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라 스칼라 집중탐구

스칼라극장박물관

정준극 2010. 2. 2. 19:14

스칼라극장박물관(Museo Teatrale alla Scala)

 

라 스칼라의 오디토리엄

               

스칼라극장박물관의 스토리는 1911년에 시작된다. 1911년 초반, 우베르토 디 모드로네(Uberto Di Modrone)공작, 로도비코 팔리아기(Lodovico Pagliaghi)교수, 작곡가이며 대본가인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 일 세콜로(Il Secolo)지의 특파원인 보르사(Borsa), 상원의원인 망길리(Mangili), 레오폴도 플레(Leopoldo Pulle)백작 등이 스칼라극장의 휴게실에 모였다. 이들은 누구인가? 스칼라극장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을 논의했나? 그해 5월 1일에 파리의 경매장에서 남들의 손에 들어갈 운명에 있는 스칼라 관련 기념품 및 유품들을 다시 사들여야 한다는 논의를 했다. 파리의 유명한 골동품 수집가인 줄르 상봉(Jules Sambon)이 그동안 수집한 스칼라 관련 물건들을 경매에 내놓기로 했다는 것이다. 경매까지는 1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어떻게 자금을 모을 것인가? 이들은 정부에 청원하는 한편 일반 시민단체에게도 호소하였다. 시민대표 50명은 각자 5천 리라씩 헌금하기로 했다. 결국 스사모(스칼라를 사랑하는 모임)는 미국인 억만장자인 J.P. 모건의 손에 넘어갈 뻔한 스칼라의 귀중품들을 모두 사들이는데 성공했다. 이 물건들이 현재 스칼라극장박물관의 씨앗이 되었다.


라 스칼라 극장

      

스칼라극장박물관은 공식적으로 1913년 3월 8일에 오픈되었다. 스칼라극장과 연결되어 있는 건물에서 엄숙한 의식이 진행되었다. 카지노 리코르디(Casino Ricordi)가 있던 건물이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 박물관측은 일반 시민이나 음악인들로부터 수많은 자료를 기증받거나 사들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음악(특히 오페라) 관련 박물관으로서는 가장 훌륭한 장소가 되었다. 일부 소장품은 베르디가 설립한 ‘음악인들을 위한 안식처’(Casa Verdi)에 보관되어 있다. 일부 조각이나 그림 소장품은 공공장소에 대여하여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박물관의 도서실은 규모면에서 세계적이다. 1952년에 Corriere della Sera의 저자이며 평론가인 레나토 시모니(Renato Simoni)가 4만여 장서를 기증함으로서 문을 열게 되었다. 이제 박물관을 자세히 구경해보자. 음악인들로서는 꿈만 같은 곳이다.

 

멀티 네크 기타. 하프형태의 기타이다.

          

[희귀 악기들의 집합장소]

우선 들어가면 여러 악기가 반겨준다. 16-17세기에 사용하던 하프시코드와 같은 건반악기인 버지널(Virginal)을 그린 그림이 있다. 설터리(Psaltery)라고 하는 옛 현악기, 루트, 라이어, 그리고 베르디가 쓰던 포르테피아노(피아노)가 전시되어 있다. 1874년 조각가 게미토(Gemito)가 제작한 베르디의 흉상도 한쪽에 있다. 그리고 스칼라를 처음 설계했던 피에르마리니의 초상화도 볼수 있다. 17세기의 스피넷(피아노의 전신)은 지금도 사용할수 있다. 다만 건반 위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놓여 있다. ‘누구든지 전문가가 아니면 손을 대지 마세요’(Inexpert hand, touch me not!)이다.

 

라 스칼라 도서실을 겸한 박물관의 전시. 라 트라비아타의 의상과 테이블 재현

 

다음은 16-18세기의 연극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Commedia dell'Arte 전시실이다. 당시의 배우들은 시도 읊었고 노래도 불렀으며 아크로바트와 같은 몸놀림도 할줄 알아야 했다. 자크 카요(Jacques Callot)의 그림은 거리극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흥미 있는 것이다. 극장과 음악과 관련한 도자기은 유럽의 유명한 도자기 공장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작은 악기들을 전시해 놓은 곳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수정으로 만든 플루트이다. 소리는 어떠할까?

 

라 스칼라박물관에는 수많은 음악관련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은 순회극단(코메디아 델라르테)의 공연장면을 도자기로 표현한 작품

 

[연극-음악관련 도자기들]

도자기류는 스칼라박물관의 자랑이다. 약 170점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 파리의 경매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도자기 그림의 주제는 Comedy d'Arte이다. 마스크를 쓰고 악기를 들고 춤을 추는 모습이 많다. 예술작품으로서의 도자기가 유럽에서 처음 생산된 것은 1710년경 작소니로서 동인도회사에 의해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도자기를 모델로 한 것이다.

 

 

데스데모나 역의 마리아 말리브란 초상화

 

[벨칸토 시대의 프리마 돈나]

또 다른 전시실은 벨칸토의 천국이다. 벽면에는 스칼라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프리마 돈나들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로시니의 첫 부인으로서 프리마 돈나였던 이사벨라 콜브란이 마이르(Mayr)의 사포(Saffo)에 출연했을 때 리라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반대편에는 1934-36년에 스칼라의 우상이었던 마리아 말리브란이 로시니의 오텔로에서 데스데모나 의상을 입고 있는 모습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말리브란은 루비로 누빈 데스데모나의 찬란한 의상을 입고 있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프리마 돈나로서 명성을 떨쳤던 주디타 파스타(Giuditta Pasta)는 오페라 탄크레디에서 탄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지 않으면 노르마에서 여사제장으로서 사람들을 압도하는 모습이다. 파스타는 1831년 노르마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또 다른 한쪽에는 안무가인 살바토레 비가노(Salvatore Vigano)의 대리석 흉상이 있다. 비가노는 로시니의 오페라에서 안무를 맡아 스칼라의 위상을 크게 높인인물이다.

 

나폴레옹도 감탄한 주디타 파스타

 

[페인팅 전시실]

그림 전시실에는 19세기 예술가들의 초상화들이 상당수가 전시되어 있다. 한 가운데에는 잉가니니(Inganini)가 그린 스칼라극장의 그림이 있다. 1852년의 스칼라 모습이다. 오른쪽 벽면은 베르디에게 할애되었다. 베르디가 45세 때에 아킬레 스칼레세(Achille Scalese)가 그린 유명한 초상화가 있고 양 옆에는 두 부인인 마르게리타 바레찌(Margherita Barezzi)와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 옆에는 젊은 베르디에게 나부코의 대본을 주고 작곡을 고취하였으며 스칼라에서의 초연을 주선한 바로톨로메오 메렐리(Bartolomeo Merelli)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베르디의 초상화 아래에는 그의 장인인 안토니오 바레찌가 1832년에 부세토에서 베르디에게 선물한 스피네트(피아노의 전신)가 있다.

 

라 스칼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마리아 칼라스 초상화

 

[뛰어난 연기의 프리마 돈나]

19세기 후반 스칼라를 빛낸 아델리나 패티(Adelina Patti)의 모습도 자리 잡고 있다. 1877-78년도 시즌의 프리마 돈나였다. 베르디는 ‘내가 패티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것은 런던에서였다. 패티가 18세 때였다. 그때 나는 패티의 놀라운 음성에 크게 놀랐지만 또한 그의 무대 매너와 뛰어난 연기에 대하여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쪽에는 귀중한 유물들이 진열장 안에 전시되어 있다. 예술가들이 여행에서 돌아 올 때에 가지고 온 기념품들, 미니에이쳐, 모차르트의 머리칼, 무대에서 사용했던 보석류,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폴레옹1세의 단검은 1823년 파리에서 탄크레디를 공연할 때에 주디타 파스타에게 준 것이다. 아델리나 패티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악가-배우였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아델리네 패티

 

[베르디를 기념하는 전시실]

1811년 5월 1일 파리의 경매장에 나온 줄르 삼봉(Jules Sambon)의 경매목록을 적은 책이 전시되어 있다. 스칼라극장박물관의 기틀이 된 물품들이다. 여러 작곡가들의 흉상과 테라코타가 감회를 갖게 해준다. 베르디의 데드마스크와 그의 오른 손을 석고로 뜬 것, 베르디가 사용하던 책상과 잉크스탠드와 펜, 편지 홀더, 명함들, 프랑스-이탈리아어 사전들로서 베르디가 서거한 그랜드 호텔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스칼라극장박물관 전시실

 

[예술의 딸 엘레오노레 두세]

엘레오노레 두세(Eleonore Duse)는 작곡가 겸 대본가인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와 고통스러운 사이였던 배우였다. 유랑극단 배우들의 딸인 엘레오노레는 다섯 살 때에 레미제라블에서 코세트로서 이미 무대생활을 시작하였다. 엘레오노레의 삶은 유랑극단과 함께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제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하는 배우였다. 그는 위대한 작가인 가브리엘레 다눈치오(Gabriele D'Annunzio)와 입센의 작품에 심취하였고 나중에는 보이토의 작품에 매료하여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예술의 딸’이라는 평을 들었다.

 

역사적인 공연에서 사용되었던 의상들도 전시되어 있다. 아이다의 의상들

 

[20세기의 베르디와 토스카니니]

20세기 전시실에는 베르디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로도비코 폴리아기(Lodovico Pogliaghi)와 아돌프 호헨슈타인(Adolf Hohenstein)의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 베르디의 악보들이 전시되어 있다. 베르디의 악보는 리코리드 가문에서 3대에 걸쳐 출판되었다. 조반니는 설립자이다. 그의 아들 티토와 또 그의 아들인 줄리오가 베르디의 악보를 출판했다. 토스카니니는 스칼라의 개혁자였다. 스칼라가 현대적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토스카니니의 공로이다. 그는 1898년에 콘세르타토레(Concertatore) 겸 지휘자로서 임명되었으며 1921년 스칼라가 독립기구가 되었을 때, 1946년 전후의 스칼라를 부흥할 때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베르디의 음악을 해석한 로시나 스토르키오(Rosina Storchio), 클라우디아 무치오(Claudia Muzio), 타마뇨(Tagmano), 카루소(Caruso), 페르틸레(Pertile),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모습도 전시되어 있다.

 

[자코모 푸치니]

1906년 아르투로 라에티(Arturo Rietti)가 그린 푸치니의 초상화가 전시실을 압도하고 있다. 20세기에 푸치니의 오페라들은 아마 스칼라에서 수백번도 더 공연되었을 것이다. 언제나 가장 인기있는 레퍼토리들이었다.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인 투란도트는 1926년 4월 25일에 스칼라의 무대에 올려졌다. 투란도트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푸치니는 냉혈과 같은 투란도트 공주의 이야기를 행복하고 승리에 넘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초연의 공연에서 지휘자인 토스카니니는 류(Liu)가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지휘봉을 내려놓고 ‘푸치니 선생은 이 장면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공연을 중단하였다.

  

라 스칼라박물관 전시실의 일부

 

[세트 디자인]

2층으로 올라가면 17세기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스칼라 무대의 세트를 스케치한 것들과 도면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을 볼수 있다. 마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1778년 피에르마리니의 신극장 건축 설계도도 있다. 스칼라 극장의 정면의 장식들을 테라코타로 만든 것도 전시되어 있다. 도미니코 리카르디의 스칼라 최초의 커튼은 시인 프리니(Parini)의 주제가 담겨 있는 것이다. 박스 관람석의 소유자들 명단도 전시되어 있다.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Europa riconosciuta의 대본도 전시되어 있다. 1778년 8월 스칼라의 오프닝때 기념 공연된 작품이다.


라 스칼라 박물관 전시장의 일부, 볼 것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두칼레에서 라 스칼라로]

다음 전시실은 스칼라의 역사를 볼수 있는 곳이다. 최초의 스칼라가 있기 전의 두칼레 극장에 대한 자료들이 흥미를 끈다. 1742년 두칼레 극장의 내부를 그린 자료가 흥미롭다. 16세기에 밀라노에는 공작궁 안에 극장이 있었다. 오늘날의 비아 라스트렐리(Via Rastrelli)를 내려다보는 장소에 있었다. 살로네 마르게리타(Salone Margherita)라는 이름이었다.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르게리타가 스페인의 필립3세와 결혼하기 위해 마드리드로 가는중 밀라노에 들른 것을 기념하여 세운 극장이다. 그후 살로네 마르게리타는 여러번의 화재로 고통을 겪었다. 1717년 그란 테아트로 두칼레로서 재건되었다. 화려한 실내에 5층짜리 규모였다. 조각들과 기둥들이 현란한 극장이었다. 모차르트의 첫 세 오페라인 Mitridate re di Ponto(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Ascanio in Alba(알바의 아스카니오), Lucio Silla(루치오 실라)가 공연된 곳이 바로 그란 테아트로 두칼레였다. 그러다가 1776년 2월 25일 사순절이 시작되는 전날의 토요일에 불이 나서 완소되었다. 그리하여 1778년에 라 스칼라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역사의 증거물들이 자료로서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전시실]

마지막 방은 전시실이라기보다는 휴게실이다. 관람객들은 간혹 열리는 작은 규모의 콘서트를 즐길수 있다. 이 방에 있는 피아노는 프란츠 리스트가 사용하던 것이다. 프란츠 리스트는 1838년부터 스칼라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라 스칼라 박물관 휴게실에서의 교양강좌. 피아노는 리스트가 사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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