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1907년, 말러는 10세 소년이었던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 1897-1957)가 작곡한 칸타타를 듣고 즉각 그를 ‘음악의 천재’라고 선언했다. 볼프강 코른골트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여러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신동이었다. 두 사람의 아버지는 모두 완고한 초보수주의자였고 아들의 활동과 경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10년 합스부르크왕가는 13세의 코른골트가 작곡한 발레곡 Der Schneeman(눈사람)을 높이 평가하여 비엔나의 신문을 통해 그의 재능을 널리 알리도록 했다. 이어서 코른골트가 14세 때에 작곡한 오케스트라 작품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구스타브 말러, 그리고 많은 작곡가와 지휘자들의 깊은 관심을 끌었다. 그 중에서도 1920년, 코른골트가 23세때 발표한 Die tote Stadt(죽은 도시)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구스타프 말러 스타일의 오페라였다. 당시 비엔나의 음악계는 쇤베르크와 코른골트의 두 사람이 서로 라이벌 상태에서 주도할 정도로 코른골트의 작품은 놀라운 인상을 주었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는 1897년 비엔나에서 태어나(실은 당시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의 브륀. 현재의 체코공화국 브르노) 청년시절까지 그곳에서 활동하였으나 유태계통이었기 때문에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자 1935년 슬기롭게 미국으로 건너갔고 1957년 할리우드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계음악계에서 폭넓은 활동을 한 작곡가였다. 그러므로 코른골트를 미국의 작곡가로 분류하고 있다.
20세기는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전위(아방 갸르드)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 도도한 흐름이었다. 그리하여 극장예술, 미술, 그리고 음악에 이르기까지 아방 갸르드 성향은 모든 것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를 따르지 않은 예술가들도 있었다. 코른골트는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코른골트는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후기 낭만주의 전통을 이어 받은 작품들을 썼다. 코른골트는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바르토크와 마찬가지로 음악사에 있어서 길이 존중되어야 할 인물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당시 현대 음악가들의 취향이 급격히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열주의(Serialism), 화려한 색채의 이국적 스타일을 추구하는 취향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나치와 2차대전은 유태계인 코른골트와 같은 작곡가의 음악환경을 쓸어버려 꽃을 피우지 못하게 했다. 2차대전의 전운이 무겁게 감돌던 1934년, 막스 라인하르트는 코른골트를 할리우드로 데려왔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영화음악 작곡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이 작업을 마친 코른골트는 잠시 비엔나로 돌아갔다. 오페라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작곡한 오페라의 공연이 나치주의자에 의하여 지연되자 그는 기회를 보아 슬며시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그후 오스트리아는 나치독일에 합병되었고 코른골트가 살던 저택은 이미 나치가 몰수했다.
코른골드는 할리우드에서 고전적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워너 브라더사의 Captain Blood(블라드 선장)이었다. 이 영화의 음악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이어 그에게 영화음악 작곡주문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는 그후 5년동안 ‘엘리자베스와 에�스의 사생활’ ‘로빈 후드의 모험’ ‘바다 매’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코른골드는 할리우드 영화음악계의 가장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가 작곡을 맡은 영화는 20여편에 이른다. ‘한여름 밤의 꿈’에는 멘델스존의 음악이 주제로 사용되었다. ‘로빈 후드의 모험’에 나오는 사랑의 테마는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음악이다. The Big Lebowski(거대한 레보브스키)라는 영화에는 그의 오페라 Die Tote Stadt(죽은 도시)의 주제곡이 사용되었다. Of Human Bondage(인간의 굴레)의 영화음악은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코른골드의 영화음악은 1940년 이후의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교본이 되었다. 거대하고 생동적이며 모험의 세계를 인도해 주는 테마였으며 정열적이고 감미로우며 낭만적인 요소가 깃들여 있는 음악이었다. 이 기간 동안에 코른골드는 네 번의 오스카상을 받았다. 코른골트는 유럽의 막스 슈타이너(Max Steiner)와 프란츠 왝스맨(Franz Waxman)과 함께 그때까지 막간음악 형식의 영화음악을 새로운 예술 장르로 격상시켰다. 1956년 그는 바그너 음악에 기조를 둔 영화음악의 제작을 의뢰받았다. 하지만 완성을 하지 못했다. 뇌혈전증이 도진 것이었다. 이듬해인 1957년 그는 향연 60세로 북부 할리우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코른골트는 할리우드의 ‘영원한 안식처’(Forever Cemetery)에 안장되었다. San Francisco(샌프란시스코)라는 영화음악을 작곡한 영화음악의 대가 발터 유르만(Walter Jurmann)이 안장되어 있는 곳의 옆 자리이다. 코른골트는 에롤 플린이 주연한 The Sea Hawk(바다 매)라는 영화의 음악도 작곡했다. 에롤 플린은 바로 코른골트의 묘지에서 가까운 곳에 다른 두명의 로맨틱 스타, 즉 타이론 타워(Tyrone Power)와 발렌티노(Velentino)와 나란히 묻혀있다. 코른골트는 유명한 여배우 코니 페이지 코른골트(Connie Paige Korngold)의 유일한 숙부였다.
'죽은 도시'
코른골트의 오페라 수첩
● Der Ring des Polykrates (1916) ● Violanta (1916) ● Die Tote Stadt (1920 함부르크 및 쾰른) ● Das Wunder der Heliane (1927 함부르크) ● Die Kathrin (비엔나에서 초연이 예정되었으나 나치에 의해 취소됨. 1939년 스톡홀름에서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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