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더 알기/복음서 기초입문

경외서의 세계

정준극 2010. 4. 29. 21:34

경외서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초대 기독교인들은 4복음서를 써서 남긴 것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다른 복음서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교회는 오로지 4복음서만 정경으로 인정하여 신약성경에 포함하였다. 그러므로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다른 복음서들은 일종의 푸대접을 받았다. 4복음서 이외의 문서들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생명의 양식으로 삼기에는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정경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볼수 있다.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복음서들을 경외서라고 부른다. 혹자들은 위경(僞經)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비록 경외서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문서라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신빙성은 조금 떨어질 것이지만 흥미삼아서 들여다 볼 가치는 있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일종의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초대 교회 시절에 나온 경외서들 중에는 그러한 면을 반영한 것들이 더러 있다. 그래서 현대적인 감각에서 보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감히 말할수 있다. 경외서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상당히 많다. 초대 교회 시절에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너도나도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글을 남겨서 자기의 신학적 및 교회적인 위상을 제고하느라고 바빴으며 일부는 사도들의 이름을 빌려서 복음서와 비슷한 형식의 문서를 남겼다. 초대 교회는 그것들도 귀중하다고 간주하여 성경처럼 여겼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내용이 너무 많을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신앙에 혼란만 가져다 줄것 같아서 선별키로 했다. 이제 몇가지만 살펴보자. 경외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은 별도 항목으로 마련코자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림은 갈릴리바다에서 생선 153마리를 잡은 제자들.

 

[히브리복음서]

초대 기독교 신학자인 이레네우스 오리겐(Irenaeus Origen: 185-254)은 오늘날 알려진 여러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써진 것이 마태가 쓴 자료라고 주장했다. 마태는 예루살렘에서 히브리 기독교인들을 위해 히브리어의 문서를 썼다고 한다. 히브리 민족은 유태 민족, 또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의미이다. 히브리 기독교인들이란 원래는 유태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들여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들을 말한다. 우선 생각나는 사람들이 열두 제자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사도 바울은 철저 유태교인이었으나 나중에 회심하여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기독교인이 된 대표적인 경우이다.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다시 확인하자면 유태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예수를 구세주(메시아)로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다. 유태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세나 아사야와 마찬가지로 예언자(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이다. 마호메트가 선지자(예언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도 예언자 중의 한사람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생각이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를 철저하게 메시아로 믿는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믿는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이다. 노엘 코이펠 작품. 1700년.

 

얘기가 조금 빗나갔음을 미안하게 생각하며 다시 마태가 썼다는 히브리복음서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 마태가 히브리어로 썼다는 히브리복음서(정확히 말하자면 히브리인들을 위한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얼마후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 당시에는 그리스어가 세상의 공용어 노릇을 했기 때문에 복음을 더 널리 전파하자면 세계어인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전파하는 길이 바람직했다. 마태는 원래 세리였다. 세리로서 그는 백성들로부터 세금만 잘 걷으면 그만이었지 그리스어를 배우는 일에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나중에 직업을 바꾸어 이력서의 직업란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쓸 때에도 그리스어를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 쓴 복음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에는 그리스어를 잘 아는 다른 어떤 사람이 맡아서 했을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후 3년 공생애 동안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였다. 그래서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어로 번역했다고 생각되는 그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었고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어로 번역된 ‘히브리복음서’가 오리지널의 의미를 얼마나 정확하게 번역하였는지는 약간 의심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히브리복음서의 그리스어 번역본은 실종되어서 내용을 알 도리가 없게 되었다.

 

마태가 천사의 도움을 받아 아브라함과 다윗이 인솔한 구약시대의 인물들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다행하게도 마태가 썼다고 하는 오리지널 히브리복음서는 가이사라(Caesarea)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예수를 믿는 나사렛 사람들이 나중에 히브리복음서의 복사본을 하나 만들어서 초대교회 감독인 매튜 제롬(Matthew Jerome)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제롬은 히브리복음서를 기본으로 여러 설교자료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 마태가 썼다는 복음서의 타이틀은 ‘히브리 복음서’(Gospel according to the Hebrews)라고도 불렀지만 ‘사도 복음서’(Gospel of the Apostles)라고도 불렀다. 이로 미루어 보아 히브리복음서는 마태 이외의 다른 제자들도 작성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상당수 학자들은 마태가 썼다는 히브리복음서가 바로 마태복음의 원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최근에 신학자들이 진지하게 연구한 결과, 나사렛 공동체에는 마태복음서와는 관련이 없는 ‘히브리복음서’가 별도로 있었다는 것이다. 마태가 썼다고 하는 별도의 히브리복음서는 히브리어로 써진 것이 아니라 아람어로 기록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초대교회의 감독들이나 교회지도자들은 히브리복음서를 마치 정경의 4복음서와 마차가지로 대단히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초대교회의 위대한 감독들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레네우스 오리겐, 매튜 제롬 등은 마태가 썼다는 이 복음서를 진지하게 참고로 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히브리복음서의 사본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이 돌려보며 읽었다고 한다. 신학교수인 제임스 에드워즈(James Edwards)는 히브리복음서가 4복음서보다 훨씬 먼저 써졌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주후 40-50년 사이에 써졌다는 계산이다. 그만큼 생생한 기록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히브리복음서를 매우 존중히 여겼다고 주장하고 4복음서의 마태복음은 바로 히브리복음서를 근간으로 다시 기술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하여 학자들의 견해가 분분하여 히브리복음서에 대한 관심을 더해주고 있다.

 

카라바지오가 그린 '의심많은 도마'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있는 창자국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도마복음서]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사람으로 보통 ‘의심 많은 도마’(Doubtful Thomas)라고 하는 그 도마가 썼다는 복음서가 도마복음서이다. 도마복음서는 정경의 4복음서와는 스타일이 조금 달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대화체로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전하신 지혜의 말씀들을 엮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도마복음서가 주후 50-60년의 상당히 초기에 써졌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학자들은 1세기 중반에 써졌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만일 1세기 중반, 즉 주후 150년경에 써졌다고 하면 이는 바울서신들이 알려진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 옥스퍼드교회사전에도 도마복음서가 주후 150년경에 써졌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집트의 나그 하마디에서 발견한 도마복음서를 포함한 성서사본들의 묶음

 

도마복음서는 마태와 누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마태와 누가가 기록한 내용을 많이 참조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도마복음서가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노시스교적인 특성은 없다고 한다. 그노시스교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 있어서의 신비주의적 이단(異端) 기독교를 말한다. 도마복음서에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두가지 비유가 있다. 하나는 빈 독에 대한 비유이며 다른 하나는 암살에 대한 비유이다. 도마복음서는 초대교회의 기록에 의해 존재가 확인되었지만 오리지널을 발견하지 못하여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다가 극히 최근인 1946년에 이집트 북부의 나그 하마디(Nag Hammadi)의 도서관에서 몇 가지의 신비주의적 경전들을 발견했을 때 함께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나그 하마디에서 발견한 도마복음서가 주후 200년경에 파피루스에 써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때 도마복음서의 그리스어 번역본이라고 생각되는 조각들도 발견했는데 일부 언어는 콥틱어와 흡사하지만 그렇다고 콥틱어는 아니었다고 한다.

 

루벤스가 그린 베드로. 천국 열쇠를 들고 있다.

 

[베드로복음서]

베드로복음서는 베드로가 써서 남겼다고는 하지만 확실치 않다. 베드로복음서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학자들이 그때 발견한 원고를 조사했더니 2세기 초반에 써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직접 써서 남긴 기록은 아니며 훗날 베드로를 추종했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이름을 빌려서 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베드로복음서의 내용은 대부분 전설적이며 유태인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한 것이고 도세티슴(Docetism)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도세티슴이란 것은 예수님의 육신은 환영에 불과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것도 허상이었다는 주장이다. 예수는 순수한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에 근거한 것이다.

 

구스타브 도레가 그린 '예수에게 키스하는 가롯 유다'

 

[유다복음서]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은30세 판 자이다. 그런 유다에 대한 복음서가 있다. 유다의 관점에서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문서이다. 때문에 ‘이것도 복음서라고 할수 있느냐?’는 논란이 많았으나 어쨌든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수록하였기 때문에 복음서로 간주되고 있다. 논란이 많은 것은 예수를 배반한 제자의 관점에서 쓴 기록을 어찌 신뢰할수 있겠느냐는 이유에서였다. 유다복음서는 예수님과 유다와의 색다른 관계를 그렸다고 한다. 유다복음서는 어떤 도둑이 이집트의 어떤 동굴에서 발견하였다. 도둑은 이 문서를 암시장에 내놓아 팔았으며 그후 몇 사람의 손을 거친 후에 어떤 고문서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문서 수집가는 예일과 프린스턴 대학교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진위를 감정하였다. 결과, 2세기에 쓴 진본으로 판명되었다. 나중에 학자들은 이 문서를 유다복음서라고 이름 붙였지만 유다가 쓴 것이 아니며 유다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Q복음서의 어록집]

가설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Q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대화체로 적었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말씀들이 정리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Q복음서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어록들은 나중에 마태와 누가가 상당히 인용하였다고 본다. 그러므로 Q복음서는 마태복음서나 누가복음서보다 먼저 써졌다고 말할수 있다. 대략 주후 50년경에 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크 구데이커(Mark Goodacre)와 같은 학자들은 Q복음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년기 복음서](Infancy gospels)

‘유년기복음서’(그리스어로는 protoevangelion)는 주로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와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어서 그런 타이틀이 붙었다. ‘유년기복음서’는 2세기경에 써졌다고 하며 그 중에는 ‘야고보복음서’(Gospel of James)와 ‘도마의 유년기복음서’(Infancy Gospel of Thomas)가 포함된다. 도마의 유년기복음서는 도마복음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야고보복음서는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녀 개념을 강조하였다. 야고보복음서와 도마의 유년기복음서는 정경에는 포함되지 않는 마리아의 생애에서 일어난 여러 기적들과 예수의 유년시절에 대한 사항들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야고보와 도마 모두 마리아의 처녀시절과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목격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신뢰성도 떨어진다고 볼수 있다.

 

[하모니복음서](Harmonies)

하모니복음서는 4복음서의 내용들을 다시 정리하여 하나의 통일된 스토리로 엮은 것이다. 실제로 공관복음서들은 내용이 서로 비슷하여 중복되는 스토리가 많다. 공관복음서들과 요한복음서의 공통된 내용들을 정리하여 하나의 대화체 문서로 통일한 것이 하모니복음서이다. 조화를 이루었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하모니복음서의 전체 내용은 알수가 없고 몇몇 조각만을 알수 있을 뿐이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모니복음서는 주후 175년경에 앗수르의 신학자인 타티안(Tatian: 120-180)이 정리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로 정리한 하모니복음서는 그후 1-2백년간 수리아(시리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복음적 성격의 문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점차 소외되어 오늘날에는 내용조차 알기가 어렵게 되었다.

 

시노페의 마르시온

 

[마르시온의 누가복음서]

시노페의 마르시온(Marcion of Sinope: 85-160)은 초대교회의 신학자로서 이단으로 몰려 파문까지 당한 인물이다. 어찌나 이단스러운 주장을 했던지 폴리캅은 마르시온은 ‘사탄의 장자’라고까지 말하며 비난하였다. 마르시온은 오늘날 누가복음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과는 내용이 상당히 다른 별도의 누가복음서 버전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시온은 정경에 있는 누가복음에서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모두 삭제하고 새로운 누가복음 버전을 만들었다. 주로 유태인의 오랜 전통에 의한 내용은 모두 삭제하였다. 마르시온은 그러면서 자기의 새로운 버전이 실상은 오리지널 누가복음에 가깝다고 주장하였다. 마르시온은 누가복음 이외의 다른 모든 복음서들을 거부하였다. 특히 요한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르시온은 요한복음이 초대교회의 신학자인 이레네우스가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마르시온의 누가복음서는 교회에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안에 있는 베드로의 묘지. 구름처럼 구불구불한 오른쪽 검은 대리석 기둥 이 있는 곳의 지하가 바로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