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Franz Xaver Wolfgang Mozart(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정준극 2009. 5. 28. 22:25

Franz Xaver Wolfgang Mozart(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

 

모차르트에게 자녀들이 있었으며 그 중 하나는 역시 작곡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슈테판성당의 성캐터린채플에 걸려 있는 명판(銘板)에 의하면 모차르트에게는 여섯명의 자녀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 넷째와 여섯째가 바로 슈테판성당의 성캐터린채플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 아들이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로서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791년 태어났다. 모차르트는 12월에 세상을 떠났으며 프란츠는 7월에 태어났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는 보통 F. X. Mozart 또는 모차르트 주니어로 알려져 있다. F.X.Mozart는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음악교사였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라는 그의 이름은 모차르트의 친구 겸 제자인 프란츠 사버 쥐쓰마이르(Franz Xaver Suessmayr)가 모차르트를 추모하여 붙여준 것이다. 모차르트의 여섯 번째 아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는 아버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이름과 그의 제자 겸 친구인 프란츠 사버 쥐쓰마이르의 이름을 혼합한 것이다.

 

모차르트의 두 아들인 칼 토마스 모차르트와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우)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는 1791년 7월 26일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짐작컨대 현재의 슈테플 백화점 뒤편에 있는 라우엔슈타인가쎄(Rauensteingasse)에서 태어났다고 생각된다. 이 집은 프란츠가 태어난지 5개월 후에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프란츠는 평생 동안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아버지 모차르트의 그늘에 가려서 지내야 했다. 어린 프란츠는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요한 네포무크 훔멜로부터 음악 교습을 받았다. 프란츠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프란츠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주 어릴 때부터 작곡에 재능을 보였다. 프란츠는 아버지 모차르트의 후광을 업고 전문 음악인으로서 그리고 연주자로서 순탄한 생활을 하였다. 프란츠는 훌륭한 교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던지 대단히 소심했다. 아버지의 뛰어난 재능에 비하여 자기의 재능은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가 청년시절을 보낸 르비브(Lwow)의 중심지역

 

프란츠의 첫 피아노 협주곡은 1805년 프란츠가 14세 때에 발표되었다. 프란츠는 이 곡을 발표하여 얼마간의 돈을 벌수가 있었다. 프란츠는 계속 생활을 위해 돈이 필요했다. 17세 때에 그는 르비브(Lviv)로 가서 바보로브스키(Baworowski) 백작의 딸들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주며 돈을 벌었다. 백작의 저택은 외진 곳에 한가롭게 있었다. 프란츠는 비록 월급의 수준은 만족스러웠지만 외로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얼마후 그는 부르슈틴(Burshtyn)이라는 큰 도시에 사는 왕족인 야니체브스키(Janitzewski)공자의 딸들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고 수락하였다. 그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 이외에도 음악회장이나 살론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 자기의 작품과 아버지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주했다. 부르슈틴에서 2년을 지낸 프란츠는 다시 르비브로 가서 거의 20년 이상을 교사로서 지내며 피아노 연주도 했다. 프란츠는 르비브에서 합창지휘도 했다. 1826년에는 아버지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성조지대성당에서 연주하여 감동을 주었다. 프란츠는 르비브에서 성세실리아협회를 구성하여 음악활동을 진흥하였다. 이 협회는 나중에 르비브 최초의 음악학교로 발전하였다. 프란츠는 우크라이나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연주회를 가졌다. 프란츠는 1820년대에 안토니오 디아벨리(Antonio Diabelli)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하는 유럽 50대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칼스바드 (산 밑에 보이는 큰 건물이 요양원)

 

1838년, 그는 마침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그는 모차르트음악원(Mozrteum)의 합창지휘자 겸 음악감독의 직분을 맡았다. 프란츠는 잘츠부르크에 와서 정착한지 6년후인 1844년 잘츠부르크 인근의 칼스바드(Karlsbad)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소는 칼스바드에 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녀가 없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 있다. “May the name of his father be his epitaph, as his veneration for him was the essence of his life.” - 굳이 번역하면,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비문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에 대한 그의 존경심이 그의 생활의 요체였기 때문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