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이탈리아 오페라 기수
요한 요셉 푹스
요한 요셉 푹스(Johann Joseph Fuchs: 1660-1741)는 모든 음악활동이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고 있던 합스부르크의 수도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비이탈리아 스타일의 오스트리아 음악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합스부르크 제국에 속한 스티리아(Styria)의 히르텐펠트(Hirtenfeld)에서 태어난 푹스는 그라츠(Graz)의 예수회대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본격적인 작곡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8세기 바로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서 그 이후의 여러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합스부르크의 제왕들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아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비엔나에 온 그는 처음에 쇼텐키르헤(Schottenkirche)의 오르간 주자로 활동했다. 얼마후 그는 레오폴드1세 황제의 부름을 받아 궁정 작곡가가 되었으며 이어 궁정음악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푹스는 레오폴드1세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오스트리아 대공이 된 요셉1세, 그 이후의 샤를르6세에 이르기까지 3대의 황제들을 위해 음악활동을 했다. 자신이 직접 작곡도 했던 레오폴드1세는 진실한 음악애호가여서 비엔나의 요셉플라츠(Josefplatz) 인근에 궁정극장을 건설하여 오페라전용극장으로 사용케 했다. 이것이 오늘날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전신이다. 샤를르6세의 딸인 마리아 테레자(Maria Theresa)는 푹스에게서 음악을 배워 훗날 직접 무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푹스는 제국의 수도 비엔나에서 이탈리아 오페라가 판을 치는데 대하여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왜 우리는 수입품에만 의존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으로 오스트리아적인 음악형태를 발굴하기 시작했다.
유럽 음악의 역사에서 푹스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대위법 등 작곡에 대한 엄격한 이론을 수립하여 관습적인 이탈리아 작곡 스타일을 지양하고 혁명적인 작곡방식을 도입하였다. 그가 남긴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쑴’(Gradus ad Parnassum)은 슈베르트, 브루크너, 그리고 현대의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여러 작곡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푹스는 여러 곡의 협주곡 이외에도 70여 편에 이르는 미사곡, 11편의 오라토리오, 그리고 18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가장 유명한 오페라는 Angelica(안젤리카)로서 1716년 비엔나의 화보리타(Favorita)궁전 야외무대에서 장엄하게 공연되어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푹스는 평범한 공무원의 딸인 클라라 율리아나 슈니첸바움(Clara Juliana Schnitzenbaum)과 결혼하였으나 자녀가 없었다. 푹스 부부는 세상 떠난 동생들의 아들들을 양자로 받아 들여 훌륭한 인물들로 양육하였다. 푹스가 비엔나에서 어느 곳에서 살았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하지만 처음에는 쇼텐키르헤에 속한 수도원에서 지냈으며 슈테판성당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할 때에는 슈테판성당 부근에서 살았을 것이고 궁정 작곡가 겸 궁정음악감독으로 임명된 후에는 호프부르크(Hofburg) 부근에서 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그가 1741년 세상을 떠난 집은 플라이슈마르크트(Fleischmarkt)에 있는 ‘황금 곰’(Zum goldenen Baeren) 집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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