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과학자/유명 발명가

타자기와 페터 미터호퍼(Peter Mitterhofer)

정준극 2009. 8. 31. 19:21

타자기의 아버지

페터 미터호퍼(Peter Mitterhofer)

 

 

페터 미터호퍼(1822-1893)는 타이프라이터(타자기)의 대량생산에 기여한 인물이다. 남부 티롤지방 출신인 미터호퍼는 오스트리아의 에디슨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발명의 도사였다. 미터호퍼는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발명하였다. 예를 들면 라우드스피커, 사진액자, 세탁기, 밧줄 만드는 기계, 그리고 다섯 모델의 타자기를 개발하였다. 그는 음악에도 재능이 있어서 티롤지방 음악회에서 자주 연주하였다. 미터호퍼가 처음 타자기를 만든 것은 1864년이었다. 활자와 연결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이 원형 타자기(모델 1)는 키보드를 두 손으로 치도록 설계되었으며 스페이스와 특수기호도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터호퍼는 이를 실패작으로 간주하였다. 현재 미터호퍼의 최초 타자기는 비엔나기술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865년에 개발한 모델 2는 드레스덴기술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모델 1보다는 소형으로 여러 가지가 개선되었다. 예를 들면 자동 스페이스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모델 2는 현대 타자기의 원형이 된 것이다. 이때로부터 다량생산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검토되었다.

 

미터호퍼는 모델 2호를 개량하여 이를 들고 1866년 비엔나로 향하였다. 티롤에서부터 걸어서 비엔나에 갔다고 한다. 모델 3에서는 활자의 기둥들이 구부러진 형태를 취하였다. 그리고 종이를 넣은 프레임도 평면에서 원통형 롤러로 교체되었다. 미터호프는 프란츠 요셉 황제에게 공장생산을 지원하여 달라고 청원하였다. 1867년 1월 25일 폴리테크니크연구소의 검토 결과, 다량생산이 허가되었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200 길더를 상금으로 하사하였다. 황제의 지원에 용기백배한 그는 1867년부터 모델 4를 만들기 시작했다. 종전의 것과는 달리 주로 금속으로 만든 것이었다. 39개의 키보드가 달려 있으며 쉬프트로서 대문자와 소문자를 구분하도록 했다. 이로써 총 72개의 타이프로서 26개 알파벳의 대소문자, 10까지의 숫자, 10개의 기호를 타자할수 있게 되었다. 종이는 롤러에 넣도록 되어 있으며 스페이스는 자동으로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다음 개발을 위한 준비였다.

 

초기의 타자기. 롤러가 아니라 판위에 종이를 얹어 놓도록 되어 있다.

               

다섯 번째 모델은 1869년에 완성되었다. 미터호프의 영광의 면류관이었다. 키보드는 모두 82개로 늘어났으며 프린터의 잉크도 구분할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다. 이것으로 그는 타자기 개발이 완성되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1870년 이후부터는 더 이상 타자기 개발에 몰두하지 않았다. 대신, 보다 실용적인 물건의 개발에 관심을 두었다. 세탁기 따위였다. 미타호퍼의 업적은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에서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당시에는 그저 정치, 군사가 제일이었고 발명이나 기계 따위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미터호퍼의 업적은 겨우 1920년에 가서야 인정을 받았다. 오스트리아공화국은 미터호퍼를 ‘타자기의 개발자’라고 부르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