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관
상당히 이색적인 디자인의 성당이다.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을 보는듯도 하고 일본 오사카의 성을 보는 듯도 하다. 그러다보면 경복궁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을 보는듯도 하다.
용산구 서부이촌동에 새남터 기념관이 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중앙선을 타고 잠시 가다가 보면 이촌역에 도달하기 전, 서부이촌동에 얼핏 커다란 누각과 같은 한옥 건물이 보인다. 새남터 기념성당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새남터 기념관은 새남터 성당과는 별채로 구내의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기념관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천주교회가 어떻게 창설되었으며 어떤 박해를 받아왔는지에 대한 내용이 엄숙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한국의 천주교 역사를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언제 어떻게 유입되었으며 어떤 전도활동은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어떤 박해를 받았는지에 대하여는 소개할 엄두가 나지 않아 생략코자 한다. 책으로 써도 몇 권에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실상 이미 이에 대한 자료와 서적들이 수없이 많이 나와 있으므로 굳이 힘들여서 중복되게 정리하고 소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본 블로그에서는 그저 새남터 기념관이 훌륭하게 있다는 자체만을 소개하는데 그치고자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궁금하면 한번 직접 찾아가 보면 좋을 것이다. 천주교인이건 아니건 근대 우리나라의 역사를 일고함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찾아가는 길은 그다지 쉽지 않다. 지하철 1호선이나 중앙선의 용산역에서 내리거나 또는 4호선 신용산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와 제1한강교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길 건너 서부이촌동 가는 길로 접어들어서 누각처럼 생긴 큰 기와집을 찾아가면 된다. 또는 용산역 앞 버스길에서 이촌동행 지선버스 0017번(녹색)을 타고 가다가 잠시후 새남터 성당 앞에서 내리면 금방이다.
새남터 기념관의 각종 형구 전시 및 체험 장소
새남터는 어떤 곳인가? 조선 후기에 국사범을 처형하던 곳이다. 당시에는 아마 한강변의 모래밭이었을 것이다. 머리를 칼로 내리쳐 자른후 흘러내린 피를 모래로 적당히 덮어두면 잘 알수 없기 때문에 모래밭을 처형장소로 택한 것 같다. 우리나라 첫 천주교 순교자는 중국인 주문모 신부이다. 1801년 5월 31일 새남터에서 효수당하여 순교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에는 제2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된 프랑스의 앵베르 주교와 그를 도와 전도하던 모방 신부 및 샤스탕 신부가 역시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하여튼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들은 험난한줄 알면서도 순교를 각오하고 선교에 앞장서니 이들의 신앙심만은 알아 모셔야 할 것이다. 1846년 병오박해 때에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등이 역시 이곳에서 순교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제4대 조선교구장인 베르뇌 주교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신부들이 이곳에서 모두 순교했다. 모두 몇 명이 새남터에서 순교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조선 천주교에 대한 4대박해 사건 중에서 1866년에 시작하여 대원군이 물러나던 1873년까지 계속된 병인박해에서만 약 1만명이 순교하였다고 하니 킬링 필드가 따로 없다. 잔인하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이 민족?
14명의 순교자 모습
참고로 말하자면 조선에서 천주교 때문에 순교한 수많은 교인들 중에서 바티칸에 의해 103명이 성인의 반열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출신의 성인이 1백명이 넘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파리 외방전도회 출신의 선교사 10명을 포함하여 조선인 93명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중 남자는 56명이고 여자는 47명이었으니 순교한 여신도들이 그렇게 많았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천주교로 인하여 순교한 사람들은 수만명에 이른다. 6.25 전쟁 때에 북한 인민군에게 잡혀 죽임을 당한 천주교 사제와 신도들도 상당히 많다. 한국의 순교자 103인이 성인으로 시성된 것은 한국천주교 2백주년을 기념하여 1984년 5월 4일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물론 로마의 바티칸에서 대대적인 행사로서 시성식이 열렸다. 새남터 기념관은 이러한 뜻 깊은 역사를 더욱 기리고자 2006년 9월 3일 오픈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기념성전 머릿돌
기념관의 작은 문을 거쳐 곧장 지하로 내려가면 우선 한국천주교회의 창설과 4대 박해에 대한 파넬이 전시되어 있다. 이와 함께 한국천주교회의 시복과 시성에 대한 역사가 설명되어 있으며 이어 순교지의 모습, 관가에서 박해 받는 모습 등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 체험실에는 당시 사용하던 형구와 형틀도 마련되어 있어서 원한다면 직접 형틀에 엎드려 곤장을 맞는 흉내를 체험할수 있다. 전시장의 중앙에는 순교자 14인의 모습을 동판 부조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주문모 신부, 성김대건 안드레아, 성앵베르 라우렌시오 범세형 등의 모습과 그분들에 대한 사연을 적어 놓았다. 순교하신 분들의 친필 서신과 일기 등이 전시되어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알수가 없어서 겉으로만 봐야 한다. 영상실에서는 새남터 순교에 대한 영상물을 관람할수 있다. 관람 코스의 마지막 코너에는 성인 유해실이 있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김대건 안드레아를 비롯한 9명 순교자의 유해가 작은 상자에 모셔져 있어서 엄숙함을 더해주고 있다.
새남터 기념성전 입구의 성물방. 오른쪽 구석에 있는 현관이 기념관 입구이다.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4대박해란 무엇인지 겉으로만 훑어보면, 신유, 기해, 병오, 병인박해를 말한다. 신유박해는 1801년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임금이 되던 해에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의 금교령에 의해 일어난 박해이다. 이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순교했다. 도대체 대왕대비가 무엇이관대 천주교를 박해하고 외국인 신부까지 잡아서 처형을 했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두번째 기해박해는 1839년 일어났다. 헌종이라고 하는 무얼하는 양반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임금으로 있을 때였다. 안동 김씨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풍양 조씨 일파가 일으킨 싸움 때문에 애꿎은 천주교인들만 순교를 당했다고 하니 이것이 과연 천주님의 뜻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에서 오신 여러 명의 신부들도 이때에 순교하였다. 세번째 병오박해는 1846년에 일어났다. 역시 헌종이라는 임금의 시절이었다. 김대건 신부의 체포를 계기로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의 위대한 성인인 김안드레 대건 신부께서 순교한 박해가 바로 병오박해이다. 그러고보면 헌종이란 사람은 이름만 그럴듯하지 실제로는 한심한 인간이어서 천주교 박해를 그저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었던 모양이다. 네번째는 병인박해이다. 1866년 고종 시절에 흥선대원군이 일으킨 박해이다. 무려 1만여명이 순교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은 낙원동에 있는 운현궁 일대에는 아예 발길도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도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념성전 2층 베란다에 있는 그리스도상. 용산역 재개발 지역 쪽을 향하여 손을 벌리고 계시다. 욕심들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새남터 기념관은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여름(4-11월)에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할수 있으며 겨울(12-3월)에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문을 연다. 관람료는 없다. 다만, 자발적인 헌금은 받고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전화 02-716-1791로 하면 된다. 사족이지만, 1791이란 숫자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이므로 외기가 쉽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와 박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자 하면 수고스럽지만 저 경기도 광주 부근에 있는 천진암 기념관을 찾아가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새남터에서 새남이라는 말은 모래를 뜻하는 '새'와 나무를 뜻하는 '남'이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한강변의 모래밭에 나무들이 듬성듬성 있었던 곳인 모양이다. 일찍이 성삼문 등 사육신이 처형을 당한 곳도 새남터라고 되어 있다.
새남터 기념성전은 마치 국립민속박물관처럼 누각과 난간과 계단이 아름답다.
조선 최초의 사제인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상. 참으로 굳건한 신앙인의 모습을 볼수 있다.
새남터 기념성전의 제단. 마치 무슨 절의 탱화를 보는 듯하다. 석굴암 같기도하고...
첫 순교자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 기념상
새남터 기념성전
새남터 기념성전의 벽면에는 순교 성인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새남터 기념 성당에 있는 한복을 입고 쪽을 지고 비녀를 꽂은 성모와 꽃을 들고 있는 아기 예수. 참으로 사랑스럽고 거룩해 보이는 성모와 아기예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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