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3구 란트슈트라쎄

1. Adamgasse - Czapkagasse

정준극 2010. 2. 15. 10:56

비엔나의 제3구인 란트슈트라쎄(Landstrasse)는 벨베데레 궁전의 동쪽으로부터 슈타트파르크를 건너 빈플루스(Wien Fluss: 비엔나강)까지 이르는 지역이다. 1구에 비하여는 문화역사적인 역혁이 빈약하지만 그래도 나머지 다른 구에 비하여 문화역사적인 거리 명칭이 다대하니 자랑할 만하다.

 

1830년대의 란트슈트라쎄 중심가

 

Adamgasse(아담가쎄)로부터 Czapkagasse(차프카가쎄)까지

 

- Adamgasse(아담가쎄): 1756년에 Zur goldenen Weintrabe(황금포도집)에서 가죽장사를 했던 요한 아담이라는 백정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비엔나 3구의 철밥통 공무원들은 정말 할 일도 없는 사람들이다. 가죽을 무두질해서 장사한 사람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기념으로 거리이름까지 지어준다는 말인가?

- Adolf-Blamauer-Gasse(아돌프 블라마우어 가쎄): 수채화가이며 오스트리아 관광클럽의 창단멤버인 아돌프 블라마우어(1847-1923)을 기억하여서 붙인 명칭이다. 비엔나에는 그렇게도 인물이 없나? 아예 지나가는 관광객을 붙잡고 '실례지만 당신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서 그 사람의 이름이 마음에 들면 새로 거리 이름을 짓도록 하면 어떨까? 기왕이면 이승만 가쎄, 프란체스카 슈트라쎄, 안익태 플라츠 등이 생기면 얼마나 좋으랴? 비엔나 주재 한국대사관은 그런 교섭이나 했으면 좋겠다. [프란체스카 도너-리 여사에 대하여는 2012년 5월에 비엔나의 22구 도나우슈타트에 한인문화회관에 오픈하는 것과 관련하여 회관의 앞의 작은 길을 Franziska-Donner-Rhee Weg(프란치스카 돈너 리 베그)라고 명명한 것이 있다. 번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작은 길이다.]

 

프란치스카  도너 리 베그 거리표지판

 

- Alfred-Dalinger-Platz(알프레드 달링거 플라츠): 오스트리아 정치가이며 미래학자인 알프레드 달링거를 기억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한심하다. 정치가든지 미래학자든지 따지고 보면 모두 사기성이 농후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 Am Heumarkt(암 호이마르크트): 예전에 마초(Heu)를 팔던 시장이었다. 슈타트파르크 뒤편길이다. 1418년경에는 Heugries(호이그리스)라고 불렀으며 1862년까지는 Am Glacis(암 글라시스)라고 불렀다. 글라시스는 군대의 방어보 역할을 한 사제(斜堤)를 말한다. 말에게 먹일 풀을 팔았던 곳도 유명세를 타니 말고기를 파는 곳이었다면 아마 궁전 앞 쯤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암 호이마르크트에 사포로 식당이 있고 그 뒤편의 돌목 길에 는 예전에 한국대사관이 있었다.

- Am Modenapark(암 모데나파르크): 모데나 에스테의 베아트릭스 대공녀인 베아트릭스(Erzherzogin Beatrix d'Estevon Modena: 1750-1829)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가 이곳에 지었던 팔레(시내궁전)는 1916년 철거되었지만 공원의 일부는 남아 있다. 원래의 넒은 정원은 오늘 1916년 이후부터 모데나파르크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원이 아름답기 때문에 ‘작은 쇤브룬’이라는 별명을 들었다. 비엔나는 파르크와 가르텐이 많은 축복 받은 도시이다.  

 

모데나공원의 어린이와 견공 조각

 

- Anna-Hand-Weg(안나 한트 베그): 나치 치하에서 저항운동을 했던 안나 한트(1911-1987)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위대한 여성이었다. 이런 거리는 이름부터 거룩하다.

- Anton-von-Webern-Platz(안톤 폰 베베른 플라츠): 작곡가이며 극장음악감독 겸 비엔나아르바이트심포니콘체르트의 지휘자인 안톤 폰 베베른(1883-1945)을 기념하여서 붙인 명칭이다. 1945년 그는 베를린에서 어떤 미군이 그를 암시장 상인으로 잘못 보고 총을 쏘아 사망했다. 안톤 베베른 광장에 세계적인 비엔나음악예술대학교(약칭으로 비엔나음대)가 있다.

 

안톤 폰 베베른 플라츠와 반가쎄에 있는 비엔나음대

 

- Anton-Kuh-Weg(안톤 쿠 베그): 작가인 안톤 쿠(1890-1941)를 기념하여 붙인 명칭이다. 현재는 길이 막혀서 사용되지 않고 있다. 비엔나 카페하우스문학을 주도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합병되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1941년에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 Apostelgasse(아포스텔가쎄): 이곳에 있었던 에르드버거(Erdberger)교구교회인 ‘성베드로-성바울교회를 기념하여 붙인 명칭이다. 전에는 Kirchengasse(키르헨가쎄: 교회길)라고 불렀다. 아포스텔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말한다.

- Arenberggasse(아렌버그가쎄): 아렌버그 영주인 레오폴드 필립 요셉(1690-1754)을 기념하여 붙인 명칭이다. 그는 이지역에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공원으로 가꾸었고 나중에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였다. 공원에는 2차 대전중에 설치한 비엔나 3대 대공포 진지 중의 하나가 있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축물이다.

 

2차 대전중 사용했던 아렌버그의 대공포진지

 

- Arsenalstrasse(아르제날슈트라쎄): 예전에 군대 병기고(아르제날)가 있었다.

- Arsenalweg(아르제날베그): 예전에 있었던 병기고와 연관된 거리이름이다. 요즘에는 사용하지 않는 길이다.

 

아르제날슈트라쎄의 옛 병기창고

 

- Aspangstrasse(아슈팡슈트라쎄): 이곳에 아슈팡기차역이 있어서 1894년부터 아슈팡슈트라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슈팡기차역은 나치 점령시기에 유태인들을 동부의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기차들이 떠난 죽음의 기차역이었다. 흥남부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의 기차역이었다.

- Auenbruggergasse(아우엔브루거가쎄): 요셉 레오폴드 폰 아우엔브루거(1722-1809)는 환자를 진찰할 때에 손으로 타진하는(Perkussion) 방법을 개척한 내과 의사이다. 요즘엔 손으로 두드려서 진단하는 의사는 하나도 없다. 이 거리에 있는 오토 바그너가 설계한 2번지 건물에서는 구스타브 말러가 1898-1909년까지 살았다.

  

아우엔브루그가쎄 2번지에 있는 말러가 살았던 집의 명판

 

- Barichgasse(바리히가쎄): 궁정연설문작성자인 미하엘 폰 바리히(1792-1859)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정말 별별 사람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 Barmherzigengasse(바름헤리치겐가쎄): 가톨릭 봉사단체인 애덕원이 세운 요양원(Genesungsheim)을 기념하여 1877년에 붙인 이름이다. 요양원은 1755년부터 1877년까지 1백20여년을 있었다.

- Berthgasse(바르트가쎄): 안과의사 겸 해부학자인 요한 바르트(1745-1818)를 기념하여 1900년에 붙인 이름이다. 그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시술을 많이 해주었다.

- Baumannstrasse(바우만슈트라쎄): 아프리카연구가이며 여행기 작가인 오스카 바우만(1864-1899)을 기념하여 1902년부터 부르기 시작한 거리 이름이다. 그가 여행하면서 수집한 물건들은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38에 나치는 바우만이 유태계라는 이유를 들어 이 거리의 이름을 Adolf-Kirchl-Strasse(아돌프 키르흘 슈트라쎄)라고 바꾸었다. 그러다가 1947년에 원래의 거리이름을 되찾았다.

- Baumgasse(바움가쎄): 1899년 이래 이곳 둔덕에 과일 나무를 심어 과수원을 조성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바움가쎄 1번지에는 Zum grünen Baum(푸른 나무집)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바움가쎄에 있는 라벤호프(Rabenhof)의 아치형 문 

 

- Bayerngasse(바이에른가쎄): 1916년에 독립국이 된 바이에른이 이곳에 대표부(공사관)를 설치했기 때문에 바이에른가쎄라고 불렀다.

- Beatrixgasse(베아트릭스가쎄): 베아트릭스 데스테 폰 모데나(Beatrix d'Este von Modena)공작부인을 기념하여 붙인 명칭이다. 제3구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중의 하나이다. 1862년 이전에는 Bockgasse(보크가쎄) 또는 Rabengasse(라벤가쎄)라고 불렀다. 베아트릭스가쎄 5번지와 운가를가쎄 5번지가 겹치는 코너 집에는 베토벤이 1819년에 미사 솔렘니스(장엄미사곡)를 완성했으며 1824년에는 불후의 명작인 교향곡 제9번을 완성한 집이다.

 

운가른가쎄와 베아트릭스가쎄가 만나는 곳. 오른쪽 깃발이 달린 집이 베토벤이 제9교향곡을 완성한 집으로 기념 명판이 붙어 있다. O번 전차를 타면 지나간다.

 

- Bechardgasse(베하르트가쎄): 이곳에 살았던 바르바라 베하르트 남작부인(1789-1859)를 기억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남작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저택과 토지는 봐이쓰거버(Weissgerber) 교구교회에 기증되었다.

- Bert-Brecht-Platz(버트 브레헤트 플라츠): 베르톨트 브레헤트(Berthold Brecht)라고도 한다.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출신의 극작가 겸 작사자인 버트 브레헤트(1898-1956)를 기억하여서 2008년에 붙인 이름이다. 그는 쿠르트 봐일의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 groschenoper)의 대본을 썼다.

 

베르트 브레헤트

 

- Bertha-Eckstein-Strasse(베르타 베크슈타인 슈트라쎄): 작가인 베르타 베크슈타인(1874-1948)을 기념하여서 2008년에 붙인 이름이다.

- Billy-Wilder-Strasse(빌리 와일더 슈트라쎄): 저널리스트이며 영화감독인 빌리-와일더(1906-200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수많은 영화를 제작한 중에 '뜨거운 것이 좋아'는 세계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끈 작품이었다.

- Bittmann-Promenade(비트만 프로메나데): 이 거리에 살았던 유태인 부부인 Sidonie(시도니)와 요셉 비트만이 나치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음을 기념하는 이름이다. 요셉 비트만은 나중에 비엔나의 이스라엘 문화원장으로 일했다.

- Blattgasse(블라트가쎄): 이곳에 있던 넓은 정원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 Blütengasse(블뤼텐가쎄): 블라트가쎄와 같은 사연에서 붙인 이름이다. 아마 들판에 꽃이 많이 피었던 모양이다.

- Boerhaavegasse(뵈르하베가쎄): 저명한 의사이며 식물학자 겸 화학자인 허만 뵈르하베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의 제자인 게라르트 반 스뷔텐(Gerard van Swieten)은 비엔나의과대학의 창설자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화감독 빌리 와일더와 그가 제작한 '뜨거운 것이 좋아' 포스터. 빌리 와일더는 '제7포로수용소' '사브리나'등을 감독했다.

 

- Campus-Vienna-Biocenter(캠퍼스 비엔나 바이오센터): 이곳에 있는 비엔나 바이오센터 캠퍼스를 기념하여 2001년에 붙인 이름이다. 비엔나 바이오센터는 민간기업과 손을 잡고 비엔나시를 위해 많은 연구활동을 하였다. 세계적인 생명공학 연구센터로서 약 1천5백명이 일하고 있다.

- Carl-von-Linde-Strasse(칼 폰 린데 슈트라쎄): 기업가이며 과학자인 칼 린데(1842-1940)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공기의 액화방법(Linde-Verfahren)을 개발하였다. 액화질소는 그의 덕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칼 폰 린데

 

- Charasgasse(샤라스가쎄): 비엔나 의용구조대 의무반장을 지낸 하인리히 샤라스(1860-1940)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대단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 Czapkagasse(차프카가쎄): 비엔나 시장을 지냈으며(1838-1848) 나중에는 비엔나경찰서장(1856-18569)을 지낸 이그나스 차프카(1791-1881)을 기억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그는 시장으로 재임하는 중 여러 업적 중에서도 상크트 마르크스 도축장을 설치하는 업적을 남겼다.

 

차프카가쎄 - 자이들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