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부활 이야기/최후의 만찬

'최후의만찬'은 어디서 가졌나?

정준극 2010. 5. 31. 05:19

[최후의 만찬의 장소]

 

‘최후의 만찬’과 관련하여 몇가지 짚고 넘어 가야할 사항이 있다. 우선 ‘최후의 만찬’이 열렸던 장소가 어디냐는 것이다.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벽 밖의 시온산에 있는 어떤 집의 방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다락방’(The Upper Room)이라고 알려진 장소이다. 이 주장은 공관복음에 기초한 것이다. 마태복음 26장의 기록은 다음과 같으니 ‘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 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이다. 이렇듯 마태복음에서는 최후의 만찬 장소가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다만, 성안 어떤 곳 이라고만 되어 있다. 그런데 어느 성안이라는 것인가?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예루살렘 성을 말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지금까지의 추측은 예루살렘 성에서 가까운 어떤 마을의 성이라고 한다. 그보다도 신비한 것은 어떤 성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 성에 들어가서 아무에게나 말하면 장소를 준비해 줄 것이라는 점이다. 마치 성안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미리 알고 유월절 만찬 장소를 준비하였다는 설명이다. 신학자들은 이 점을 신비하게 여겨 ‘최후의 만찬’을 ‘신비의 만찬’(Mystical Supper)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1490년대 작품. 밀라노

 

마가복음에는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4장 12절부터의 말씀이다.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 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 하니라’라는 구절이다. 마가복음의 설명에도 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예루살렘이든지 또는 인근의 어떤 성안에 들어가면 물 한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이 있으니 그를 만나 ‘최후의 만찬’장소를 안내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 준다는 얘기다. ‘최후의 만찬’과 물 한 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명확치 않을 뿐만 아니라 신비하기 까지 하다.  그러나저러나 도대체 누가 물 한동이를 지고 갈 것을 어떻게 아셨다는 것인가? 

 

올리브산(감란산)에서 내려다 본 예루살렘

 

누가복음의 설명도 마가복음과 비슷하다. 22장의 말씀을 보면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 날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하여금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 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며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 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왜 자꾸 물 한동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일까?

 

'최후의 만찬'이 열렸다고 생각되는 예루살렘 시온산의 어떤 건물 만찬실(세니클). 다락방이라는 장소이다.

                                                

‘성내로 들어가서’라는 기록에서 그 성이 어떤 성이냐는데 대한 논란은 여러 가지가 있다. 현재까지는 예루살렘 교외에 있는 어떤 마을이 아닐까 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면 베다니이다. 베다니는 오늘날 요단강 서안(西岸) 2km에 있는 알-에이자리야(al-Eizarya)라고 한다. 알-에이자리야라는 말은 '나사로의 장소'라는 뜻이다. 알-에이자리야에는 나사로의 무덤이 있으며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를 접대했다고 하는 집이 있다. 예수께서는 간혹 베다니에 들려 사랑하시는 나사로와 그의 누이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쉬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평소에 자주 방문하여 식사를 하였던 베다니에서 가졌으리라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어떤 고고학자들은 ‘최후의 만찬’이 있던 장소가 에세네(Essene)파의 신도들이 상당히 살고 있는 마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세네파는 고대 유대교 중에서 금욕과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한 종파이다. 상당수 학자들은 예수께서 에세네파의 사람들과 연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40일간 광야에서 금식을 하시며 사탄의 시험을 물리쳤으며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였기 때문에 이보다 더 신비한(영지주의적인) 내용들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에 에세네 파들이 많이 살고 있던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진 곳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주장이다. 오늘날 에세나 파의 신도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정통유태교도들이 오랜 전통을 지키고 있다.

 

'최후의 만찬'는 예수께서 자주 가셨던 베다니 마을에서 열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왜냐하면 베다니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 마리아와 마르다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베다니 마을에 있는 나사로의 무덤.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끔찍이 사랑하시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사로의 여동생인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주장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던 여인이라고 한다.

 

장소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은 예루살렘 성안의 다락방이라는 것이다. '성마가의 수리아(시리아)정교회'가 특히 그렇게 믿고 있다. 수리아정교회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있는 어떤 집의 돌에 그 집이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집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 집은 수리아정교회가 관장하고 있으며 '최후의 만찬'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방은 지하에 있다. 다락방이 아니라 지하방인 것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예루살렘의 거리들이 흙에 파묻히어 고도가 낮아 졌다는 설명이다. 그 증거로 12세기의 제1차 십자군 당시에는 예루살렘 거리의 고도가 12피트(3.6 미터)나 높아졌다는 것이며 이같은 현상은 계속되어 오늘날에는 예전의 거리들이 대부분 땅속에 묻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의 다락방이 현재 지하방이 된 것은 자연현상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수리아정교회가 그 집을 ‘최후의 만찬’의 장소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집에 예수님 당시의 누가가 직접 그린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 누가는 무슨 마음으로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를 그렸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을 모방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