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Ernst Toch(에른스트 토흐)

정준극 2009. 6. 10. 23:39

Ernst Toch(에른스트 토흐)

퓰리처 음악상 수상

 

 

에른스트 토흐(1887-1964)는 고전음악과 영화음악의 작곡가였다. 토흐는 비엔나의 평범한 유태인 가죽제품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세기에 비엔나는 유럽문화의 중심지였다. 토흐는 음악가로서 생애를 빛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비엔나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이어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음악에 대한 집념을 포기할수 없어서 프랑크푸르트의 고등음악원(Hoch Conservatory)에서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토흐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 지역을 순방하며 연주회를 가져 높은 찬사를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토흐의 작품은 거의 모두 피아노곡들이었다.

 

작곡가로서 첫 작품을 작곡한 것은 13세 때인 1900년이었다. 모차르트 스타일의 현악4중주곡이었다. 이 작품은 1908년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되어 찬사를 받았다. 1909년에 발표한 실내교향곡 F 장조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모차르트상을 받았다. 이때로부터 토흐는 피아니스트로 보다는 작곡가로서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는 1910년 작곡으로서 멘덴스존상을 받았으며 1913년에는 만하임대학의 피아노 및 작곡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 이후로도 토흐는 유럽에서 알아주는 작곡상을 더섯개나 더 받았다. 1차 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오스트리아 군에 입대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했으며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16년 은행가의 딸인 릴리 츠바크(Lilly Zwack)와 결혼식을 올렸다. 전쟁이 끝난후에는 만하임으로 돌아와 새로운 대위법에 의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하이델베르크의 호흐 콘저바토리(1900년대)

 

1930년, 그는 이른바 Gesprochene Musik(대화체 합창곡)을 개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대표작은 Fuge aus der Geographie(지리적 푸가)라고 할수 있다. 이후 그는 영화음악, 교향곡, 실내악, 챔버오페라(실내오페라) 등을 작곡했다. 그는 또한 음악이론을 다룬 Melodielehre(1923)와 The Shaping Forces in Music(1948)이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토흐는 나치 이전시기에서 가장 위대한 아방-가르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나치가 집권하자 다른 많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추방당했으나 다행하게도 미국으로 건너갈수 있었다. 토흐는 1956년 그의 제3교향곡으로 퓰리처 음악상을 받았다. 그의 제자로서는 리하르트 베르니크(Richard Wernick) 등이 있다. 에른스트 토흐는 196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명한 작가인 로렌스 베슐러(Lawrence Weschler)와 토니 베슐러(Toni Weschler)는 그의 손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