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Franz Anton Hoffmeister(프란츠 안톤 호프마이스터)

정준극 2009. 5. 28. 22:14

Franz Anton Hoffmeister(프란츠 안톤 호프마이스터)

페터스 음악출판사의 기틀 마련

 

 

프란츠 안톤 호프마이스터

 

프란츠 안톤 호프마이스터(1754-1812)는 독일 작곡가 겸 음악 출판가이지만 비엔나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작곡가로 간주하고 있다. 네카 강변의 로텐부르크(Rottenburg)에서 태어난 호프마이스터는 14세 때에 공부하기 위해 비엔나에 왔다. 처음에는 법학을 공부했으나 주위로부터 음악적 재능이 있으니 음악가가 되라는 권유를 무시할수 없어서 20대 말에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30대 초반부터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 그는 19세기 초반 비엔나에서도 알아주는 작곡가가 되었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은 자주 연주되지 못하고 있어서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얻지 못했지만 대신 악보출판가로서는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이 기억되고 있다. 1785년 그는 비엔나에서 악보출판사를 설립하였다. 아마 비엔나 최초의 악보출판사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호프마이스터는 처음에는 주로 자기 자신의 작품을 출판했지만 나중에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클레멘티(Clementi), 알브레헤츠버거(Albrechtsberger), 디터스도르프(Dittersdorf), 바날(Vahnal)의 작품도 출판했다. 이들 작곡가들은 호프마이스터의 친구이기도 했다. 모차르트는 호프마이스터에게 현악4중주곡 D장조를 헌정했다. 베토벤은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프마이스터를 ‘가장 절친한 친구’라고 표현했다.

 

프란츠 안톤 호프마이스터가 태어난 네카 강변의 로텐부르크 마을광장

 

호프마이스터의 작곡 활동은 1791년부터 서서히 중단되었다. 대신 출판업무에 더욱 치중하였다. 1791년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이다. 호프마이스터는 오페라를 여러 편 작곡했다. 1790년대 초반에 자주 공연되었다. 그러나 흥행에 재능이 없어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되자 작곡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호프마이스터는 플루트주자인 프란츠 터너(Franz Thurner)와 함께 유럽 순회연주를 떠났다. 라이프치히에서의 연주회 때 호프마이스터는 오르간 주자인 암브로시우스 퀴넬(Ambrosius Kuhnel)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두 사람은 악보출판사를 새롭게 설립하자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라이프치히에 설립된 Bureau de Musique였다. 호프마이스터는 두곳에서 악보출판사를 운영하게 되었으나 얼마후 라이프치히의 출판사는 파트너인 퀴넬에게 전적으로 이양하고 비엔나에만 충실하였다. 라이프치히의 퀴넬 악보출판사는 나중에 C. F. Peters 출판사에 합병되었다. 피터스 출판사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악보 출판사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얼마후 호프마이스터는 비엔나의 출판사도 정리하여 어떤 제약업자에게 20년 역사의 출판사를 매각하였다. 호프마이스터의 작품으로는 플루트곡이 많이 있다. 플륫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플루트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플루트학생들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것이 되어 있다. 이밖에도 협주곡과 실내악도 작곡했다. 오페라는 8편을 작곡했으며 교향곡은 무려 50여편이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