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이야기/라마의 태국

76명의 동생

정준극 2009. 12. 29. 04:29

9. 76명의 동생을 둔 출라롱코른


라마5세 출라 대왕이 세상을 떠난 후 큰아들이 다음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계산상으로 라마6세였다. 이름은 너무 길어서 생략코자 하지만 그래도 굳이 알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 같기에 밝히자면 짧게는 바지라부드(Vajiravudh)라고 하지만 공식명칭은 프라 바트 솜뎃 프라 라마티보디 시 신타라라마하 바지라부드 프라 몽쿳 클라오 챠오 유 후아(Phra Bat Somdet Phra Ramathibodi Si Sinthararmaha Vajiravudh Phra Mongkut Klao Chao Yu Hua: 1881-1925)였다. 라마6세는 이것저것 할 일이 대단히 많아 몸이 허약했다. 동생들이 너무 많아 힘들었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동생이 무려 76명이나 되었다. 아무튼 재위 15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후사가 없이 요단강을 건너갔으므로 다음 왕위는 당연히 수많은 동생들 중에서 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제일 막내 동생 (출라 왕의 76번째 아들)의 생모는 똘똘한 인물이어서 기왕에 자기 아들이 왕이 되도록 열심히 치맛바람을 일으킨 결과 이윽고 자기 소생의 아들이 왕관을 쓰게 되었다. 이가 곧 라마7세이다. 이름은 짧게 마히돌(Mahidol)이었다. 마히돌(라마7세)은 그 시절에 미국 유학을 했다. 하바드를 졸업했다. 의학 전공이었다. 그는 나중에 ‘근대 태국 의학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훌륭한 의학자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들의 아들들이란 인간들이 뇌물 처먹고 잡혀가기가 일수인 것과 비교해 볼 때 태국 왕의 이들들은 대단한 애국자 및 선각자가 아닐 수 없다.

 

위대한 라마5세 출라롱코른 대왕


다른 형제들은 어찌 되었나? 라마5세는 참으로 영특하여서 나라의 개화를 위해 다른 아들들을 거의 모두 해외 유학을 보내어 신학문, 신기술을 배워 오도록 했다. 의사가 되어 오기도 했고 엔지니어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모두 태국의 선진 조국을 위해 헌신하였다. 다행하게도 모두 왕위에는 관심 없었고 전문가로서 만족하였다. 큰 아들은 영국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셰익스피어 전문이었다.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큰 아들은 처음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태국어로 번역하여 낼 정도로 영문학에 뛰어났다. 라마5세는 역대 태국 임금님 중 처음으로 해외출장을 간 인물이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순방하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강화도령 철종을 지나 고종이 왕으로 있을 때였으니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철종이나 고종은 해외 출장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1907년 출라롱코른 대왕은 수많은 아들들을 데리고 두번째 유럽수학여행을 떠났다. 사진은 영국에서 아들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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