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공동묘지 문화

비엔나 이슬람 공동묘지

정준극 2010. 3. 27. 21:11

비엔나 이슬람 공동묘지

(Islamischer Friedhof Wien)

 

리징에 있는 이슬람 공동묘지

 

오스트리아는 로마 가톨릭국가이다. 중세로부터 그러했다. 비엔나는 중세로부터 수백년동안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서 로마 가톨릭의 수호자와 같은 입장을 유지했었다. 또한 비엔나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서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 이후에는 유럽에서 반개혁, 즉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했던 신도들을 다시 가톨릭으로 불러 모으는 일에 앞장을 서야 했다. 그런 비엔나에서 로마 가톨릭 이외의 종교를 생각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엔나에는 오래전부터 개신교 교회와 공동묘지가 있으며 유태인을 위한 회당들과 별도의 공동묘지가 유지되어 왔다. 그만큼 개방적이어서 그랬을까? 그러다가 최근에는 이슬람 사원과 공동묘지가 생겼고 심지어 불교의 절과 공동묘지도 생겼다. 비엔나의 이슬람 공동묘지는 23구 리징의 그로스마르크트슈트라쎄(Grossmarktstrasse) 23a에 있다. 비엔나의 이슬람 공동묘지는 2008년 10월 3일 오스트리아에서는 처음으로 이슬람 신앙공동체의 공동묘지로서 문을 열었다. 이슬람 공동묘지는 리징의 인처스도르프 마을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리징바흐(리징하천)의 가장자리에 있다. 이슬람 공동묘지는 약 3만5천 평방미터의 넓이로서 서쪽에는 락센부르거 슈트라쎄, 남쪽으로는 하뵈크가쎄(Haböckgasse), 동쪽으로는 그로스마르크트슈트라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비엔나의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짐머링에 있는 중앙공동묘지를 이용했다. 중앙공동묘지의 이슬람 묘역이 확대되자 비엔나 시당국은 1970년대 중반에 아예 한 구역을 할애하여 이슬람 공동묘지로 사용토록 했다. 하지만 곧이어 수용에 한계를 마지하게 되었다. 새로운 이슬람 묘역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이집트 출신의 이슬람들이 사용할수 있는 구역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2001년부터 새로운 이슬람 공동묘지 계획이 작성되었다. 부지가 정해졌고 건물이 착공되었다. OPEC 자금에서 140만 유로가 지원되었으며 카타르 대사관이 상당액의 기부금을 내 놓아서 공사비 충당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공중에서 본 이슬람 공동묘지 . 여러 일반 건물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어려움도 있었다. 반이슬람주의자들의 항의였다. 2006년 4월의 어느날, 아직 내부가 완성되지 않는 공동묘지 건물이 화재와 함께 폭파되었다. 벽에는 Das wird gesprengt(폭파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해 10월에는 묘역의 담장에 23개의 십자가가 그려졌다. 아마 비엔나의 23개 구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공동묘지는 비록 예정보다는 늦어졌지만 2008년 10월 3일 라마단이 시작되는 것과 함께 오픈되었다. 약 4천-5천기의 묘소를 수용할수 있는 묘역으로 정비되었다. 묘비들은 키블라에 의해 메카 방향을 향하도록 설계되었다. 죽어서도 메카를 향하여 머리를 두는 것이 영광이기 때문이었다.

 

비엔나의 이슬람 공동묘지를 성묘하는 무슬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