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식당, 카페, 커피

[브라우너, 카프치너, 아인슈패너]

정준극 2008. 6. 18. 19:37

[브라우너, 카프치너, 아인슈패너, 그리고 멜란즈]

 

기왕에 커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비엔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여기 커피 좀 주세요'라고 한다든지 또는 '여기 비엔나 커피 한 잔만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종업원들은 '이건 또 어디서 온 백성들인가?'라고 생각하며 어서 주문이나  제대로 하라고 그냥 서 있을 것이다. 비엔나의 카페에서 제대로 커피를 주문하지 못하면 일단 종업원들로부터 핀잔을 받기가 쉽다. 아무튼 그냥 카페(Kaffee: 비엔나에서는 첫 소절에 악센트를 둔다) 한잔 달라고 한다든지 또는 비엔나 커피 한잔 달라고 하면 민망스러운 일이다.

 

뷔덴에 있는 카페 골데그 

 

비엔나의 전통을 담은 커피는 대략 세가지이다. 첫째는 브라우너(Brauner)이다. 브라우너는 화이트 커피이다. 커피에 크림을 얹어 주는 것이다. 주문할 때에는 작은잔 브라우너(Kleiner Brauner) 또는 큰잔 브라우너(Grosser Brauner)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브라우너에 설탕을 넣던지 말던지는 마시는 사람의 자유이다. 두번째는 카푸치너(Kapuziner)이다. 커피에 크림을 얹고 그 위에 코코아나 초콜릿 가루를 살짝 뿌린 것이다. 아인슈패너는 나중에도 설명하겠지만 대체로 블랙커피에 생크림을 얹은 것이다. 그리고 프란치스카너라는 것도 있다. 밀크커피에 생크림을 얹은 것이다. 카푸치너의 사촌으로서 멜란즈라는 것이 있다. 에스프레소보다 엷게 탄 커피와 따듯한 우유를 반반씩 넣고 위에는 우유거품으로 채우는 평범한 것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멜란즈(Melange)이다. 멜란즈의 경우에도 설탕은 넣던지 말던지는 마시는 사람의 자유이다. 비엔나의 커피가 반드시 멜란즈, 브라우너, 아인슈팬너 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취향대로 만들어서 마시고 자기의 이름을 붙이던지 다른 이름을 작명해도 상관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인 공인을 해 주어야 새로운 커피 종류로서 등장할수 있을 것이다. 유명인사가 특별히 자기만의 방식대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그 방식의 커피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예를 들어서 '커피 마리아 테레지아'라는 것이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즐겨 마셨다는 커피로서 크림을 넣고 여기에 오렌지로 만든 술을 서너 방울 떨어트린 것이었다고 한다.

 

멜랑즈. 휘핑 크림을 얹어 준다.

 

일반적으로 카푸치너와 멜란즈는 큰 차이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카푸치너는 우유를 넣은 것이고 멜랑즈는 생크림을 거품으로 만들어 넣은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냥 우유도 거품을 만들어 넣어 마실수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아인슈패너(Einspaenner)이다. 블랙 커피에 생크림을 얹은 것이다. 생크림 위에 알몬드나 피넛 가루를 살짝 뿌려 마시기도 한다. 원래 아인슈패너라는 말은 말 한필이 끄는 마차를 말한다. 그 말이 변화하여 혼자 있는 사람, 또는 별난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카페에 와서 갈데도 없는지 장시간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아인슈패너이다. 아인슈패너는 잔에다 주지 않고 글라스에 담아 준다. 휘아커(Fiaker)라는 것도 있다. 추운 날씨에 휘아커 마부들이 마시던 뜨거운 커피로서 럼이나 보드카를 살짝 넣어 추위를 달래게 해주는 목적도 있다.

 

아인슈패너. 커피 잔이 아니라 유라컵(글래스)에 담아 준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으면 멜란즈(어떤 사람들은 멜랑에라고 발음함)를 주문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그러면 멜란즈 커피와 함께 자동적으로 물 한잔을 함께 가져다 준다. 멜란즈의 휘핑크림 위에 계피가루나 초콜릿 가루를 살짝 뿌려 주는 곳도 있다. 물은 더 달라고 말하면 군말 하지 않고 가져다 준다. 어떤 카페에서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물을 계속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커피는 미국의 보통 식당처럼 리필(Refill)이 없다. 카페에 들어가서 브라우너든 아인슈패너든 또는 카푸치너 또는 멜란즈를 시킨후 종업원이 가져오자 마자 후루룩 마시고 일어서는 일은 곤란하다. 비엔나의 카페에서는 커피 한잔 시켜놓고 하루종일 있어도 좋다. 책을 읽던지 신문을 읽던지 편지를 쓰던지 마음대로 있을수 있다. 물론 눈총이야 조금 받겠지만...카페의 종업원을 헤르 오버(Herr Ober)라고 부르는 것도 마음에 담고 있도록! 물론 헤르 오버라는 호칭은 남자 종업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여자종업원에게는 프라우 오버(Frau Ober) 또는 보통 점잖게 마담 또는 프로이(아가씨라는 뜻의 Fräulein의 준말)라고 부르면 된다. 그런 호칭이 어색하면 일반적으르 비테(Bitte: 영어의 Please)라고 부르면 다 통한다. '여기요!'라는 의미이다. 아무튼 독일이건 오스트리아이건 '비테'라는 단어 하나만 잘 써먹어도 만사형통이라는 얘기가 있다.

 

카페 란트만. 정치인이나 연극인들이 자주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멜란즈라는 단어는 프랑크 허버트(Frank Herbert)의 공상과학소설 뒨(Dune) 시리즈에 나오는 가공의 약품을 말하기도 하므로 혼돈하지 말기를! 소설에 나오는 멜란즈는 말하자면 우주식량으로서 이것을 먹으면 생명을 연장할수 있으며 활기에 넘치고 총명해 진다고 한다. 진짜 진한 커페는 튀르키슈(Türkisch)라고 하는 것이다. 터키풍의 커피이다. 검은 색에 맛도 정말 독하다. 한모금 마시고 나면 아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입이 알알할수 있다. 하지만 원래 터키 사람들은 습관이 되어서 문제 없다고 한다. 에스프레스(Espresso)는 일반적인 그 에스프레소이다. 작은 잔에 담아서 준다. 역시 진하다. 더 진한 커피도 있다. 마치 커피 농축액을 마시는 것 같은 것이다. 쿠르츠(Kurz)라고 부른다. 짧다는 뜻이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한 커피로서는 슈봐르처(Schwarzer)라는 것도 있다. 검다는 뜻이다. 검은색 커피로는 모카(Mokka)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진한 커피들은 잘 마시지 않는다. 그저 멜랑즈나 아인슈패너 정도를 즐겨 마신다. 카페인을 제외한 커피는 카페인프라이어 카페(Kaffeinfreier Kaffee)라고 부른다. 디카페네이티드 커피이다. 카페에서 그걸 주문하면 '이런 건 집에서나 마시지 왜 여기까지 와서 마시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카푸치너. 멜란즈와 형제간이다. 언제나 물 한잔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방법]

그냥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비엔나에는 전통이란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멜란즈를 마실 때에는 세 단계로 나누어서 각각의 맛을 음미한다. 우선은 제일 위에 얹은 휘핑 크림의 맛을 본다. 커피 향내가 배어 있는 크림이어서 미적지근하면서도 독특한 맛이다. 휘핑 크림을 서벅서벅 마신 다음에는 뜨겁고 쌉쌀한 커피 원래의 맛을 즐긴다. 커피 본연의 맛을 쌉쌀하다고 표현 한 것이 옳은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커피의 쓴 맛을 음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커피 잔의 아래에 녹아 있는 설탕의 단 맛을 음미한다. 진득하게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커피 맛이 배어 있는 맛이다.  

 

브라우너. 휘핑크림을 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