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 집중탐구/생명나무-선악나무

서방 기독교회와 생명나무

정준극 2008. 7. 23. 10:44
 

[서방 기독교회와 생명나무]

동방정교회에서는 생명나무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보고 있지만 서방 기독교회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일반적으로는 생명나무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올라 갈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내미신 손을 붙잡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올라갈수 있다는 것이며 그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는 것이 생명나무라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능하면 자주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토록 하셨다는 것이다. 예전의 신학자들, 예컨대 아퀴나스(Aquinas)와 같은 사람들은 생명나무가 육신의 늙어 감을 방지하기 위한 생물학적 방법으로 이용된다는 주장을 했었다. 존 칼빈은 이같은 주장을 일축하였다.


계몽시대 이전에 기독교 교회는 창세기 첫 부분의 말씀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만 생각하였다. 히포의 아우구스틴(Augustine of Hippo)은 에덴동산에서의 사건에 영적인 무게를 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창세기의 역사성을 유지하였다. 계몽시대에 접어들어서 엠마누엘 칸트와 같은 사람이 에덴동산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비유적인 사항이라고 주장했지만 마찬가지로 교회는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서서 브룬너(Brunner)와 니부르(Niebuhr)와 같은 계몽주의 신학자들은 창세기의 역사성을 배제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코자 노력했다.


어떤 신학자들은 생명나무에 대하여 상당히 실용적인 해석을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그의 저서 Summa Theologica에서 생명나무는 아담이 세상에서 수명을 연장하는데 이용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생명나무는 인간의 수명을 생물학적으로 연장하는 도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명나무라고 해도 단 한번 열매를 먹음으로서 인간이 영생을 누리게 되지는 못했다는 설명도 했다. 그래서 창세기의 인간은 계속 열매를 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존 칼빈(John Calvin)은 창세기 2장 8절에 대하여 아우구스틴과는 별도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칼빈은 생명나무를 성례(聖禮)와 관련된 하나님의 언약으로 보았다. 칼빈은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이 없이는 살수 없다’고 전제하고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그의 은혜’를 입증하는 상징적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생명나무도 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어쨋거나 신학에 대하여는 신자(神字)도 모르는 필자로서 더 이상 설명을 이어나갈 것 같으면 망신만 당할 것 같으므로 이쯤해서 생명나무에 대한 짧은 설명을 그치고자 한다.

 

폴란드 Chotyniec성당의 제단에 있는 생명나무의 모습 


[말일성도교회의 견해]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몰몬교회)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대체로 특별한 견해를 유지하고 있거니와 몰몬경의 네피(Nephi) 1서에 등장하는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구원과 사후의 존재를 의미한다는 설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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