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발견을 주제로 선정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
비엔나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Alexander von Zemlinsky: 1871-1942) 역시 나치의 핍박을 받아 불운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작곡가이다. 쳄린스키의 뮤직 드라마는 모든 중심 테마를 자아발견을 위한 추구에 두었다. 일찍이 비엔나음악학교(콘서바토리)에 입학하여 프란츠 크렌(Franz Kren)과 로베르트 푹스(Robert Fuchs)교수에게 작곡을 배워 작곡가로서의 기본을 다진 그는 브람스를 비롯하여 구스타프 말러, 아놀드 쇤베르크 등 뛰어난 작곡가들을 만나 친분을 맺음으로서 이들로부터 독일 낭만주의와 현대음악에 대한 영향을 두루 받았다. 쳄린스키의 첫 오페라인 Sarema(사레마)는 1897년 뮌헨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이 오페라로 작곡대상을 받았다. 두 번째 오페라인 Es war einmal(옛날 옛적에)은 구스타프 말러를 매우 감동시킨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말러와 쳄린스키는 각별한 친구가 되었다. Es war einmal은 비엔나의 궁정오페라(Hofoper: 오늘날 Staatsoper의 전신)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말러는 궁정오페라의 음악감독이었다. 말러는 쳄린스키를 자기의 후임자로 적극 추천했고 이에 따라 쳄린스키는 비엔나궁정오페라의 상임지휘자가 될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쳄린스키는 규모가 작은 비엔나 폭스오퍼(Volksoper)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했었다. 쳄린스키는 말러의 뒤를 이어 궁정오페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으나 신임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펠릭스 폰 봐인가르트너(Felix von Weingartner)가 쳄린스키의 재능을 시기하여, 또는 순수 아리안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때문인지 결국 궁정오페라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시작한 쳄린스키의 불운은 1942년 미국 뉴욕주의 라치몬드(Larchmond)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비엔나 폭스오퍼(Volksoper)에서는 7년 동안 상임지휘자로 있었다. 그후 잠시 슈타츠오퍼(Staatsoper)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다가 프라하의 독일 란데스테아터(Deutsches Landestheater)에서 16년을 보냈다. 다음에는 베를린의 오토 클렘베레 크롤 오페라(Otto Klempere's Kroll Opera)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나치를 피하여 비엔나로 돌아왔다. 비엔나에서의 생활은 고난의 길이었다. 나치의 계속되는 압박은 집요할 정도였다. 10년을 그렇게 버티다가 마침내 조국 오스트리아를 뒤로하고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그러나 미국 생활 4년 만에 고국에 대한 향수병이 도져 세상을 떠났다. 쳄린스키는 그시대의 가장 뛰어난 작곡 교수였다. 그의 제자 중에는 아놀드 쇤베르크, 안톤 베베른, 구스타프 말러의 부인이 된 알마 쉰들러,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등이 있다. 쳄린스키의 오페라는 대체로 자아발견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는 마치 작곡자 자신의 자아를 발견코자 하는 노력이라고 할수 있다. 실제로 쳄린스키는 브람스, 바그너, 말러와 같은 후기 낭만주의와 쇤베르크 학파와의 사이에서 갈등하였다.
쳄린스키는 쇤베르크의 여동생 마틸데와 결혼하였다. 마틸데는 유태계였다. 쳄린스키는 아내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독일로부터 거의 반강제적으로 추방당하여 겨우 미국으로 올수 있었다. 1938년의 일이었다. 그때로부터 그의 음악적 창작력은 마치 나무에서 진이 빠지듯 에너지를 잃어갔다. 과거 비엔나에서 이루었던 찬란한 업적은 결코 되찾을 수 없었다. 쳄린스키는 비엔나와 프라하에서 오페라, 교향곡 등을 작곡하여 찬사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 이후 부인이 유태계라는 이유 하나로 그의 작품에 대한 모든 공연이 금지되었다. 쳄린스키의 작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극히 최근에 이르러서 ‘쳄린스키 재조명’ 운동이 일어나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함부르크 오페라 음악감독인 제르트 알브레헤트, 피아니스트인 코르트 가르벤과 안토니 보몽, 지휘자인 리카르도 챠일리와 제임스 콘론등이 힘을 합하여 그의 작품을 공연하고 레코드로 취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칸다울레스 왕'
쳄린스키의 오페라 수첩
● Sarema(1897) ● Es war einmal(옛날 옛적에. 1900) ● Der Traumgörge(몽상가 괴르게. 1906) ● Kleider machen Leute(옷이 날개. 1910) ● Eine florentinische Tragödie(플로렌스의 비극. 1917) ● Der Zwerg(난장이. 1921) ● Der Kreidekreis(분필 서클. 1933) ● Der König Kandaules(칸다울레스왕.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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