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테르키르헤(Dorotheerkirche) - 도로테르교회
도로테어키르헤
도로테르가쎄(Dorotheergasse) 17번지에 있는 복음주의 개신교회이다. 16세기 중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에 동참하여 개신교를 신봉하였으나 신성로마제국의 중심국인 오스트리아는 한때 개신교 예배를 금지하였다. 그러다가 마리아 테레자 여제 치하에서 비엔나는 일부 개신교의 예배를 허용하였다. 왜냐하면 비엔나 주재 개신교 국가들의 대사관원들이 예배드릴 처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781년 10월, 마리아 테레자의 큰아들인 요셉2세는 좀더 관용적인 칙령을 발표했다. 개신교와 그리스정교회가 일정 지역에서 예배를 볼수 있도록 하는 칙령이었다. 다만, 개신교의 경우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와 스위스에서 온 개신교도들은만이 자체 교회를 가지고 예배를 드릴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로써 개신교도들은 자체 학교와 교회를 건축할수 있게 되었다. 요셉2세는 나아가 1782년 개신교의 비엔나 교구를 승인하였다. 이에 따라 도로테르가쎄에 있던 클라리쎈수녀원(Clarissenkloster) 또는 왕비수녀원이라고 불리던 건물이 개신교 교회로 개편되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도로테르키르헤이다.
도로테어키르헤에서의 연주회
비록 개신교를 용인하는 황제의 칙령이 있었지만 개신교회를 건축할 때에는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하며 또한 큰 길에 면하여 입구를 만들지 못하도록 했다.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온 유태교 회당에 대한 제약과 같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도로테르키르헤는 측면 문을 사용하였다. 1887년 도로테르키르헤는 전혀 새로운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네오-바로크 양식의 첨탑이 세워졌으며 정문은 도로테르가쎄를 향해 나게 되었다. 그후 여러번의 내부수리를 거쳐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새로운 면모로서 비엔나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터키의 제1차 비엔나 공성때에 터키군을 용감하게 물리친 니클라스 폰 살름(Niklas vonSalm) 백작의 시신이 이 교회의 지하에 안장되었다가 나중에 보티프키르헤(Votivkirche)로 이장되었다.
도로테어키르헤의 처음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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