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극과 중앙
수원에는 일제시대때부터 극장 같이 생긴 것이 하나 있었다. 수원극장이다. 남문을 지나서 수원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수원사람들은 수원극장을 수극(水劇)이라고 불렀다. 일제시대에는 활동사진이나 신파조 연극을 했다고 한다. 나도 일제시대의 말기를 살았지만 너무 어려서 극장이란 곳을 가 본 일이 없다. 내가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아마 사변전인 1949년이나 1948년이 아니었나 싶다. 수극에서 '위조지폐'라는 타이틀의 미국영화였다. 위조지폐범들이 위조지폐를 만든후 몇개의 가방에 넣어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서 빠져 나가려다가 이들을 뒤 쫓는 연방경찰에게 발각되어 비행기 안에서 총격전을 벌인 끝에 범인들은 정의의 심판을 받아 모두 죽고 위조지폐는 비행기 창문밖으로 흩날려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의 결투장면을 어떻게 촬영했는지 대단히 궁금했었다. 구름 사이를 뚫고 날으는 비행기안의 결투장면을 어떻게 찍었을까? 다른 비행기에 촬영기를 싣고 옆에서 함께 날으면서 찍었다고 생각했다. 창밖으로 뿌려지는 위조지폐는 어떻게 찍었을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 보면 아주 기초적인 세트 촬영일뿐이데 말이다. 비행기안에서 범인들과 연방경찰의 결투장면에서는 관객들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스크린을 뚫어져라고 쳐다 보았으며 악당들이 퇴치되자 한결같이 요란한 박수를 보냈다. 그때만해도 더빙이나 자막 번역이 되지 않아 변사가 스크린 앞에 앉아 마이크를 붙잡고 '아, 그리하여 범인들은 마침내 정의의 심판을 받아 운명적인 최후를 마디하게 되었단 말이 올시다'라고 소리지르던 때였다. 관객들은 변사가 웬만큼 더듬거려도 이해하고 그의 말한마디에 울고 웃고 하였다. 초등학교 시절, 수극에서 공연하는 여성국극단의 '원술랑'을 본 일이 있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모두 여자인 줄을 몰랐었다. 아무튼 국극이란 것을 처음 관람하는 것이어서 새로운 감동이었다. '원술랑'을 본 이후 아이들과 함께 수수깡 칼싸움 놀이를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수극에서는 시국강연회도 했었고 권투시합도 보여주었다. 무대위에 링을 마련하고 시합을 했으며 관객들은 무대 앞의 널판지 의자에 앉아 시합을 구경했다.
현재 수원의 남문 부근에 있는 중앙극장
사변후 수원에는 새로운 극장이 하나 들어섰다. 남문(팔달문) 옆 골목에 생긴 중앙극장이었다. 주로 외화를 상영하였다. 당시 수극은 재판삼판의 국산영화를 주로 상영했지만 중앙극장에서는 서울에서 개봉된지 얼마 안되는 외화를 가져다가 재개봉 상영했다. 그래서 인기가 높았다. 당시 중앙극장은 수원에서 격조 높은 데이트 장소였다. 여자친구와 함게 중앙극장에 갔다 왔다는 것은 대단한 자랑꺼리였다. 가난한 호주머니에서 극장 입장권을 사기도 힘들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얼마전 혹시 중앙극장이 남문 옆골목길에 그대로 있는가 싶어서 가보았더니 완전히 위치가 달라졌고 스타일도 복합영화관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래도 중앙극장이라는 간판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반가웠다. 수원역 가는 길에 수원극장이 있던 곳을 찾아 보았으나 실패했다. 길도 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수 없었다. 수원역앞의 이른바 로데오 거리도 언제부터 조성된 길인지는 모르지만 나로서는 완전히 처름 보는거리였다. 현재의 중앙극장에서 팔달산 쪽으로 바로 붙어서 팔달사라는 절이 있다. 생전처음으로 팔달사를 관람하면서 남문 부근에 이런 절도 있었나라고 생각했다.
수원역 앞의 로데오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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