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서의 세계/구약시대의 경외서

마카비 1서(The First Book of Maccabees)

정준극 2010. 7. 26. 13:57

마카비 1서(The First Book of Maccabees)

 

가톨릭에서 제2정경으로 삼고 있는 마카비서는 1서와 2서로 나뉘어 있다. 마카비의 원래 이름은 유다스 마카베우스(Judas Maccabeus)이며 주전 2세기에 그리스의 셀류코스(Seleucid: 셀루시드)제국이 유대 땅을 점령하였을 때 유대 백성들과 함께 항전하여 셀류코스 군대를 몰아내고 독립적인 유대왕국을 설립한 영웅이다. '보아라 용사, 돌아온다'(See the Conquering Hero Comes)와 '할렐루야 아멘'이라는 합창으로 유명한 헨델의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는 바로 유다 마카비(유다스 마카베우스)의 영웅적인 활동을 그린 것이다. 마카비서는 오리지널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으나 그것은 분실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버전은 그리스어 번역본으로 70인역(셉투아진트)에 의한 것이다. 가톨릭, 정교회, 콥틱교회 등은 마카비서를 정경(또는 제2정경)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개신교들은 경외서 또는 제2정경으로 간주하고 있다. 유태교에서는 마카비서를 히브리 역사서의 중요한 파트로 인정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종교적인 문서로는 간주하지 않고 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 음반의 표지

 

이제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기원전 2세기경 마케도니아(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유대 땅을 정복하였다. 그후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은 갈라져서 유대는 그리스의 셀류코스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점령자인 셀류코스 제국의 안티오쿠스 4세(Antiochus IV)는 유대 신앙을 잔혹하게 핍박하기를 즐겨하였다. 이에 유대인들이 봉기하여 결국 셀류코스를 몰아내고 유대 땅에 독립적인 왕국을 세우도록 했다. 이 때에 마타티아스(Mattathias) 가족들이 유대 백성들의 봉기를 이끌었다. 즉, 마타티우스의 세 아들인 유다스 마카베우스, 요나단 마카베우스, 시몬 마카베우스, 그리고 나중에는 시몬의 아들인 요한 히르카누스가 영웅적으로 활약하였다.

 

서두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이 유대 땅을 정복하였으나 곧 이어 셀류코스 안티오쿠스가 알렉산더 대왕의 뒤를 이어 통치자가 되었다. 안티오쿠스는 이집트의 톨레미 왕국을 정복한 후 예루살렘을 장악하여 수많은 유대인들을 살육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성물들을 약탈하였다. 그 후 안티오쿠스는 유대인에 대하여 가혹할만큼의 세금을 부과하였고 예루살렘에 성곽을 건립하였다. 안티오쿠스는 유대 백성들이 유대 율법을 따르는 것을 억압하여 유대 백성들을 속박하였다. 더구나 안티오쿠스는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세워놓아 성결한 곳을 무참하게 모독하였다. 안티오쿠스는 유대인들의 할례를 금지하였고 심지어 유대인들이 유대교의 경전을 지니고 있기만 해도 잔인하게 처형하였다. 그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성전에 제물을 올리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우상을 경배토록 강요하였다. 우상숭배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으나 우상숭배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반 백성들을 죽이는 일도 자행하였다. 안티오쿠스는 유대 땅에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를 도입하였다. 예를 들어서 예루살렘에 체육경기장을 건설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옷으로 몸을 가린다. 하지만 안티오쿠스는 경기장에서 유대인 남자들이 옷을 벗고 나체로 운동을 하도록 훈련하였다. 한편,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금지한 것은 신성한 율법을 어기는 일이었다. 남자들이 경기장에서 나체로 운동을 하게 되면 할례여부를 당장 알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체로 나서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말할수 없는 치욕이었다. 개중에는 그리스화 되는 것을 찬성하는 유태인들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남자는 할례를 받은 생식기의 표피를 복구하는 노력도 하였다. 이러한 모든 내용들이 마카비 1서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유다스 마카베우스 이콘

 

옛 이스라엘의 사사(판관)와 같은 마타티아스는 이스라엘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정복자에게 항거키로 했다. 마타티아스는 유대인들이 그리스화가 되는 것에도 항거키로 했다. 이를 위해 마타티아스의 세 아들이 유대인 군대를 조직하여 항거에 앞장서게 되었다. 유대인 병사들이 안티오쿠스의 병사들과 전투를 함에 있어서 어려운 점도 있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싸우지 못하고 공격이 있으면 그대로 당할수 밖에 없었다. 이로서 수천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병사들은 안식일에도 싸워야 한다고 믿었다. 마카비 형제들이 이끄는 용감한 유대 병사들은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였다. 이로써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성스러운 장소가 다시 되었다. 유다를 비롯한 마카비 형제들이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최대 축제인 하누카(Hanukkah)이다. 유다스 마카베우스는 유대 땅에서 그리스인들을 영원히 추방하기 위해 로마제국과 손을 잡을 생각이었다. 유다스가 로마제국과의 동맹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요나단이 그 일을 적극 추진하였다. 대제사장이 된 요나단은 심지어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어 그리스에 대항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요나단이 세상을 떠나자 동생 시몬이 뒤를 이었다. 시몬도 대제사장이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왕자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다. 사실상 시몬과 그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의 하스모니아 왕조(Hasnomean Dynasty)를 이루었다. 그러나 상당수 유대인들은 시몬 마카베우스를 이스라엘 왕국의 적법한 계승자로 간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윗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시몬은 나라를 평화롭게 번영되게 다스렸다. 그러다가 마케도니아 그리스의 총독으로 임명된 아부부스(Abubus)의 아들로서 애급 톨레미 왕조의 간첩인 사람에게 살해당하였다. 시몬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요한 히르카누스가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히브리어에서 마카비(마카베우스)라는 말은 '망치'를 의미한다. '망치'라는 말은 마타티아스의 셋째 아들로서 유대인 항쟁의 첫번째 지도자인 유다스 마카비에게는 참으로 해당되는 단어이다. 그의 공격은 마치 '망치'로 때리는 것과 같았다. 마카비라는 이름은 전투중에 병사들의 외침 소리와 같다는 해석도 있다. 유대 병사들은 전투중이 '미 카모하 벨림 야훼'(Mi Kamocha B'elim, YHWH)라고 외쳤는데 이 말은 출애급기 15장 11절에 나오는 '여호와,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라는 말이다. 바로 마카비라는 것이다. '미 카모아 벨림 야훼'이라는 외침을 멀리서 들으면 마치 '마카비'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런 해석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미 카모아 벨림 야훼'를 약자로 MKBY라고 쓰는데 이는 유대 병사들의 구호인 Mem, Kaf, Bet, Yod 의 약자와 우연히도 같다. '멤 카프 베트 요드'라는 말은 '하늘에 계신 주'(Lord of Heaven)라는 뜻과 발음이 비슷하다. 히브리어 성서의 마카비서의 명칭을 '엠 카프 베트 요드'라고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유다스 마카베우스는 히브리어로 예후다 하마카비(Yehudah HaMakabi: 망치의 유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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