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물들/베로니카의 수건

여러 개의 복제품

정준극 2009. 11. 2. 20:47

[여러 개의 복제품]

 

17세기 이후에 베로니카의 수건의 종적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보다도 현재 세계의 여러 곳에서는 진품 베로니카의 수건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데 과연 어떤 것이 진짜일까? 참으로 희한하게도 베로니카 수건의 오리지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최소한 6개가 있다. 물론 오리지널이라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므로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오리지널이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초기에 오리지널을 직접 보고 복사한 것이기 때문에 오리지널과 같다는 주장을 한다. 그것도 그럴듯하다. 아무튼 베로니카의 수건 진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곳은 어디어디인지 살펴보자. 모두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이므로 거짓이라고 말할수도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 성베드로성당(St Peter's Basilica)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에는 중세로부터 사람들이 베로니카의 수건이라고 믿고 경배해온 수건이 남아 있다. 베로니카의 수건은 성베드로성당의 가운데, 돔을 바치고 있는 기둥 중에서 남서쪽에 있는 기둥의 발코니 뒤의 있는 채플에 있다. 어찌된 일인지 근세에 들어와서 이 수건을 검사했다는 기록은 없다. 사진도 없다. 가장 최근에 검사한 것은 1907년으로 당시 예수회 역사학자인 요셉 빌퍼트(Joseph Wilpert)가 바티칸의 허락을 받고 수건을 덮은 두장의 유리를 옮기고 수건에 프린트되어 있는 성상을 본 것이었다. 그는 그림이 낡아서 제대로 형상을 알아볼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티칸은 매년 고난주일(Passion Sunday)에 수건을 담은 상자를 전시하고 있다. 고난주일 오후 5시에 저녁미사의 시작과 함께 수건에 대한 축복이 이루어진다. 그후 베드로성당 내에서 간략한 행진이 벌어진다. 수건에 프린트된 예수의 얼굴 모습은 보기가 어렵고 다만 액자의 테두리만 볼수 있다.

 

- 비엔나 호프부르크(Hofburg)의 제국보물실(Schatzkammer)

비엔나의 호프부르크 궁전에 있는 제국보물실(샤츠캄머)에도 베로니카의 수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복제품이다. 중세에 스트로찌라는 사람이 복제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액자의 오른쪽 구석에 P.Strozzi라는 서명이 있다. 스트로찌는 교황 바오로5세의 비서로서 일명 야코포 그리말디(Jacopo Grimaldi)라는 이름의 바티칸 공증인이었다. 그는 1617년 베로니카 수건의 복사품을 여섯 개 만들고 각 작품마다 공증의 표시로 자기의 서명을 넣었다. 제국보물실에 있는 복제품 수건을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얼굴 모습이 너무 흐려서 알아보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마치 잉크가 번져서 얼룩진 문양 같았다고 한다. 다만, 코와 눈과 입 정도만 간신히 구별할수 있었다고 한다. 스트로찌가 복제품을 만들 때에 정성 들여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판별할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한편, 1617년에 복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은 1527년 로마의 폭동 때에도 수건이 바티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다는 증거이다. 신성로마제국은 비록 나중에 복제품으로 판명되었지만 호프부르크에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을 진본이나 다름없이 간주하고 있다.

 

비엔나 호프부르크의 제국보물실에 보관되어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에 나타난 예수의 얼굴. 도깨비?

 

- 스페인의 알리칸테(Alicante)수도원

교황 니콜라스5세(Nicholas V)가 1453년에 친척인 비잔틴 황제로부터 획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베로니카의 수건이 스페인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몇십년 후인 1489년이었다고 한다. 베로니카의 수건은 바티칸의 추기경으로 있던 스페인의 신부 모센 페드로 메나(Mosen Pedro Mena)가 받아서 남부 스페인의 알리칸테에 있는 수도원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해 3월 17일 수많은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액자에 넣은 베로니카의 수건을 앞세운 행진이 있었다. 갑자기 그림에 있는 예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당시 알리칸테 지방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예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기적을 내려 주신 구주 예수를 찬양하였다.

 

오늘날 베로니카의 수건은 1611년 알리칸테 지방의 외곽에 새로 지은 ‘성스러운 얼굴 수도원’(Monastery of the Holy Face: Monasterio de la Santa Faz)의 채플에 간직되어 있다. 채플은 당대의 조각가인 호세 빌라노바(Jose Vilanova)가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특히 채플의 제단에는 오랜 가뭄이 끝나고 단비가 내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최후의 심판과 구원을 주제로 한 성화도 장식되어 있다. ‘성스러운 얼굴 수도원’은 2003부터 3년에 걸쳐 대폭 보수되었다. 그때 마을 중심지에 성니콜라스 대성당과 성모 마리아 교회도 함께 건설되었다. 이들 세 건물들의 완성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 ‘영원한 얼굴’(The Face of Eternity)라는 타이틀의 전시회가 열려 성황을 이루었다.

 

알리칸테의 '성스러운 얼굴 수도원 교회'에 있는 예수의 이미지. 좀 곤란한 모습니다.

 

- 스페인의 하엔(Jaen)대성당

남부 스페인의 하엔대성당에도 베로니카의 수건의 복제품이 있다. 14세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시에나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비록 복제품이기는 하지만 이곳의 베로니카의 수건은 영묘의 중앙제단에 모셔져 있다. 매년 성금요일과 예수 승천축일에는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14세기에 니콜라스 데 비드마(Nicholas de Biedma) 주교가 가져온 것이라고 하며 산토 로스트로(Santo Rostro)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스페인의 하엔대성당. 하여튼 스페인도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 제노아의 ‘성스러운 얼굴’

제노아에는 규모가 작은 아르메니아교회인 성바르톨로뮤(St Bartholomew)교회에 간직되어 있다. 14세기에 제노아 총독인 레오나르도 몬탈도(Leonardo Montaldo)가 비잔틴 황제인 요한5세(John V)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라고 한다. 최근인 1969년에 유명한 고고학자인 콜레트 뒤루프 보쪼(Colette Dufour Bozzo)가 성바르톨로뮤교회에 간직되어 있는 베로니카의 수건을 자세히 검사하였다. 수건은 두 개의 액자에 들어 있었는데 겉의 액자는 14세기에 만들어 진것이 분명하며 안에 있는 액자는 그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예수의 얼굴이 프린트되어 있는 수건은 나무판자에 풀을 칠하여 붙였었다는 사실도 밝혀 냈다. 성바르톨로뮤교회의 수건은 오리지널과 가장 흡사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제노아의 성바르톨로뮤교회에 있는 이미지.

 

- 실베르트로(Silvestro)의 ‘성스러운 얼굴’

원래는 1870년까지 로마의 성실베스트로(St Silvestro)교회에 간직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바티칸의 마틸다채플에 보관되어 있다. 성실베스트로교회에 있는 것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517년이었다. 1517년은 종교개혁일 일어난 해이다. ‘성스러운 얼굴’은 바로크 양식이 아름다운 액자에 넣어져 있는데 디오노라(Dionora)라고 하는 수녀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수녀원에서는 베로니카의 수건을 맘대로 전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베로니카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제노아의 것과 마찬가지로 나무판자에 풀로 붙여 놓았던 것 같다고 한다. 성실베스트로교회의 수건은 2000년 독일에서 열렸던 엑스포의 바티칸관에 전시되었었다.

  

로마의 산실베스트로성당 

 

- 마노펠로(Manoppello)의 이미지

1999년 신부이며 가톨릭대학교 교수인 하인리히 파이퍼(Heinrich Pfeiffer)는 로마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탈리아의 마노펠로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카푸친(Capuchin)수도원의 교회에서 베로니카의 수건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이미지는 카푸친수도원에 1660년부터 있었다고 한다. 마을 전설에 따르면 1508년에 어떤 순례자가 옷 보따리로 보이는 짐을 지고 이 마을에 나타났다고 한다. 순례자는 마침 카푸친수도원의 교회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자코모 레오넬리(Giacomo Leonelli)라는 의사에게 한 장의 천조각을 주며 잘 간수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레오넬리는 교회안으로 들어가 천조각을 열어보니 예수의 얼굴 모습이 담겨 있는 수건이었다고 한다.

 

마노펠로교회의 성상채플. 제단에 베로니카의 수건에 나타났다는 예수의 얼굴 그림이 걸려 있다.

 

놀란 레오넬리는 급히 밖으로 나와 순례자를 찾았으나 이미 행방을 알수 없었다고 한다. 수건은 레오넬리 가족이 1608년까지 간직하고 있었으나 판크라치오 페트루치(Pancrazio Petrucci)라는 군인이 레오넬리 가족 중의 하나인 마르치아 레오넬리(Marzia Leonelli)와 결혼하고 나서 레오넬리 집안에 가보처럼 여기는 수건이 있는 것을 알고 어느날 밤 몰래 훔쳐서 달아났다. 몇 년후 페트루치는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키에티(Chieti)라는 마을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페트루치는 부인인 마르치아를 만나 수건을 주며 이것을 팔아서 보석금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마르치아는 남편이라는 작자인 페트루치를 불쌍히 여겨서 수건을 도나토 안토니오 데 파브리티스(Donato Antonio de Fabritiis)라는 의사에게 단 돈 4 스쿠디(scudi)를 받고 팔았다. 파브리티스 박사는 이 수건을 카푸친수도원에 기증하여 오늘날까지 간직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얘기는 도나토 다 봄바(Donato da Bomba)신부가 작성한 Relatione historica(역사의 관련)라는 서류에 기록되어 있다. 봄바 신부는 실제로 1640년부터 수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왔다.

 

마노펠로의 이미지. 정말 예수님이 이렇게 생기셨을까? 이거 참!

 

파어퍼 교수는 카푸친수도원에 있는 수건이 오리지널 ‘베로니카의 수건’이라고 주장했다. 즉, 1506년 바티칸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될 때에 분실된 것이 마노펠로 마을의 카푸친수도원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그는 그 수건이 무덤에 있던 예수의 얼굴을 싸맸던 것으로 예수가 부활할 때에 얼굴을 묶었던 수건을 벗어내면서 생긴 자국이라고 내세웠다. 그리고 토리노의 수의에 찍힌 이미지도 이때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카푸친수도원의 수건을 조사한 결과 1세기 때의 것, 즉 예수가 활동했던 시기의 수건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들은 증거가 박약하기 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콤의 덕택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어 각계의 관심을 끌었다. 심지어 교황 베네딕트16세도 2006년 9월 1일에 마노펠로의 수건을 방문하였다.

 

수건(베일)을 조사한 결과, 비써스(Byssus)라는 특수 섬유로 만들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런 종류의 섬유는 고대 이집트와 히브리에서 제작한 것으로 디벨트(Die Welt)지의 바티칸 특파원인 파울 바데(Paul Badde)의 의하면 이 섬유는 이집트의 파라오 무덤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라고 한다. 수건에 나타난 이미지와 관련하여서는 일부 교회의 인사들은 그것이 사람에 의해 그려진 것이 아니라 신의 섭리에 의해서 그려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사람이 그린 것이 틀림없다는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중세 후기 또는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남자의 얼굴 스타일을 닮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그림은 마치 알브레헤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자화상을 보는듯 했다.

 

예루살렘의 6처에 있는 베로니카교회의 제단. 일설에는 베로니카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비엔나 제국보물실의 그리스도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