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공동묘지 문화

무명인 공동묘지(Firedhof der Namenlosen)

정준극 2011. 5. 27. 18:53

무명인 공동묘지(Firedhof der Namenlosen)

 

무명인 공동묘지. 우리는 무덤의 봉분을 잔디로 덮는데 이곳에서는 각종 꽃나무로 덮는다.

 

비엔나에 와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시내에서 한참 남쪽의 짐머링에 있는 중앙공동묘지를 찾아간다. 유럽에서도 이렇게 넓고 잘 정리된 공동묘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묘지가 아니라 조각전시장 같다. 묘지 안에 있는 교회는 오토 바그너의 유겐트슈틸 양식이어서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찾아온 보람이 있지만 그보다도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마지막 안식처를 방문할수 있어서 이곳을 우정 찾아간다. 비엔나 중앙공동묘지는 필견의 장소이지만 또 다른 감동을 주는 곳이 있어서 소개코자 한다. 비엔나지역에 있는 55개의 공동묘지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특별한 곳은 다름아닌 '무명인 공동묘지'(Friedhof der Namenlosen: The Cemetery of the Nameless)일 것이다. 11구 짐머링의 알베르너 하펜(Alberner Hafen)에 있다. 도나우의 선착장이 있기 때문에 하펜이라는 명칭이 붙은 마을이다. '무명인 공동묘지'는 도나우-아우엔(Donau-Auen)국립공원에서 강건너편 쪽에 있다. 중앙공동묘지로부터 보면 도나우 쪽으로 동편이다. 비엔나 시내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수단이 편리하지 않기 때문에 순례를 하는 셈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 찾아가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뭇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이름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추모한다.

 

'무명인 공동묘지'에 있는 납골당 겸 예배처

 

'무명인 공동묘지'는 거대한 곡물창고와 커다란 사일로의 뒤에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공동묘지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다. 1940년 이전에 조성된 104기의 묘지가 있을 뿐이다. 그 이후에 도나우의 범람 등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중앙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무명인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대부분의 시신은 도나우에 익사한 경우이다. 물결에 따라 강변으로 밀려온 시신들이다. 그런 '무명인 공동묘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것은 아마도 Before Sunrise(동이 트기 전에)라는 영화 때문인듯 싶다. 이 영화에는 '무명인 공동묘지'의 장면이 상당히 나온다. 그래서 그 현장을 직접 보고 싶은 심정으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 무명인들의 시신은 주로 비엔나 목수협동조합이 제공한 목관에 담아 매장되었다. 무명인들의 묘지는 자그마한 면적에 검은색 철제의 작은 십자가가 획일적으로 세워져 있다. 그리고 Namenlos(무명인)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무명인 공동묘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작은 묘지. 묘지마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가 세워져 있다.

 

도나우 정비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요즘에는 시신이 물결에 실려 강변으로 밀려오는 경우가 ㅇ거의 없다. 그래서 '무명인 공동묘지'도 새 가족이 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11월 1일 만성절이면 이곳을 찾아와 촛불을 밝히고 이름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추모한다. 그 광경이 또한 사뭇 경건하다. 알베른(Albern) 마을에 살고 있는 어부들은 만성절이면 지금도 조그마한 뗏목을 만들어 꽃으로 장식을 하고 촛불을 켜서 무명인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도나우에 흘려 보내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시신들이 흘러 들어온 때처럼 흘려 보낸다는 것이다. 이 때에는 마을 밴드가 참석하여 추모의 음악을 연주한다.  

만성절이면 알베른 마을의 어부들은 무명인들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작은 뗏목을 만들어 강물에 떠내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