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저명 인사

슈타트파르크의 쉰들러 기념상

정준극 2008. 12. 17. 09:08

슈타트파르크의 쉰들러 기념상

 

슈타트파르크의 에밀 야콥 쉰들러 기념상

 

19세기 오스트리아가 낳은 유명한 화가인 에밀 야콥 쉰들러(Emil Jakob Schindler)의 기념상은 슈타트파르크(시민공원)에 있다. 쉰들러는 1842년 비엔나에서 태어나 1892년 베스터란트-질트(Westerland-Sylt)라는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제14구역에 안치되었다. 에밀 야콥 쉰들러의 딸인 알마(Alma)는 나중에 구스타프 말러의 부인이 되었다. 쉰들러가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그가 당시 황태자였던 루돌프(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 왕비의 아들)와 함께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인 달마티아(Dalmatia)와 그리스의 일부 지역을 순방하며 제국의 영토에 대한 일련의 작품을 제작한 이후부터이다. 쉰들러는 특히 풍경화에 뛰어났다.

 

쉰들러의 작품인 '라구사 광경'


에밀 야콥 쉰들러는 비엔나의 어떤 작은 공장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으로서 출세할 것을 원했지만 그는 화가로서의 길을 택했다. 1860는 쉰들러는 비엔나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알베르트 짐머만(Albert Zimmermann)을 사사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당시 유명한 화가였던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와 친분을 쌓게 되어 심지어는 마카르트의 집에서 상당기간동안 함께 지내기도 했다. 1879년 그는 가수인 안나 조피 베르겐(Anna Sofie Bergen: 1857-1939)와 결혼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생활이 곤궁하여서 쉰들러의 선배 화가인 율리우스 빅토르 베르거(Julius Viktor Berger)의 집에 거처했다. 이곳에서 첫 딸인 알마가 태어났다. 쉰들러가 병에 걸려 요양차 시골에 가 있는 사이에 부인인 안나 조피 베르겐은 집주인인 베르거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 쉰들러의 둘째 딸인 마르가레테는 아마도 베르거의 소생이라고 생각되었다. 신병에서 회복한 쉰들러는 1881년 제국화가상을 받았고 이로 인하여 베르거의 집에서 나와 큰 집으로 옮길수 있었다. 그로부터 쉰들러의 작품은 인기를 끌어 잘 팔렸다. 1885년, 그는 노이렝바흐(Neulengbach) 부근의 플랑켄버그성(Schloss Plankenberg)에서 여름을 지냈다. 이때 여러 명의 화가 지망생들이 쉰들의 문하를 찾아와 예술그룹을 형성하였다. 그중에는 마리 에그너(Marie Egner)도 포함되어 있었다. 쉰들러의 부인인 안나 조피 베르겐은 베르거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가족들에게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후 이번에는 쉰들러의 제자인 칼 몰(Karl Moll)과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쉰들러의 화가로서 명성은 계속 높아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창 나이인 50세에 세상을 떠났다. 1892년이었다. 그는 오베르 산크트 바이트(Ober St.Veit) 공동묘지에 매장되었으나 얼마후 중앙공동묘지의 저명인사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쉰들러가 세상을 떠난지 3년후 안나(Anna)는 남편 쉰들러의 제자인 칼 몰(Carl Moll)과 정식으로 결혼하였다. 그리하여 쉰들러의 딸인 알마는 몰의 수양딸이 되었다.

 

   

에밀 야콥 쉰들러와 딸인 알마 말러-베르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