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저명 인사

히칭 한스 모저 플라츠의 한스 모저 기념상

정준극 2008. 12. 17. 09:20

 

히칭(Hietzing) 한스 모저 플라츠의 한스 모저 기념상

 

히칭의 한스 모저 플라츠(한스 모저 광장)에 있는 한스 모저의 기념상

 

한스 모저(Hans Moser: 1880-1964)는 오스트리아의 배우로서 주로 코미디 영화에 주역으로 출연하여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배우생활을 오래하였다. 1920년부터 시작하여 196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40년 이상을 현역배우로서 활동하였다. 요한 율리어(Johann Julier)라는 이름으로 비엔나에서 태어난 그는 아주 평범하고 친근미가 있는 인상의 인물이었다. 그는 우리 주위에서 무심히 볼수 있는 하인, 웨이터, 포터, 가게 점원, 휘아커 마부의 모습이다. 모저는 영화에서도 겸손하고 정직하며 도덕심이 강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좋아하며 주위에서 어려운 문제가 일어나면 현명하게 해결해주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또한 아름다운 딸을 둔 홀아비로서 고집이 세며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역할로도 자주 등장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기의 우둔함을 깨닫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모저는 이상하게도 중얼거리는 장면으로 인기를 끌었다. 만일 모저가 대사를 명확하게 했다면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말끝을 흐리게 마치며 더구나 비엔나 사투리를 강하게 사용했다. 그래서 같은 독일어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비엔나 토박이가 아니면 모저의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모저의 대표적인 역할은 오페레타 ‘박쥐’에서 술주정뱅이 간수인 프로슈(Frosch)이다. 모저가 출연한 1962년도판 영화 ‘박쥐’는 아직도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모저는 마치 우리나라의 김승호와 비슷한 배우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스 모저


모저는 나치가 득세한 1938년부터 1945년까지 대단한 곤경을 겪어야 했다. 부인인 블랑카 히르슐러(Blanca Hirschler)가 유태인이기 때문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저에게 부인과 헤어지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모저는  거절했다. 블랑카는 더 큰 문제를 피하기 위해 혼자서 헝가리로 일부러 도주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여생을 함께 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모저가 1924년 처음 출연한 영화의 제목이 ‘유태인이 없는 도시’(Die Stadt ohne Juden)라는 것이다. 한스 모저는 1964년 향년 84세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저명인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 대한 인기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젊은 연예인들이 모저의 말씨등을 흉내 내기를 즐겨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1924년 영화 '유태인이 없는 도시'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