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거슈인
뮤지컬 노선의 미국에서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 1898-1937)의 등장은 미국 오페라의 위상을 높여준 획기적인 것이었다. 거슈인도 처음에는 뮤지컬 스타일의 오페레타를 작곡하였다. Girl Crazy(정신 나간 아가씨), Of Thee I Sing(그대를 위한 노래), Let 'Em Eat Cake(케익 먹기), Funny Face(우스꽝스러운 얼굴), Oh, Kay!(오, 케이) 등이다. 그러나
뉴욕 브루클린의 유태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거슈인의 원래 이름은 야콥 게르쇼비츠(Jacob Gershowitz)였다. 하지만 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조지 거슈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의 형은 작사가로 유명한 아이라(Ira)였다. 아이라는 동생 조지의 평생 동업자였다.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거슈인은 청년이 되어 Tin Pan Alley의 피아노 연주자가 되었다. (Tin Pan Alley: 무명 작곡가들의 모임. 뉴욕에서는 거리의 음악가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절에 거슈인은 Rhapsody in Blue(라프소디 인 블루)라는 야심적인 뮤지컬 작품을 내 놓았다. 당시 유명한 폴 화이트만(Paul Whiteman)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한 작품이었다. 단번에 인기를 끌었다. 이에 힘입은 거슈인은 교향적 무곡, 피아노 협주곡 등을 계속하여 발표했다. An American in Paris(파리의 아메리카인)은 1920년대 파리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이로써 거슈인은 젊은 나이에 거장 작곡가들과 다름없는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무대에 올렸을 때 성공을 거두지 못한 작품도 있었다.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였다. 가난한 게토(할렘)사람들의 생활과 사랑을 다룬 작품이었다. 그러나 초연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면목이 인정을 받게 되었다.
'파리의 아메리카인' 뮤지컬 포스터(진켈리, 레슬리 캬론 주연)
‘포기와 베스’는 거슈인을 미국의 가장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 올려준 작품이었다. 이 오페라의 음악은 재즈로부터 강렬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물론 미국의 다른 음악가들(예를 들어 스테판 포스터)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진실로 현대미국을 대표하는 오페라였다. ‘포기와 베쓰’에 나오는 Bess You Is My Woman Now, Summertime, I Got Plenty O'Nuttin의 세 노래는 미국을 대표하는 걸작 노래라고 불리는 것이다. 거슈인은 1939년, 38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뇌종양이었다.
'포기와 베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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