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12구 마이들링

1. Abermanngasse - Bürgermeisterweg

정준극 2010. 3. 20. 15:33

마이들링

 

Abermanngasse(아버만가쎄)로부터 Bürgermeisterweg(뷔르거마이스터베그)까지

 

- Abermanngasse(아버만가쎄): 17세기에 독일 역사학자인 하인리히 아버만(Heinrich Abermann: 1583-1621)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1610년부터 비엔나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1614년에는 학장을 지냈다. 그는 슈테판성당의 시민학교(Bürgerschule)의 학장이기도 했다. 1616-19년에는 볼프강 라치우스(Wolfgang Lazius)가 쓴 Vienna Austriae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이 책은 비엔나에 대한 최초의 독일어 역사서이다. 23구 리징에는 라치우스를 기념하여 라치우스슈트라쎄가 있다. 아버만가쎄는 1894년 이전에는 글로리에테가쎄(Gloriettegasse)라고 불렀다.

- Aichholzgasse(아이히홀츠가쎄): 기업가로서 예술품 수집가로 알려진 요셉 밀러 폰 아이히홀츠(Josef von Miller zu Aichholz: 1797-1871)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1819년에 욀러와 밀러(Oehler & Miller)회사를 설립했다. 1839년에는 비엔나에 최초의 국내 사탕수수 제당공장을 설립했다. 1848년의 혁명 때에는 국방군 장교로 복무했고 이어 비엔나 구위원으로 활동했다. 1852년에는 오스트리아국립은행장을 지냈다. 이 거리는 1864년까지 블린데가쎄(Blindegasse)라고 불렀고 1894년까지는 밀러가쎄(Millergasse)라고 불렀다가 1894년 이후부트넌 아이히홀츠가쎄로 확정했다.

- Aichhorngasse(아이히호른가쎄): 1894년부터 구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가우덴츠도르프(Gaudenzdorf)의 부시장을 지낸 요셉 아이히호른(1823-1889)을 기념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 전에는 펠트가쎄(Feldgasse)라고 불렀다.

- Albrechtsbergergasse(알브레헤츠버거가쎄): 작곡가이며 음악이론가인 요한 게오르그 알브레헤츠버그(1736-180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770년에 슈테판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고 1771년에는 카르멜리텐키르헤의 합창지휘를 맡았다. 1772년에는 요제프 2세 황제가 그를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임명했다. 작곡가로서 그는 약 3백편의 교회음악을 작곡했고 역시 약 3백편의 건반악기 작품과 약 2백편의 기타 기악곡을 작곡했다. 1894년 이전에는 화르가쎄(Pfarrgasse)라고 불렀다.

 

작곡가인 요한 게오르그 알브레헤츠버그

 

- Altmannsdorfer Anger(알트만스도르퍼 앙거): 앙거는 초원이나 목장 또는 마을이 들어선 자리를 말한다. 예전에 알트만스도르프에 있던 목초지를 생각하여 붙인 이름이다.

- Altmannsdorfer Strasse(알트만스도르퍼 슈트라쎄): 예전에 있었던 교외마을인 알트만스도르프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알트만스도르프는 파싸우의 주교 성알트만(Hl. Altmann)을 기념하여 붙인 지명이다. 마이들링, 헤첸도르프, 알트만스도르프에 걸쳐 있으며 남쪽으로는 23구 리징의 경계선까지 이르는 길이다. 종전에는 락센부르거 알레라고 불렀으며 그후 락센부르거 슈트라쎄로 바뀌었다. 쇤브룬에서부터 락센부르크 성까지 연결된다는 의미에서였다. 두 군데 모두 황제의 거처였다.

 

알트만스도르퍼 슈트라쎄

                    

- Altomontegasse(알토몬테가쎄): 바로크 화가인 마르티노 알토몬테(마르틴 호엔버그와 같은 사람임: 1657-1745)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알토몬테는 페터스키르헤(베드로교회)의 제단화인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침’을 그렸고 슈테판성당의 성야누아리우스(Jl. Januarius), 하벨베데레의 천정프레스코화를 그렸다.

 

린츠에 있는 우르술라교회의 제단화. 마르티노 알토몬테의 작품

                        

- Amalie-Seidel-Weg(아말리 자이델 베그): 정치가이며 여성운동가인 아말리 자이델(1876-1952)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소비자 운동도 함께 주장하였다. 1919-23년에는 구의회 의원을 지냈고 1919-34년에는 국회의원으로 봉사했다. 그는 1920년에 비엔나 청소년지원사업을 주관하였고 어린이 옥외수영장도 주도하였다.

- Am Europlatz(암 오이로플라츠): 2002년부터 유로(오이로)를 사용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오스트리아는 그 전에 쉴링을 사용하였다. 22구 도나우슈타트에는 쉴링슈트라쎄가 남아 있다.

- Am Fasangarten(암 화산가르텐): 예전에 쇤브룬 궁전에서 꿩사냥을 위해 꿩을 길렀던 것을 기억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화산가르텐에는 꿩뿐만 아니라 공작(Pfaue)과 같은 아름다운 새들도 길렀다. 꿩사냥에는 매를 사용하였다. 글로리에트 남쪽, 슐로스파르크의 일부에 해당한다.

- Am Fuchsenfeld(암 푹센펠트): 1825년에 미하엘 푹스라는 사람이 이곳의 들판에 Zum Fuchsen(여우집)이라는 여관을 오픈했던 것을 기억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여관을 중심으로 주변 들판을 푹센펠트라고 불렀다. 폭센펠트에 들어선 집들을 푹센펠트호프라고 부른다.

- Am Kabelwerk(암 카벨베르크): 2006년에 카벨 운트 트라트베르케(Kabel- und Drahtwerke AG)라고 하는 오래된 케이블 및 철사 등을 제조하는 공장이 있었다. 마이들링 경제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한 기업이었다. 창설자는 오토 본디(Otto Bondy)라는 사람이었다. 오토 본디 플라츠(Otto-Bondy-Platz)는 그를 기념하는 지명이다. 이 공장은 1997년에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2001년에 그 자리에 카벨베르크(Kabelwerk)라는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1천 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택단지이다.

- Am Rosenhügel(암 로젠휘겔): 휘겔은 언덕을 말하므로 로젠휘겔은 장미언덕이다. 이곳에서 여러 장미를 재배했었다. 비너발트(비엔나 숲)의 북동쪽 자락에 있는 높이 258 미터의 언덕이다. 암 로젠휘겔은 12구, 13구, 23구의 아츠거스도르퍼 슈트라쎄, 로젠휘겔슈트라쎄, 분트가쎄(Wundtgasse), 리델가쎄(Riedelgasse)에 걸쳐 있는 교차로이다.

- Am Schöpfwerk(암 쇠프베르크): 비엔나 제1구의 상수도 설치를 위해 사용한 기중기를 제조하는 공장(쇠프베르크)를 기억하여서 붙인 지명이다. 그 전에는 인처스도르퍼 베그라고 불렀다. 인처스도르프까지 연결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나의 커다란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암 쇠퍼베르크의 공동주택

                        

- An den Eisteichen(안 덴 아이스타이헨): 예전에 벽돌을 쌓아 만든 작은 저수지로 겨울에 얼음을 잘라서 보관했으므로 얼음연못이라고 불렀던 것을 기념하는 지명이다. 암쇠프베르크 주택단지 내의 길이다.

- An den Froschlacken(안 덴 프로슈라켄): 개구리(프로슈)가 많았던 늪지대였다. 라켄(Lacken)은 저수지(Tümpeln)를 말한다.

- Andersengasse(안더센가쎄): 1953년부터 덴마크의 동화작가인 한스 크리스티안 알덴센(1805-1875)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안델센은 비엔나에 여섯번이나 방문했었다.

- Anton-Scharff-Gasse(안톤 샤르프 가쎄): 19세기에 비엔나 주조국에서 동판조각 책임자로 있었던 안톤 샤르프(1845-1903)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1906년에 붙인 지명이다.

- Arndtstrasse(아른트슈트라쎄): 독일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에른스트 모리츠 아른트(1769-1860)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정치인이기도 한 그는 1848-49년 프랑크푸르트의 국가의회의 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공하여 점령하였을 때 국민동원을 하여 대항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해방전쟁을 주창한 것들이다. 그는 프랑스와 유태인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딴 지명도 삭제될뻔했다.

- Arnsburggasse(아른스부르크가쎄): 독일의 궁정배우인 프리드리히 루드비히 아른스부르크(1816-1891)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브륀, 단치히, 브라운슈봐이크, 쾰른, 리가, 쾨니히스부르크 등에서 무대를 빛냈다. 그는 1848년에 비엔나에 와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에서 활동했다. 그는 또한 비엔나 콘세르바토리움의 연극교수이기도 했다.

- Assmayergasse(아쓰마이어가쎄): 작곡가이며 교회음악가인 이그나즈 아쓰미이어(1790-186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 전에는 루돌프스가쎄(Rudolfsgasse)라고 불렀다. 그는 1825년에 쇼텐슈티프트(아일랜드 수도원)의 합창지휘자를 지냈고 시몬 제흐터의 뒤를 이어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다. 제흐터가쎄는 시몬 제흐터를 기념하는 지명이다. 1846년에는 요제프 봐이글이 세상을 떠나자 호프카펠마이스터(궁정음악감독)가 되었다. 요제프 봐이글을 기념하여서는 15구 루돌프스하임에 봐이글가쎄(Weiglgasse)가 있다.

- Atzgersdorfer Strasse(아츠거스도르퍼 슈트라쎄): 비엔나 교외였으며 현재는 리징에 속하여 있는 아츠거스도르프를 생각하여 붙인 이름이다. 오래된 지명이어서 1130년에는 아치힌스토르프(Azichinstorf)라는 지명이었는데 유래는 알지 못한다. 아츠거스도르프라는 지명은 아치히(Atzichi)라는 사람의 이름과 도르프라는 단어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지명이라고 한다.

 

아츠거스도르프의 리징 시내(Liesingbach)

                    

- Bartschweg(바르츄베그): 마이들링 향토연구가인 그레고르 마그누스 바르츄(1839-1918)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님펜가쎄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 Belghofergasse(벨그호퍼가쎄): 플랑드르의 대목수(도목수)인 요한 벨그호퍼(Johann Belghofer: 1763-1821)을 기념하는 지명이다. 그가 1820년에 만든 헤첸도르프의 분수는 오스트리아 최초로 지하수를 뿜어내도록 한 분수이다. 그후 헤첸도르프에는 이같은 분수가 여섯개나 설치되었다.

 

지하수에서 직접 물이 올라오게 만든 분수. 벨그호프가 개발했다.

 

- Bendlgasse(벤들가쎄): 1834년에 마이들링에 증기기기를 이용한 공장을 세운 벤들이라는 사람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벤들의 성이나 배경에 대하여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 전에는 슐가쎄라고 불렀었다.

- Bethlengasse(베틀렌가쎄): 헤첸도르프의 영주이며 자선가인 이크타르 도미니크 그라프 베틀렌(Iktar-Dominik Graf Bethlen: 1810-1866)을 기념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그는 1839년에 지기스문트 프로나이로부터 헤첸도르프 운영권을 매입하였다. 프로나이와 관련하여서는 프로나이가쎄(Pronaygasse)가 있다.

- Betty-Roose-Weg(베티 로제 베그): 1930년에 독일 출신의 궁정여배우인 베티 로제(1778-1808)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1798년부터 3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에 출연했다. 그는 센티멘탈한 젊은 연인의 역할로서 비엔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 Bickellgasse(비켈가쎄): 독일의 신학자이며 동양연구가인 구스타브 비켈(1838-1906)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874년부터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기독교 고고학과 히브리어 교수로서 재직했다. 그후 1891년에는 비엔나대학교의 히브리어 교수가 되었다. 그는 또한 당시 최고의 시리아어 전문가였다. 그리하여 시리어 고문서, 시리아 교회문서, 초기 성경의 해석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 Biedermanngasse(비더만가쎄): 유태인으로 대상(大商)으로 궁정에 보석류를 공급했으며 제국의 인장들을 제작하였고 오스트리아에서 백화점 스타일의 상점을 처음으로 개설한 미하엘 라자르 비더만(1769-1843)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자이텐슈태텐가쎄에 있는 시나고그의 부지를 매입하여 유태사회에 기여하였다.

- Bishoffgasse(비쇼프가쎄): 저명한 의사인 이그나즈 루돌프 비쇼프(1784-1850)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병리학 전문인 그는 육군병원 외과의를 거쳐 1826-32년간 요제피눔의 외과 전문의로서 활동했고 야전병원 외과의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딸인 아우구스테 리트로브 비쇼프는 어머니 요한나 비쇼프와 함게 오늘날의 '쇤브룬 하우스'라고 하는 여성들을 위한 양노원을 설립하였다.

- Böckhgasse(뵈크가쎄): 작가인 프란츠 하인리히 뵈크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비엔나에 대한 여러가지 흥미있는 역사서를 출판하였다. 대표적인 것은 '비엔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작가, 화가, 예술애호가'(1821: Wiens lebende Schriststeller, Kunstler und Dilettanten), '오스트리아 대공국 수도로서의 비엔나'(Wien, die Hauptstadt des Erzherzogtums Osterreich) 등이다.

- Boergasse(뵈르가쎄): 독일의 의사로서 부인과 전문의인 요한 루카스 뵈르(1751-1835)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 Bombekgasse(봄베크가쎄): 노동조합 운동가이며 자치정치 주창자인 요셉 봄베크(1882-1923)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 Bonygasse(보니가쎄): 루돌프스하임에서 온 프란츠 보니라는 사람을 생각하여 붙인 이름으로 그는 1861년에 이 거리의 도로확장을 위해 아무 보상도 받지 않고 자기가 어렵게 산 땅을 기증하였다.

- Breitenfurter Strasse(브라이텐푸르터 슈트라쎄): 브라이텐푸르트는 넓은 대지라는 뜻으로 예전에 이곳의 지명이었다.1888년에 운터마이들링에서 브라이텐푸르트 바이 빈으로 연결되는 길에 붙인 이름이다. 중세에도 그 길이 있었는데 그 때에는 리징거 베그(Liesinger Weg)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938년 합병 이후 1952년까지는 비너 슈트라쎄(Wiener Strasse)라고 불리기도 했다. 브라이텐푸르터 슈트라쎄는 현재 길이가 10.5 km에 이르며 리징과 마이들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로이다.

- Brockmanngasse(브로크만가쎄): 궁정배우이며 극장감독인 요한 프란츠 브로크만(1745-1812)을 기념하는 지명이다. 1789-91년에는 궁정극장장으로 있었다. 1791년이면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이다. 그는 특히 비극적 역할에 뛰어났다. 그리고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최초로 연극배우들을 위한 의료보험을 가능하게 했다.

 

궁정배우였던 프란츠 브로크만

 

- Brunnenweg(브룬넨베그): 샘이 있는 길이라는 뜻이지만 작은 정원이라는 뜻도 있다. 정원에 있는 길 이름은 에스파르세트(Esparsette)라고 부른다.

- Bruno-Pittermann-Platz(브루노 피터만 플라츠): 정치가인 브루노 피터만(1905-1983)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957-67년의 10년간 SPO의 당의장을 맡았었다. 그리고 1957-66년에는 OVP의 연방수상인 율리우스 라아브, 알폰스 고르바흐, 요제프 클라우스의 아래에서 부수상을 지냈다. 그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에 앞서서 국제사회주의협회를 주도하였다.

- Bundesweg(분데스베그): 가르텐지들룽(Gartensiedlung) 마을을 일군 정착민들을 말한다. 분트는 연합을 말한다.

- Bürgermeisterweg(뷔르거마이스터베그): 유래를 알수 없다. 뷔르거마이스터는 시장, 또는 촌장을 말한다. 비엔나 교외에 대한 정착운동이 활발할 때에 시장을 맡아서 수고한 사람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붙인 지명이다.

 

브루노 피터만 플라츠의 랭겐펠트 분수(Längenfeld Brun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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