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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마이늘(Julius Meinl) 이야기

정준극 2010. 10. 4. 17:11

율리우스 마이늘(Julius Meinl) 이야기

 

율리우스 마이늘이 자랑하는 에스프레소 커피

 

타르부슈(Tarboosh)라는 빨간색 터키 모자를 쓴 꼬마 소년이 그려져 있는 율리우스 마이늘의 로고는 비엔나 시내에서 어렵지 않게 볼수 있는 상표간판이다. 율리우스 마이늘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비엔나의 커피 제조 및 판매업체이다. 율리우스 마이늘은 처음에는 커피만 팔았지만 지금은 각종 양념에 포도주까지 만들어 팔고 있다. 커피가 비엔나에 소개된 것은 1683년 오토만 터키가 비엔나 공성을 풀고 퇴각한 이후라는 것은 이미 설명한바 있다. 커피에 입맛이 당긴 비엔나 사람들은 너도 나도 집에서 커피콩을 볶아 커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커피콩을 너무 태우는 일도 생겨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기를 약 2백년이나 계속하였다. 율리우스 마이늘이란 사람이 반짝 아이디어를 냈다.

 

율리우스 마이늘 그라벤

 

그는 1862년 새로운 기술로 커피콩을 알맞게 볶는 기술을 터득하고 커피콩 볶는 공장을 세웠다. 사람들은 각자 집에서 번거롭게 커피를 볶지 않아도 되었으며 더구나 바로 볶은 신선한 커피를 언제라도 살수 있으므로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약 30년후인 1891년, 율리우스 마이늘은 오토만 터키군이 퇴각할 때 커피콩 자루를 남겨 두고 갔다는 바로 그 자리에 현대식 커피 공장을 건설했다. 무슨 일이든지 역사와 관련 짓기를 좋아하는 비엔나 사람들은 율리우스 마이늘의 커피를 더 많이 사 먹었다. 율리우스 마이늘표 커피 제품은 날개 돋힌듯 팔렸다. 사업은 1차대전 중에도 별로 타격을 받지 않았다.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 율리우스 마이늘의 사업은  대기업 수준으로 번창해졌다.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중부 유럽에서 율리우스 마이늘표 커피는 계속 인기를 끌었다. 현재의 터키 모자를 쓴 꼬마 소년의 상표는 1924년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다.

 

율리우스 마이늘 150주년 플래쉬몹. 비엔나

 

1939년 2차대전이 본격화되자 율리우스 마이늘의 사업도 타격을 입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율리우스 마이늘의 후손들은 새로운 사회를 새로운 기회로 삼고 분발노력했다. 커피뿐만 아니라 각종 차, 잼, 젤리, 양념, 심지어 술까지 만들어 꼬마소년의 상표를 붙여 팔았다. 그리하여 지금은 율리우스 마이늘 국제상사로 성장하였다. 율리우스 마이늘의 상권은 체코와 폴란드,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로 확대되었고 현재는 슈퍼마켓을 포함하여 수백개의 점포를 거느리는 대형회사가 되었으며 심지어 금융업에도 손을 뻗쳐 마이늘은행이라는 은행을 경영하게 되었다. 비엔나 시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율리우스 마이늘 상점은 그라벤 거리의 끝머리에 있는 카페 겸용의 점포이다. 현재 율리우스 마이늘 국제상사는 율리우스 마이늘4세와 토마스 마이늘, 그리고 5세대인 율리우스 마이늘5세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율리우스 마이늘 본사 사무실은 16구 오타크링의 율리우스 마이늘 가쎄(Julius Meinl Gasse) 3-7번지에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매년 10월 1일이 커피의 날이다.

  

율리우스 마이늘 그로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