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부활 이야기/최후의 만찬

떡과 포도주에 대한 이야기

정준극 2010. 5. 31. 05:21

[떡과 포도주에 대한 이야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었다고는 되어 있으나 그후에 제자들과 함께 포도주를 마셨는지에 대하여는 정확한 설명이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유월절에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무교병과 포도주를 마시는 관습이 있으므로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한 이날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무교병과 포도주를 마셨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우리나라 성경에 떡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혹시 인절미나 시루떡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그런게 아니라 밀가루로 만든 빵을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빵은 아니다. 중동지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먹는 난(Nan)이라는 음식이 이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납작하게 만들어서 호떡처럼 구운 것인데 안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것이다. 유태인들은 유월절 만찬에서 포도주를 보통 세 번에 걸쳐 마신다. 그리고 그때마다 다른 잔을 사용한다. 누가복음에도 예수님이 다른 잔을 사용하셨다는 암시가 되어 있다. 누가복음 22장 17절 이하를 보면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시기 전에 잔에 포도주를 담아 제자들에게 나누어 마시라고 하였고 저녁을 먹은 후에 다시 잔에 포도주를 담아 제자들에게 주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최후의 만찬. 반 다이크 작품.


공관복음서에는 잔에 부어 마신 것이 포도주라는 명확한 설명이 없다. 다만 누가복음의 기록에 예수님이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유추해 보면 잔에 부어 마신 것이 분명히 포도주라고 생각할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태인들의 유월절 관습에 따라 포도주를 부은 잔을 최소한 두 개 사용하였다고 볼수 있다. 즉,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처음에 제자들에게 나누어 마시도록 한 잔과 식사 후에 다시 제자들에게 나누어 마시도록 한 잔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성배(聖杯)도 최소한 두 개라고 생각할수 있다. 그런데 참고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정통 유태인들은 유월절 식사를 할 때에 네번에 걸쳐 포도주 잔을 기울이며 그때마다 각각 새로운 잔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즉,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한 잔, 식사 도중에 한 잔, 식사를 마치고 나서 또 한 잔, 그리고 나중에 유월절 찬송(할렐)을 부를 때에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신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식사를 마친 후에 잔을 들었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세번째 잔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지만 성경에는 식사 전에 한번, 식사를 마친 후에 한번, 이렇게 두번만 잔을 사용한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성배를 들고있는 막달라 마리아. 성령의 비둘기가 막달라 마리아를 지켜주는 듯한 모습이다.

 

[축복과 감사기도의 차이?]

음식에 대하여 축복한 것과 감사의 기도를 한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26장)과 마가복음(14장)에는 이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설명되어 있다. 즉, 떡에 대하여는 축복을 하셨고 잔을 가지고는 감사기도를 하셨다고 되어 있다. 마태복음 26장 26-28절의 기록을 보면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되어 있다. 마가복음 14장의 기록도 마태복음과 같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떡을 가져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감사기도를 하였다고 되어 있다. 축복은 영어로 Blessing이며 감사 기도를 드린 것은 Giving thanks이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떡에 대하여 축복을 하지 않으시고 감사기도만 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도 바울도 ‘축복’이 아니라 ‘감사기도’라고만 기록하여 누가와 의견을 같이 하였다. 누가복음과 사도 바울의 기록에는 예수님이 포도주에 대하여도 감사기도를 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다. 다만, 떡의 경우와 같이 하였다(Likewise)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포도주에 대하여도 감사기도를 했다고 볼수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의 성만찬(유카리스트) 장면

 

그러면 마태와 마가는 어찌하여 예수님이 떡에 대하여는 축복하시고 포도주에 대하여는 감사기도를 했다고 기록하였을까? 같은 공관복음서이면서 누가복음과는 다르게 표현하였을까? 이 점은 오늘날 모든 교회에서 성만찬 의식을 거행할 때에 떡과 포도주에 대하여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고찰케 하는 것이다.


또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나누어 주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다만,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에는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Do this in memory of me)라고 말씀하셨다. 즉, 너희도 다른 사람에게 떡을 떼어 나누어 줄 때에 나를 기념하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포도주를 나누어 주실 때에는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이 없으셨다. 오늘날 교회에서의 성만찬에서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 떡의 경우에만 예수님을 기억하고 포도주에 대하여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복음서의 기록에 따른 엄밀한 해석을 하자면 그렇지만 꼭 그렇게 엄밀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성만찬의 근본 취지와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나를 기억하여 이같이 행하라'고 지시하신 것이 오늘날 기독교에서만 유일하게 시행되고 있는 성만찬의 시초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후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제자들 등이 '최후의 만찬' 1주기 때에 성만찬을 시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성만찬을 주도한 것은 그가 트로아스(Troas)라는 곳을 방문하여서라고 한다. 아무튼 예수님을 기억하여 그가 전하신 새로운 언약을 기억하기 위한 성만찬은 다른 종교에는 없는 특별한 의식이다. 요즘에는 개신교에서도 성만찬을 시도 때도 없이 시행하지만 초대교회에서는 거의 1년에 한번 정도만 성만찬 의식을 집행하였다고 한다.

 

떡과 포도주. 영어로는 브레드(Bread)이므로 실상은 빵이지만 우리는 떡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포도주를 피에 비유한 것은 아마도 구약성경 출애굽기 24장 8절의 기록과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기록되었으되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들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이다. 이 경우에 ‘피’는 곧 ‘희생’을 의미한다. 모세는 ‘피’를 하나님의 ‘언약의 피’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행동은 제자들도 예수님의 희생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신 것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희생에 동참해야 할 때에 모두 자기를 부인하고 멀리 떨어져 나갈 것을 알고 있었다. 구약에서는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뿌리며 하나님의 언약을 말하였지만 신약에서는 포도주로 대신하였다. 하지만 그 포도주는 앞으로 흘릴 예수의 피를 의미하며 나아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흘리는 거룩한 순교의 피를 뜻한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하나님의 어린 양'(Agnus Dei)으로 간주하였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과연 유월절 음식이었을까?]

 

성경에는 예수님이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날의 만찬도 유월절 만찬이었을 것이다. 유태인들은 유월절 식사를 할 때에 떡을 먹으면서 포도주를 마신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에서는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떡을 먹는 것 후에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최후의 만찬’이 전통적인 유월절 식사라고 보기가 어렵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서의 저자들이 유태인의 유월절 식사 관습을 잘 몰라서 그렇게 적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떤 학자는 '최후의 만찬'이 관습대로 유월절 바로 전날 저녁인 나신 15일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신 14일, 즉 유태인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양을 잡아 준비하는 날에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유월절 제사를 위해 '양을 잡는 날'과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 그리스도를 연관하여서 이다. 한편, 유태인의 관습에 따르면 유월절 식사에서는 서너 개의 포도주 잔을 따로 따로 사용한다. 처음의 잔은 떡(무교병)을 먹으면서 사용한다. 두 번째 잔도 떡을 먹으면서 사용한다. 세 번째 잔은 유월절 축제를 기념하여 사용한다. 네 번째 잔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찬양(이를 할렐이라고 한다)을 부를 때에 사용한다. 학자들은 예수님이 세번째 잔 까지 사용하셨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성배는 세개가 된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식사 전에 잔을 돌리셨고 이어 식사 후에도 잔을 돌리셨다고 되어 있어서 그렇다면 성배가 최소한 두개가 된다. 믿거나 말거나!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의 '최후의 만찬' 조각. 그림은 많이 있지만 조각은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