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경복궁의 애환

광화문

정준극 2010. 9. 7. 05:41

광화문(光化門)

광화문 제모습찾기 사업 결실

 

2010년 8월 15일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광화문의 위용. 280억 짜리이다.

 

2010년 8월 15일 광복절 65주년을 맞아 광화문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2010년은 경술국치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여 광화문의 복원은 상당한 의미를 주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한 공사는 총 270억원이 투입되는 대공사였다. 원래는 2010년 10월에 완성하는 것으로 어림 잡았으나 11월의 G20 회의를 겨냥하여 예정보다 서둘러 완성을 보았다고 한다. 광화문이라는 뜻은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라고 한다. 옛날의 왕이라고 하면 지금의 대통령과 같다고 볼수 있다. 그러므로 제발 대통령의 큰 덕으로 우리나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있던 자리는 아니다. 원래 있던 자리에는 비석을 세워 원래 해태가 있었던 자리임을 표시해 놓았다. 광화문의 석축부에는 세 개의 홍예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왕이 다니는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다.. 광화문의 천장에는주작의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번에 광화문과 함께 완성된 건축물들은 용성문, 협생문, 동서 수문장청, 영군직소 등이다.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면 더 자세히 볼수 있다.

 

예전에 있었던 광화문.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었다. 양 옆의 담장도 살펴보시라. 담장이넝쿨이 많았었다.

 

광화문은 지금으로부터 715년 전인 1395년, 조선 태조 때에 경복궁 정문으로 건립됐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 때 전화에 휩쓸려 불쌍하게 사라졌다. 이후 고종 때인 1865년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경복궁 중건때에 광화문도 복원되었지만 1926년 일제는 그것도 안목이라고 광화문이 조선총독부 건물의 앞을 가린다며 원래의 광화문을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인근의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 그러다가 김일성 도당에 의한 6·25 전쟁 때는 안타깝게도 목조 누각이 소실되는 아픔도 겪었다. 광화문은 1968년 원래의 자리로 옮겨 복원됐으나 잘 따지고 보니까 사실상 원래 건립 당시의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10여m 밀려나 경복궁 중심축과 어긋나게 배치됐었다고 한다. 각도도 경복궁 중심축 기준으로 3.75도 어긋나 있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자세히도 재 보았던 것 같았다. 또 목재 대신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건립돼 있어서 당초의 모습과는 상당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새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실상 겉으로보는 모습에서는 예전 것이나 지금 것이나 별반 차이를 느낄수 없었다. 다만, 다른 점은 지금의 것에 돈을 무척 많이 들였다는 점과 재질이 다르다고 하는 점이라고 볼수 있다. 아무튼 이번 복원 사업으로 용맥(龍脈)이라고 하는 광화문-흥예문-근정문이 다시 직선 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의 광화문에 걸려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현판도 대원군이 복원할 당시의 오리지널이라고 하는 임태영(任泰瑛·고종 당시 중건책임자 겸 훈련대장)의 글씨로 복원됐다.

 

2010년 9월 6일 

광화문과 해태와 수어군

 

광화문과 흥예문 사이에 새로 들어선 수문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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