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Franz von Suppe(프란츠 폰 주페)

정준극 2009. 5. 28. 22:23

Franz von Suppe(프란츠 폰 주페)

비엔나 낭만주의 오페레타의 중심

 

프란츠 폰 주페

 

오페레타 작곡가로서 유명한 프란츠 폰 주페는 작곡가로서 비엔나 낭만주의시기에 약 50편의 오페레타로서 사랑을 받았지만 지휘자로서도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주페는 1819년(삼일운동이 일어나기 1백년전)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한 달마티아(Dalmatia)의 슈플리트(Split)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슈플리트는 현재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로서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도시이다. 주페의 가족은 벨기에 계통으로서 18세기에 달마티아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주페는 도니체티와 먼 친척이 된다고 한다. 주페의 원래 이름은 프란체스코 에체키엘 에르메네길도 카발리에레 주페 데멜리(Frencesco Ezechiele Ermenegildo Cavaliere Suppe Demelli)라는 대단히 긴 것이다. 그는 제국의 수도 비엔나에 오자 이름을 간소화하고 아울러 독일식으로 Franz von Suppe라고 고쳤다. 그러나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는 간혹 간소화한 프란체스코 주페-데밀리(Francesco Suppe-Demelli)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초기에는 음악회의 프로그램에 주페의 이름이 그런 식으로 등장하였다.

 

주페가 태어난 슈플리트

 

주페는 어린시절을 차다르(Zadar)에서 보냈다. 차다르는 아드리아나해에 면한 크로아티아의 항구 도시이다. 그는 이곳에서 음악 레슨을 받고 처음으로 작곡을 시도하였다. 그후 소년 주페는 북부 이탈리아의 롬바르디 지방에 있는 크레모나(Cremona)로 가서 플루트와 화성학을 공부했다. 주페의 첫 작품은 가톨릭 미사였다. 이 미사곡은 주페가 불과 13세 때인 1832년 주페가 어린 시절을 보낸 차다르의 프란체스코교회에서 초연되었다. 청년 주페는 이탈리아의 파두아(Padua)로 가서 법률을 공부했다. 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공부였다. 그러나 주페의 마음은 음악에만 매달려 있었다. 주페는 틈틈이 작곡에 몰두하였다. 주페는 바리톤이기도 했다. 1842년 23세 때에 소프론(Sopron)극장에서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에서 둘까마라(Dulcamara)를 맡아 바리톤으로 데뷔하였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한 주페는 비엔나 요제프슈타트극장장인 프란츠 포코르니(Franz Pokorny)의 초청을 받아 비엔나에 입성하였다.

 

오페레타 '화티니차'의 한 장면

 

주페는 비엔나에서 몇몇 훌륭한 음악이론 선생들을 찾아가 개인 레슨을 받으며 작곡기법을 완성하였다. 주페는 처음에 요제프슈타트극장에서 보수를 받지 않고 지휘를 했다. 그러나 주페는 이곳에서 자기의 오페레타를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주페에 대한 명성은 점차 높아갔다. 그는 요제프슈타트극장뿐만 아니라 칼극장(Carltheater), 비엔나강변극장(Theater an der Wien), 바덴극장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다. 주페는 비엔나의 오페라 공연 역사에 있어서 랜드마크적인 활동을 했다. 예를 들면 1846년 세계적 소프라노 제니 린드(Jenny Lind)가 주역을 맡은 마이에르베르의 ‘위그노’의 비엔나 초연을 지휘한 것이다.

 

주페라 비엔나에 와서 처음 활동했던 요제프슈타트극장(테아터 인 데어 요제프슈타트)

 

주페는 약 30편의 오페레타를 작곡했지만 간단한 익살극 형태의 음악은 무려 180편이나 작곡했다. 이밖에도 발레음악, 기타 무대작품도 썼다. 오늘날 주페의 오페레타는 거의 잊혀져 있다. 하지만 몇몇 서곡들은 불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경기병’(Leichte Kavallerie)서곡, ‘시인과 농부’(Dichter und Bauer)서곡 등이다. 주페가 작곡한 노래인 Das ist mein Osterreich(이것이 나의 오스트리아)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함께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로 인정받을 정도로 사랑을 받은 곡이다. 지휘자 생활을 그만 둔 주페는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나 종교음악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는 요제프슈타트극장장이며 친구인 프란츠 포코르니를 위한 진혼곡(레퀴엠)을 작곡하였고 미사곡, 가곡, 교향곡, 콘서트 서곡들을 작곡하였다. 프란츠 폰 주페는 1895년 향년 76세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음악가 묘역에 안장되었다.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주페 묘지

 

주페의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오페레타는 다음과 같다.

 

- 시인과 농부(Dichter und Bauer ): 1846년 초연. 비엔나 강변극장(Theater an der Wien)

- 비틀거리는 행운(Die Irrfahrt um's Glück ): 1853. 비엔나 강변극장

- 기숙학교(Das Pensionat): 1860. 비엔나 강변극장

- 카드점 치는 아가씨(Die Kartenschlägerin): 1862. 비엔나 카이 극장(Kai-Theater)

- 열명의 아가씨에게 남자는 하나도 없다(Zehn Mädchen und kein Mann): 1862. 비엔나 카이 극장

- 대학생활(Flotte Burschen): 1863. 비엔나 카이 극장

- 피크 다메(Pique Dame): - 비틀거리는 행운(Die Irrfahrt um's Glück ): 1853. 비엔나 강변극장

- 기숙학교(Das Pensionat 오페라. 1864. 그라츠. 카드점 치는 아가씨의 수정버전. 푸슈키의 소설 바탕. 차이코브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도 푸슈킨의 소설을 바탕으로 삼은 것임.

- 아름다운 갈라테(Die schone Galathee): 1865. 비엔나 칼극장(Carltheater)

- 경기병(Leichte Kavallerie): 1866. 비엔나 칼극장

- 산적 길들이기(Banditenstreiche): 1867. 비엔나 칼극장

- 여주인(Die Frau Meisterin): 1868. 비엔나 칼극장

- 화티니차(Fatinitza): 1876. 비엔나 칼극장

- 보카치오(Boccaccio): 1879. 비엔나 칼극장

- 돈나 화니타(Donna Juanita): 1880. 비엔나 칼극장

- 가스콘사람(Der Gascogner): 1881. 비엔나 칼극장

- 벨맨(Bellmann): 1887. 비엔나 강변극장

- 행복 사냥(Die Jagd nach dem Glück): 1888. 비엔나 칼극장

 

'보카치오'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