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비엔나의 교회들

14구 키르헤 마리아브룬(Kirche Mariabrunn)

정준극 2008. 5. 31. 05:41
 

14구 키르헤 마리아브룬(Kirche Mariabrunn) - 성모우물교회

 


14구 하우푸트슈트라쎄(Hauptstrasse) 9번지에 있다. 1042년 헝가리 왕인 성슈테판의 미망인 기젤라(Gisela)가 비엔나 강의 푸른 목초지를 건너 이곳으로 피신하여 왔다고 한다. 병들고 기진맥진한 기젤라 왕비는 무언가 기운을 차릴 것이 필요했다. 왕비는 무엇보다 목이 말랐다. 왕비와 함께 있던 종자 한 사람이 부근의 우물에서 물을 긷고자 했다. 그런데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그곳에 성모가 아기예수와 함께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젤라 왕비는 그 우물물을 마시고 기운을 회복했다. 기젤라 왕비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이곳에 카펠레를 건립하고 성모상을 안치했다. 얼마후 유감스럽게도 비엔나 강에 홍수가 생겨 카펠레를 휩쓸어 갔다. 강물은 카펠레에 있던 성모상을 옛날 교구교회였던 봐이들링가우(Weidldingau)교회로 데려다 주었다. 1467년 헝가리의 마티아스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가 군대를 이끌고 봐이들링가우에 인근에 와서 아무 생각 없이 우물을 막아버렸다. 몇 년후 사람들은 우물 안에서 천상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은 우물을 파고 그 안에서 성모상을 구하여 지금의 마리아우물교회에 안치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기적의 우물이 있던 장소


봐이들링가우에는 이미 16세기에 예배당이 있었다. 1636년 페르디난트2세 황제는 아우구스틴수도회에 이 예배당 자리에 수도원과 교회를 건립하도록 승낙하였다. 새로운 교회 건축은 1639년부터 1655년까지 걸렸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도메니코 카를로네(Domenico Carlone)가 건축 책임을 맡았다. 마리아우물교회는 순례자들이 즐겨 찾아오는 교회가 되었다. 1683년 터키의 제2차 비엔나 공성 때에 마리아우물교회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곧 재건되었다. 다행히 수도원은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았다. 그후 수도원은 점차 축소되어 결국 제국삼림아카데미(Kaiserliche Forstakademie)가 들어서게 되었고 현재는 삼림연구소(Forstilche Forschung) 기숙사로 활용되고 있다.

 

  


마리아우물교회는 초기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건물 정면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고난에 대한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현관 위편의 대형 유리창은 아르 누보 스타일이다. 1911년에 제작한 것으로 음악의 성인인 성세실리아를 그린 것이다. 교회 내부는 화려하다. 왕족이나 귀족들이 인근에 사냥을 나왔다가 자주 찾아오기 때문에 그 취향에 맞춘것 같다. 중앙제단은 대단히 찬란하다. 제단의 꼭대기에는 하나님의 황금 지구상을 들고 앉아 있으며 그 옆에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라파엘이 시종 들고 있고 성령이 빛을 내는 형상이 새겨져 있다. 제단 좌우에는 실물대형의 네 개 성상(聖像)이 들어서 있다. 성아우구스티누스, 성모니카, 성스가랴, 성엘리자베스이다. 중앙제단은 나무로 만들었으나 마치 대리석처럼 보인다. 오리지널 성모상은 라임목으로 만든 것으로 후기 고틱 또는 초기 르네상스 양식을 따르고 있다. 교회내에는 여섯 곳의 부제단이 있으며 각 부제단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