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화가와 조각가

마르틴 요한 슈미트(Martin Johann Schmidt)

정준극 2009. 6. 21. 21:44

마르틴 요한 슈미트(Martin Johann Schmidt)

 

마르틴 요한 슈미트(1718-1801)는 남부 오스트리아의 그라펜뵈르트(Grafenwörth)에서 태어나 활동하기는 주로 크렘스(Krems: 예전에는 Stein)에서 했으며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크렘스의 슈미트’(Kremser Schmidt)라고 불리는 19세기 오스트리아의 후기 바로코/로코코 화가이다. 슈미트는 프란츠 안톤 마울버츄(Franz Anton Maulbertsch)와 같은 시대에 활동하면서 주로 교회와 수도원의 종교화를 그렸다. 그는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의 렘브란트’라고 불릴 정도로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같은 공적에 따라 그는 1768년 예술가로서는 가장 명예로운 제국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아크테온의 다이아나(Diana in Akteon)

 

슈미트의 조각가인 아버지 요한네스 슈미트(Johannes Schmidt)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에 가서 공부한 일도 없고 사람들과 교제한 일도 없이 평생을 크렘스에서 보냈다. 남부 오스트리아에 있는 여러 성당과 수도원에 있는 제단화와 천정 프레스코 등의 성화는 상당수가 슈미트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북부 이탈리아 스타일을 닮았다고 하지만 그는 북부 이탈리아에 가서 지낸 일도 없다. 그의 작품은 렘브란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슈미트가 스케치 해 놓은 것들을 보면 렘브란트가 스케치 해 놓았다고 해도 분간이 안될 정도이다. 물론 슈미트는 렘브란트의 작품을 많이 공부했지만 그렇다고 렘브란트를 만나본 일은 없다. 슈미트의 작품은 생동감과 함께 색채감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슈미트는 말년에 들어서서 신화적인 작품과 서민생활을 다룬 작품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계층의 사람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의 스타일은 초기에 인상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으나 말년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에 보다 치중하였다.

 

 봐이젠키르헤의 제단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