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안 쿠르츠봐일(Maximilian Kurzweil)
막시밀리안 쿠르츠봐일은 1867년 모라비아의 비센츠(Bisenz)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브체네크(Bzenec)라고 부르는 곳이다. 당시 모라비아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영토였다. 그는 1886-88년 비엔나시각예술아카데미(Akademie derBildenden Künste)에서 독일 출신의 화가인 크리스티안 그리펜케를(Christian Griepenkerl)의 지도를 받았으며 1890-91년에는 오스트리아 화가인 레오폴드 칼 뮐러(Leopold Karl Müller)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후 파리에 가서 아카데미 줄리앙(Academie Julian)에서 공부를 했다. 이때 브리타니 지방을 여행하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먼바다를 항해하는 배, 반짝이는 바다 표면, 바다에서의 일출과 일몰, 항구에서의 작업,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리타니 사람(Breton)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나중에 그의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비엔나에 돌아온 그는 1894-95년 비엔나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인물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였다.
노란 드레스의 부인(쿠르츠봐일의 부인 마르타가 모델이라고 함)
1895년 이후 그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미술, 특히 Plein-air 작풍에 대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전보다 더 가볍고 더 밝은 색채를 사용하게 되었다. 1895년 그는 브리타니 여인인 마르타 귀요(Martha Guyot)와 결혼하였다. 쾨르너의 브리타니 사랑은 전보다 더 진하게 되었다. 1899년 쾨르너 부부는 비엔나에 와서 슈빈트가쎄(Schwindgasse) 9번지의 집을 샀다. 이 집의 실내장식은 요셉 호프만(Josef Hoffmann)이 맡았다. 1896년 그는 비엔나 퀸스틀러하우스(Künstlehaus)의 멤버가 되었으며 1897년에는 제체시온의 설립멤버로서 Lady in Yellow Dress(부인 마르타를 그린 것: 비엔나미술사박물관 소장), Concarneau Harbor(콩카르노 항구: 벨베데레 미술관 소장)등을 제체시온 전시회에 출품하였다. 그는 1898-1903년에 제체시온의 베르 사크룸을 위해 여러 개의 목각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목각작품은 Cushion(쿠션)으로 부인 마르타가 디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1905년 그는 클림트 그룹과 함께 제체시온을 떠났다. 1909년부터 1915년까지는 비엔나여자예술학교의 교수를 역임했다. 1차대전 중에는 종군 예술가로서 이스트리아의 전투에 참전하였다. 전쟁중 비엔나로 휴가온 그는 1916년 5월 9일 자살했다. 자살의 원인은 아직 잘 모른다. 그의 부인이 기업인으로부터 억대 시계를 생일 선물로 받아서였나? 그의 작품은 1960년대에 들어서서야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Der Polster(쿠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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