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0구 화보리텐

[참고자료 1] 슈핀네린-크로이츠 탑

정준극 2010. 2. 22. 21:19

[참고자료 1]

Spinnerin am Kreuz(십자가에서 물레 감는 여인)

비엔나의 이정표...슈핀네린-크로이츠 탑(조일레)


 화보리텐의 슈핀네린 암 크로이츠(십가자에서 물레 감는 여인) 탑. 루돌프 폰 알트 그림. 19세기.

                                

비엔나의 또 하나 랜드마크인 ‘십자가에서 물레 감는 여인’(Spinnerin am Kreuz)이라는 명칭의 높은 탑은 10구 화보리텐의 트리에스터 슈트라쎄에 있다. 길거리에 웬 탑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톨릭을 신봉하는 유럽의 국가들, 특히 동유럽의 길가에서는 자주 볼수 있는 광경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동유럽의 영향을 받은  동부지역의 시골 길에 많이 있다.  이렇듯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상이나 성자상을 조각하여 설치한 기둥을 독일어로 빌트슈토크(Bildstock)라고 한다. 빌트는 성상(聖像)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슈토크는 작은 나무 기둥이라는 의미이다. 영어로는 Piety Column(자비를 구하여 기구하는 기둥)이라고 한다. 우리 식으로 보면 마을 입구에 있는 성황당 또는 돌무덤이나 신수(神樹)이다. 말하자면 사당이나 마찬가지의 조형물이다. 빌트슈토크는 또 다른 말로 길거리 탑(Wegsäule)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빌트슈토크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비엔나 화보리텐의 기둥은 놀랄만큼 크다. 높이가 16m나 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빌트슈토크이다. 마을 언덕에 있는 빌트슈토크.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성상과 옆에는 작은 기도처가 있다. 기도처에서는 간혹 고해성사를 받기도 한다.


화보리텐의 빌트슈토크는 14세기 말에 미하엘 크납(Michael Knab)이라는 건축명장이 지었다. 마치 고딕 양식의 성당 첨탑처럼 생겼다. 사실 오스트리아에는 Spinnerin am Kreuz라는 이름의 탑은 하나가 더 있다. 비너 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에 있다. 비너 노이슈타트의 탑은 화보리텐의 탑보다 더 높다. 높이가 무려 21m이다. 십자가 옆에서 물레 감는 여인에 대한 전설은 중세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십자가 옆에서 한눈을 팔지 않고 열심히 물레를 돌리며 베를 짰기 때문에 악마의 유혹에 빠져 들어가지 않았다는 전설이다. 이밖에도 물레감는 여인이 저주에서 풀려나게 되었다는 식의 변형된 스토리도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전설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망부석 스토리와 비슷하다.

 

비너 노이슈트타트에 있는 슈핀네린 암 크로이츠 조일레(기둥). 이건 높이가 무려 21m나 된다.

                        

중세에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어떤 남자가 십자군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남편이 성지로 떠난 다음날부터 아내는 마을의 어구인 이 곳에 와서(현재의 트리에스터 슈트라쎄)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십자가 앞에서 기도만 했다. 그러다가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지루하므로 물레를 감으며 실을 뽑으며 지냈다. 아내는 물레를 감아 번 돈으로 이 자리에 빌트슈토크(성상탑)를 짓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기를 여러 해가 지났다. 전쟁이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여인에게 남편이 전사한 것이 틀림없으니 이제 그만 잊고 다른 사람과 재혼하여 새생활을 시작하라고 권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남편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무작정 기다렸다. 요즘처럼 핸도폰을 해외로밍해서 가져갔더라면 당장이라도 연락이 될터인데 중세에는 그런 것이 없었으니 그저 실낱같은 기별이라도 오기만을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더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날 저 먼곳으로부터 지쳐서 쓰러질것 같은 모습으로 걸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남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그 자리에 다른 곳보다 더 커다란 빌트슈토크를 지어서 봉헌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 화보리텐에 있는 슈핀네린 암 크로이츠라는 것이다.  슈핀네린 암 크로이츠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마치 삼베 나무껍질을 두드리고 삶고 다져서 마침내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옷감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면서 영광의 면류관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화보리텐의 성상탑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모습, 채찍을 맞으시는 모습, 가시관을 쓰고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 그리고 빌라도가 손을 씻으면서 에케 호모(Ecce homo)라고 말하는 모습 등이 조각되어 있다.

 

‘십자가 옆의 물레 감는 여인’ 탑은 저 멀리 비엔나의 남쪽에서 비엔나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비로소 마주치는 이정표이다. 사람들은 우뚝 솟아 있는 이 탑을 보고서 ‘아, 이제 비엔나에 다 왔구나!’라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탑이 있는 곳에서는 저 멀리 비엔나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슈테판성당의 남탑(슈테플)이 보이고 프라터의 리젠라트(대회전관람차)가 보이며 라트하우스(시청)와 보티프키르헤(봉헌교회)가 보이고 칼스키르헤(칼교회)가 보인다. 비엔나 북쪽의 칼렌버그 산정에 올라가도 비엔나 시가지가 완연히 보이지만 화보리텐의 ‘십자가 옆의 물레 감는 여인’이 있는 지점에서 보는 비엔나 시가지의 모습은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듯 실감이 있다. 한편, 누구든지 이 탑에서 소원을 기도하면 만사형통하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은연중 많은 사람들이 이 탑을 향하여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탑이 도시계획으로 큰 길 바로 옆에 있게 되어 옛날처럼 걸어와서 기도를 드리기가 불편하게 되었다.

 

마을어귀에 있는 빌트슈토크.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마을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이런 빌트슈토크 앞에서 잠시 기도를 드린다.


이 탑은 1375년에 처음으로 새워졌다. 비엔나 시를 상징하는 이정표로서 세웠다. 처음에는 탑의 이름도 없었다. 그저 비엔나를 수호하는 탑이라고만 알려졌다. 이 탑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여러 고난을 겪었다. 특히 이교도인 오토만 터키로부터 받은 수난이 컸다. 첫 수난은 터키의 비엔나 공성이 일어나기도 전인 1446년에 헝가리의 야노스 후냐디(Janos Hunyadi)의 군대에 의해 파괴된 것이었다. 1452년에 슈테판성당의 도목수였던 유명한 한스 푹스바움(Hans Fuchsbaum)이 다시 세웠다. 그러다가 1592년 터키의 제1차 비엔나 공성 때에 포격을 받아 또 다시 무참하게 파손되었다. 1598년 비엔나의 궁정석공인 파울 쾰블(Paul Khölbl)이 다시 세웠다. 1606년 이스트반 보츠카이(Istvan Bocskai)의 군대가 다시 파괴했다. 1624년에 다시 보수했다. 그로부터 약 60년후인 1683년 터키의 제2차 비엔나 공성때에 또 다시 파괴되었다. 1709년에 또 다시 세웠다. 비엔나 시민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엔나를 돌보아 주어서 몇 번에 걸친 시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소생할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고 믿었다. 1709년에 다시 세울 때에 비로서 Spinnerin-Kreutz(슈핀네린-크로이츠)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몇가지 조각들도 추가되었다.


동유럽의 시골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일반적인 빌트슈토크

                            

중세에는 슈핀네린-크로이츠 탑의 인근에 교수대가 있어서 사형수들을 처형했다. 그러한 처형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 20세기 초에 들어서서 탑의 바로 옆에 George-Washington-Hofes(조지 워싱턴 호프)를 지을 때 땅 밑을 팠더니 처형당한 죄수들의 해골들이 다수 발견된 것은 그러한 사실의 증거였다. 당시에는 죄인들을 교수대에서 처형한 후 시체들을 바로 그 옆에 땅을 파고 묻었던 것이다. 오늘날 슈핀네린-크로이츠 탑의 주변에는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으며 그 앞의 트리에스터 슈트라쎄의 교통도 대단히 번잡해 졌다. 이렇게 되자 비엔나의 이정표인 슈핀네린-크로이츠 탑은 점차 환경의 수난을 받아야 했다. 탑의 재질인 사암은 점차 검게 변해갔다. 게다가 먼지, 매연, 모래바람, 미세분자 등으로 탑은 힘든 나날을 버텨나가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산성비였다. 화보리텐구는 슈핀네린-크로이츠 탑을 보존하기 위해 오리지널은 잘 떼어내어 구박물관에 가져가서 엄밀히 검사하고 있다. 현재 세워진 탑은 모조품이다.


인스부르크 산간지대에 있는 무오의 성모 빌트슈토크

   

화보리텐에 있는 것과 같은 형태의 ‘십자가 옆에서 물레 감는 여인’ 탑이 비너 노이슈타트에 있다. 환경의 피해를 덜 받아서인지 비교적 깨끗하다. 비너 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의 안녕과 발전에 대한 소망을 담은 탑이다. 높이 21m이다. 화보리텐의 탑보다 9년 후인 1384년에 세워졌다. 화보리텐의 것에 비하면 아무런 수난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1994년에 한번 수리를 했을 뿐이다. 비너 노이슈타트의 탑은 독일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길거리 탑(Wegsäule)이다.

 

화보리텐과 비너 노이슈타트의 슈핀네린-크로이츠 탑과 비슷한 모습의 탑들이 몇 군데 더 있다. 우리 식으로 보면 마치 마을 입구의 신수(神樹)나 성황당과 같은 존재이다. Friesdorf(프리스도르프)의 Hochkreuz(호흐크로이츠: 높은 십자가탑), Frauenwüllersheim(푸라우엔뷜러스하임)의 Hochkreuz(높은 십자가탑: 호흐크로이츠), Regensburg(레겐스부르크)의 Jakobstor(야곱스토르) 옆에 있는 Wegsäule(베그조일레: 이정탑)와 Predigtsäule(프레디그트조일레: 강론탑), Brünn(브륀)의 Zderadsäule(츠더라드조일레) 등이다.

 

화보리텐의 슈핀네린-크로이츠 조일레(탑). 탑의 사면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채찍질 당하는 예수 그리스도,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 그리스도, 빌라도의 심판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조각으로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