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악성 베토벤

프로부스가쎄(Probusgasse) 6번지

정준극 2008. 4. 29. 17:01
 프로부스가쎄(Probusgasse) 6번지

 

하일리겐슈타트의  프로부스가쎄에 있는 베토벤 기념관. 근년에 새로 단장했다.

 

이 집은 베토벤과 연관된 하일리겐슈타트의 집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이 집은 이른바 ‘하일리겐슈타트 유언의 집’(The House of the Heiligenstadt Testament)으로 유명하다. 베토벤은 이 집에서 1802년 10월을 보냈다. 이 시기는 베토벤의 생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32세의 베토벤은 자기의 청각이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심한 번뇌에 빠졌었다. 사실 청각이상의 증세는 4년전부터 있었으나 베토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음악가로서 가장 중요한 청각이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베토벤은 1802년 10월 마지막 서한, 즉 유서를 이 집에서 작성하였다.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편지(유서)

 

베토벤은 이 유서에서 자기의 청각장애에 따른 감정, 그로 인한 절망, 회복될수 있다는 한가닥 희망, 그러면서 차츰 나타나는 감각의 결여를 우려하는 긴 글을 썼으며 너무나 번뇌한 나머지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것이 하일리겐슈타트 테스타멘트이다. 이 유서는 그의 동생 카를에게 보내는 것으로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보내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25년이 지나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며칠 후 베토벤의 침상 옆에 있는 책상 설합에서 이 서한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책상설합에는 보내지 않은 다른 편지들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어떤 여인에게 보내는 것으로 ‘불멸의 연인’(The Immortal Beloved)라고만 적혀 있었다. 미지의 여인이 누구인지는 베토벤의 사후 170여년 동안 의문의 대상이었다. 다만, 베토벤 전기 작가인 마이나르트 솔로몬(Maynard Solomon)이 그의 저서 ‘베토벤’에서 ‘불멸의 연인’에 대한 설명을 했지만 그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어서 아직도 궁금한 상태에 있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상상화


이상한 소리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베토벤의 청각장애는 오히려 위대한 음악을 창조하는데 공헌했다는 주장이 있다. 베토벤이 자기의 청각장애를 비로소 인식하고 실의에 빠진 이듬해에 음악사적으로 가히 혁명적인 작품인 교향곡 제3번 ‘영웅’이 태어난 것은 어떻게 설명할수 있는가? 베토벤은 18세기의 틀에 박힌 음악에서 탈출이라도 하듯 ‘영웅’ 교향곡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마치 그가 질병과 고독과 시련 속에서 탈피하려고 무한한 정신적 투쟁을 벌인 것과 같다. 베토벤의 청각장애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만일 그가 온전한 청각을 유지했더라면 어떤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을지 궁금한 일이다.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리게 만드는 것은 베토벤의 청각장애는 오늘날의 의료기술로 대수롭지 않게 고칠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부스가쎄 베토벤 기념관 내부


다시 프로부스가쎄로 돌아가서, 오스트리아의 역사학자이며 저널리스트인 루돌프 클라인(Rudolf Klein)은 그의 저서 ‘베토벤-오스트리아의 지역들’(Beethoven-Staetten in Oesterreich)에서 베토벤이 프로부스가쎄의 집에서 살았다는 증거는 없다고 썼다. 다만, 가능성이 있다면 베토벤이 이 집에 잠시 들려 하루 이틀을 지냈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살지는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프로부스가쎄의 집은 상징적인 기념장소일뿐이라는 것이다.

 

프로부스가쎄 6번지 2층의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