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행궁홍보관
수원의 화성행궁이 복원되면서 행궁홍보관도 문을 열었다. 화성행궁 앞 광장의 오른편, 팔달문(남문) 방향으로 차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모처럼 작심하고 화성행궁을 방문한 날은 날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2009년 2월 20일이었다. 신풍루 앞 광장에서 무예시범을 하는 사람들이 ‘얍! 얍!’이라는 구호를 넣는 소리마저 없었더라면 덜덜 떨다가 감기라도 걸렸을 것이다. 그때에 구세주가 보였다. 화성행궁홍보관이었다. 행궁을 구경 온 입장에서 날씨가 워낙 쌀쌀하다면 행궁 안에 들어가서 덜덜 떠는 것 보다는 우선 홍보관에 들어가서 몸도 녹이고 사전지식도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 홍보관의 2층 베란다에는 휴게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정수기가 있어서 물도 마실수 있다. 휴게실의 유리창 밖으로 화성행궁을 내려다 볼수 있어서 경관도 그럴듯하다. 화성행궁홍보관은 재단법인 수원화성운영재단이란 곳에서 관장하고 있다. 또 새로운 재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홍보관의 전시내용을 소개하는 팜플렛 한 장 없어서 섭섭했다. 반면, 한쪽 테이블을 보니 수원시내 패션가의 상점들을 안내하는 날씬한 책자는 놓여 있었다.
정조대왕이 탔다고 하는 어연
행궁홍보관이 들어선 자리는 아마 예전에 일반 집들이 늘어서 있었던 곳일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종로 네거리에서 경기도립수원병원으로 가는 신작로가 있었는데 마차가 서로 왕래할 정도의 넓지 않은 길이었다. 도립병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으로는 일제시대에 악명 높은 수원경찰서가 있었다. 수원경찰서의 고등계 형사라고 하면 울던 아이들도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 수원경찰서 뒤편으로는 수원공립보통학교가 있었다. 해방이 되자 이 학교는 신풍국민학교가 되었고 현재는 신풍초등학교라고 불리고 있다. 신풍국민학교에서 나와 북문(장안문)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다 보면 법원 재판소 건물이 있었다. 해방후 어떤 날 밤에 법원 건물에 불이 나서 법원에 있던 기록들이 불길에 훨훨 타며 밤하늘에 날아갔었다. 사람들은 ‘아유, 아유!’하면서 일제시대의 기록들이 다 타버리는 것을 좋아했다. 오늘날에는 그 자리에 법원건물이 있었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다시 수원경찰서 얘기로 돌아가면, 경찰서 건물 안쪽에는 유치장이 있었는데 아침과 저녁이면 수원시장이 있는 매향교 쪽에서 수감자들에게 먹일 식사를 리어카에 싣고 가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이어서 식사 리어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밥 때를 가름했었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유치장의 식사는 깡 보리밥 한 주먹에 콩나물을 약간 넣은 소태와 같은 소금국이 전부였다고 한다. 저걸 먹고 어떻게 견디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일반 사람들의 식사도 더 나을 것은 없었던 시기였다.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무엇을 먹는지를 소개하는 일은 화성행궁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이만 접기로 하고 다시 화성행궁으로 돌아가 보면 수원시 등등의 노력으로 최근 행궁안의 많은 건물들이 복원되어 일제시대의 모습은 찾아 볼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수원화성홍보관 전경: Happy Suwon
화성전경 모델 전시
정약용
화성축성장면
야조도
현재 행궁안에 있는 봉수당(奉壽堂)은 경기도립수원병원이었고 낙남헌은 수원군청이었으며 객사는 수원공립보통학교, 즉 지금의 신풍초등학교 자리였다. 그리고 수원경찰서는 북군영(北軍營) 자리였다. 도립병원은 원래 1910년 처음 생긴 자혜의원을 확장한 것이다. 비록 유서깊은 화성행궁의 한 파트가 도립병원으로 행세하게 되었지만 워낙 아픈 사람들은 많은데 병원 시설을 부족하여서 도립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그 어려운 곳에 어떻게 입원했느냐면서 부러워들 했다. 행궁 안의 봉수당 자리에 2층의 도립병원이 있어서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봉수당을 완전 복원하여 정조의 어머니 환갑을 위한 잔치상이 마련되어 있다. 과연,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실 해방 후에도 수원에 병원다운 병원이 거의 없었다. 그저 몇몇 개인병원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던가? 성빈센트병원이 들어섰을 때만해도 그 일대는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여서 ‘아니, 이런 벌판에 병원을 세우면 누가 오긴 하나?’라고들 말했었다. 예전에는 원천 저수지에 가려면 남수원역(화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원천역에서 내리는 것이 일반이었다. 수원에서 원천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원천동에 장대한 아주대학교와 아주대병원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남수원역에서 여주로 가는 수여선(水麗線)을 타면 원천 다음이 신갈이었다. 지금의 신갈 오거리를 조금 지나서 신갈역이 있었다. 남수원역에서는 남인천으로 가는 수인선(水仁線)도 출발했다. 군자, 소래, 송도를 거쳐 신흥동 부근의 남인천역까지 가는 협궤열차였다. 남수원역은 아마 지금의 지동시장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갑자기 얘기가 기차로 넘어 갔던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다시 화성홍보관으로 건너가 보자.
화성홍보관에 대하여는 인터넷 카페 등에 여러 사람이 좋은 자료를 자세히 올려 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어떤 분은 훌륭한 카메라로 홍보관의 내부를 아주 잘 찍어서 인터넷 카페에 올렸기 때문에 내가 그나마 몇장 찍은 것은 명함도 못 내밀 형편이어서 대강 생략코자한다. 그래도 추운 날에 쌀쌀한 바람을 피하여 찍은 것이므로 어연(御輦) 등 몇 장은 기왕에 게재코자한다. 2층의 축성 전시실에서 장영실의 초상화를 본 것은 기쁨이었다. 그 옛날에 화성 전체를 3년만에 완성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1746년부터 1749년까지였다. 원행을묘정리의궤라는 화첩에 나와 있는 야조도(夜操圖)는 대단히 큰 그림으로 비록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려 놓은 국보급이라고 생각했다. 화성에서 밤에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면이었다.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에 대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었다. 수원 시민 모두가 화성을 자랑으로 아끼는 마음부터 가져야 할것이다. 방화수류정에 올라가서 소주나 마시고 낮잠이나 자면 곤란하다. 화홍문에 쓰레기나 함부러 버려서도 안될 것이다. 용연으로부터 지동시장이 있는 곳까지의 수원천이 청계천처럼 변해야 할것이다.
화성행궁 앞의 홍살문과 멀리 보이는 여민각(오른쪽)과 종로교회(왼쪽)
수원은 엄청 바뀌었다. 무척 넓어졌다. 하지만 수원의 역사적 센터는 역시 4대문 안이 아닐수 없다. 화성행궁의 앞에 광장이 조성되고 종로에 종각(여민각)이 새로 건축되고 화성행궁홍보관이 들어서고 시티투어 버스가 다니게 되고 한 것등은 사변 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신풍초등학교를 화성행궁복원과 관련하여 이전해야 할것 같다는 얘기가 있다. 학생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 든다고 한다. 역사 깊은 신풍초등학교를 옮기거나 아예 폐쇄하는 것은 수많은 졸업생들을 생각할 때 아쉬운 일이다. 화성행궁의 전체 복원을 위해 신풍초등학교를 어떻게 하는 것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아무튼 좋은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화성행궁홍보관은 무료입장. 전문안내요원도 있다. 화성에 대하여 더 자세한 내용을 알려면 www.hs.suwon.ne.kr를 방문하시기를! 한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화성행궁홍보관이 주관이 되어 행궁에서 용주사와 융건릉을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단, 날씨가 좋은 봄 가을철에만! 화성행궁과 용주사 및 융건릉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존 버스업자들이 항의할까?
용주사: 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을 수호하는 원찰로 창건
융건릉: 사도세자의 묘는 원래 양주 배봉산에 있던 것을 화산으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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