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비엔나의 교회들

17구 칼바리엔베르크키르헤(Kalvarienbergkirche)

정준극 2008. 6. 1. 06:36
 

17구 칼바리엔베르크키르헤(Kalvarienbergkirche) - 갈보리언덕교회

 

 

 

17구 산크트 바르톨로모이스-플라츠(St Bartholomaeus-Platz) 3번지에 있다. 헤르날스에는 이미 1301년에 바르톨로메교회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6세기에 바르톨로메교회는 종교개혁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했다. 그후 마티아스(Marrhias) 황제 때에 개신교에 대한 정책이 완화되자 헤르날스의 바로톨로메교회는 개신교 활동의 중심지로서 부상되었다. 그러나 페르디난트2세 황제 때에는 사정이 달라져 바르톨로메교회는 슈테판성당 교구에 속하게 되었다. 헤르날스와 인근의 개신교도들은 1714년 성금을 내어 갈보리언덕교회를 건축했다. 기존 가톨릭 교회의 벽면에 있는 14처는 그리스도가 일곱가지 큰 죄악을 물리치는 내용과 마리아가 일곱가지 덕행을 가르치는 내용으로 교체되었다. 갈보리언덕교회가 문을 열자 곳곳에서 순례자들이 넘쳐 찾아 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수많은 순례자들은 교회 앞에서 간단한 요기라도 하며 기운을 차리곤했다. 그리하여 교회 앞 거리에는 장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엘터라인플라츠(Elterleinplatz)가 바로 그 시장거리이다.

 

                                                                                                                                                                         

슈베르트 영결미사가 열렸었다는 명판

 

1892년 원래의 갈보리언덕교회는 너무 비좁아서 철거하고 완전히 새로운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다만, 바로크 양식의 교회 정면은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2차 대전중 폭탄하나가 떨어져 지붕을 뚫고 터지는 바람에 교회 안의 모든 비품이 파손되었다. 그러나 전쟁후 모두들 열심히 노력하여 단 3년만에 완전히 복구하였다. 이른바 ‘터키 마돈나(성모)’라고 불리는 조각상은 이 교회의 자랑이다. 이 성모상은 터키가 비엔나 공성을 풀고 퇴각한후 술탄의 텐트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터키 마돈나’라는 이름이 붙었다. ‘터키 마돈나’상에는 총알 구멍이 있다. 당시 전투에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교회의 오른쪽에는 피에타와 오르간이 있다. 왼편 벽면 끝에는 프란츠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828년 11월 3일 이 교회에 참석하여 마지막으로 미사곡을 들었다는 명판이 붙어 있다. 슈베르트의 동생인 페르디난트가 작곡한 라틴 진혼곡이었다고 한다. 갈보리언덕교회는 2000년에 보수를  마치고 완전히 새로운 교회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