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공동묘지 문화

푀츨라인스도르프 공동묘지(Pötzleinsdorfer Friedhof)

정준극 2010. 3. 12. 21:52

푀츨라인스도르프 공동묘지(Pötzleinsdorfer Friedhof)

 

 하우슈카 가족의 영묘

 

푀츨라인스도르프 공동묘지는 비엔나 18구인 배링(Währing)의 동쪽에 있다. 비엔나에 있는 공동묘지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다. 주소는 슈타르크프리드가쎄(Starkfriedgasse) 67번지이다. 1785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 725기의 묘지를 수용하고 있다. 푀츨라인스도르프는 배링교구에 속하여 있었다. 그러다가 1783년에 배링교구에서 벗어나 별도의 교구로 승격되었다. 배링으로부터 분리되자 남부오스트리아주 정부는 푀츨라인스도르프에 별도의 공동묘지를 조성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재정이 어려워 부지대금을 치루지 못하여 몇 년을 허송세월하였고 그 기간 동안에는 계속 배링의 교구교회 묘지를 사용하였다. 푀츨라인스도르프에서 배링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교통이 불편했다. 더구나 겨울에 눈이라도 오면 길이 막히기도 했다. 어느 때에는 배링으로 장례를 치루러 가던 사람들 중에서 11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푀츨라인스도르프에 별도의 공동묘지를 조성하자는 사업은 다시 적극 추진되었다. 결국 1785년에 문을 열게 되었다. 푀츨라인스도르프 공동묘지는 그후 여러 차례에 걸쳐 확장을 보아 오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전몰장병 추모비

 

푀츨라인스도르프 공동묘지의 랜드마크는 하우슈카(Hauschka)가족의 영묘 겸 예배처이다. 1888년에 완성되었다. 로코코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야콥 로너(Jacob Lohner) 가족의 영묘도 네오고딕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 건물에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장사를 지내는 장면이 부조로 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푀츨라인스도르프 출신으로 1차 대전에 나갔다가 전사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한 십자가 조형물은 1919년에 만들어 세운 것이다. 푀츨라인스도르프 공동묘지는 7기의 묘지를 명예묘지로 선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 Hedwig Bleibtreu(헤드비히 블라이브트로이: 1868-1958) 여배우

- Friedrich Krenn(프리드리히 크렌: 188701964) 궁정성악가

- Eduard Ritter von Liszt(에두아르트 리터 폰 리스트: 181701879) 업무대리인. 프란츠 리스트의 삼촌

- Aladar Pecht(알라다르 페흐트: 1898-1961) 건축가, 공원 꽃시계 발명자

- Reinhard Priessnitz(라인하르트 프리쓰니츠: 1945-1985) 서정시인

- Oskar Simony(오스카르 지모니: 1852-1915) 수학자, 물리학자

- Moritz Walter(모리츠 발터: 1813-1882) 푀츨라인스도르프 교구사제

 

자동차 제작으로 유명한 루드비히 로너 가족의 영묘. 조각이 아름답다.

 

이밖에 푀츨라인스도르프 공동묘지를 영원한 안식처로 삼은 저명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 Eduard Liszt(에두아르트 리스트: 1867-1961) 법학자, 프란츠 리스트의 조카

- Ludwig Lohner(루드비히 로너: 1858-1925) 자동차 제작자

- Max Paulsen(막스 파울젠: 1876-1956) 배우

- Carl Prohaska(칼 프로하스카: 1869-1927)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