베르는 이후에도 몇 편의 대작 오페라를 발표하였으나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는 오페라 이외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칸타타 형식의 '시편 137편'으로 솔로,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규모 작품이다. 피아노 작품으로서는 La Marguerite, Le Chant des Feuile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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