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미주와 아시아

존 케이지(John Cage)

정준극 2008. 3. 19. 16:46
동양사상에 기본을 둔 작품 

존 밀튼 케이지

 

  

존 밀튼 케이지(John Milton Cage, Jr: 1912-1992)는 20세기 후반 음악의 현대화를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음악가였다. 그는 음악의 주제에 있어서도 선(禪)사상에 기본을 두고 모든 주제와 주인공들을 배격하였다. 음악은 누구에게나 공통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하여 인간의 지배욕을 극복하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발명가의 아들로 태어난 존 케이지는 포모나(Pomona)대학교를 거쳐 파리로 가서 건축과 피아노를 공부했다. 19세가 되던 해에 파리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놀드 쇤베르크로부터 현대음악의 작곡기법을 배웠다 (1934-1937). 1941년 진주만 사건이 터진 해에 그는 시카고의 실험예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것이 발판이 되어 그는 더 큰 포부를 가지고 뉴욕으로 갔다. 뉴욕에서는 여러 명의 현대예술가들과 교류를 할수 있었다. 그의 작품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친교였다. 그중에서도 댄서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는 각별하게 지냈다. 존 게이지는 마르셀을 위해 여러 편의 전위(아방 갸르드)댄스음악을 작곡했다.


존 케이지가 1930-40년대에 내놓은 음악은 괴이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음악에서의 침묵을 강조했으며 여기에 각종 소음제조기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예를 들면 피아노를 무대에 올려놓고 연주를 하는 대신 도끼나 망치로 피아노를 부수어 버리면서 그 때에 생기는 소음을 음악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 후에는 전자장비가 내는 전자음향을 상당히 사용하기도 했다. 1940년대 후반, 존 케이지는 이른바 비의도적(Non-intentional)예술운동에 참여하였다. 모든 대상은 스스로 자기를 표현한다는 미학적 결말을 주장하는 운동이었다. 그는 문명의 과도로 인한 중대사건들, 예를 들어 그는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로 극에 달한 2차대전의 미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동양사상에 심취하였다. 선(禪)사상이었다. 그리하여 콜롬비아대학교에서 저명한 인도철학가 지타사라바이(Gita Sarabhai)와 일본의 유명한 선철학자인 다이세츠 스즈키(Daisetz Suzuki)에게서 동양사상에 대하여 공부했다.


선철학의 기본은 존 케이지의 생활과 예술활동을 인도한 것이었다. 그는 여기에 무정부주의와 유사한 반체제 사상 및 미래 운명적 사상을 혼합하였다. 그는 중국의 예언서는 이 칭(I Ching)을 그의 ‘비의도적’예술의 교과서로 사용할 정도였다. 이러한 모든 사상과 철학이 겹친 첫 작품은 1951년에 내놓은 ‘준비된 피아노와 실내악을 위한 콘서트’였다. 그의 ‘무’(Nothing)와 ‘우연’(Chance)에 대한 반체제 원칙은 그를 20세기 후반 현대음악 재생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무대 작품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Europera이다. 1번부터 5번까지가 있다. 세상 어느 것이든 우연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서로 연계된다는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유로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