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1구 플로리드스도르프

12. Jandagasse - Justgasse

정준극 2010. 9. 20. 06:13

12. Jandagasse(얀다가쎄)로부터 Justgasse(유스트가쎄)까지

 

- Jandagasse(얀다가쎄): 오스트리아 축구선수인 안톤 얀다(1904-1986)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924년부터 정규축구선수가 되어 예들레제의 아드미라 팀에서 풀백 수비수로 뛰기 시작했다. 그후 1934년 오늘날의 오이로파포칼(Europpapoka)인 미트로파컵휘날레(Mitropacupfinale)에서 오스트리아팀을 승리로 이끌어 최우수선수로 선발되었다.

- Jane-Tilden-Gasse(제인 틸덴 가쎄): 캄머배우인 제인 틸덴(원명은 마리안네 빌헬미네 투흐: 1910-200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라이문트극장, 요셉슈타트극장, 그리고 베를린의 쿠르휘르스텐담극장(Theater am Kurfuerstendamm)에서 활동했으며 1977년 은퇴하기 전까지는 비엔나 부르크테아터의 명예배우로서 활동했다.

 

비엔나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은 독일제국의 수도인 베를린에서도 공연하고 싶어했다. 제인 틸덴은 베를린의 쿠르휘르스텐담극장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 Jara-Benes-Gasse(야라 베네스 가쎄): 체코 출신의 작곡가인 야라 베네스(1897-194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오페레타, 영화음악, 코미디음악 등을 작곡했다. 그러나 오늘날 안타깝게도 거의 잊혀졌다.

- Jedlersdorfer Platz(예들러스도르퍼 플라츠): 예전에는 독립된 행정구역이었으나 현재는 플로리드스도르프구에 속하여 있는 예들러도르프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Jedlersdorfer Strasse(예들러스도르퍼 슈트라쎄)도 마찬가지이다.

- Jedleseer Strasse(예들레제어 슈트라쎄): 예전에는 독립된 행정구역이었던 예들레제를 생각하여 붙인 이름이다.

- Jeneweingasse(예네봐인가쎄): 부동산을 다수 소유하였던 요셉 예노봐인(1830-1899)라는 사람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 거리에 에르되디 백작가의 저택이 있다. 베토벤이 1815-16년간 자주 방문하여 연주회를 가졌던 장소이다.

 

예네봐인가쎄의 에르되디백작가 저택의 입구. 베토벤을 기념하는 장소이다.

 

- Jerusalemgasse(예루살렘가쎄): 교육자, 철학자, 사회학자인 빌헬름 예루살렘(1854-1923)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 Jiricekgasse(이리체크가쎄): 역사학자인 요셉 콘스탄틴 이리체크(1854-1918)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대학교의 슬라브언어 및 역사 교수였다.

- Jochbergengasse(요흐버겐가쎄): 경작지의 이름이다.

- Johannes-de-La-Salle-Gasse(요한네스 드 라 살레 가쎄): 프랑스의 사제로서 교육자인 장 밥티스트 드 라 살레(1651-171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교직회(Schulbrüder)라고 부르는 기독학교수도사 모임을 조직하였다. 한편, 그는 실업학교(Realschule), 주일학교(Sonntagsschule), 사범학교(Erziehungsanstalt) 등을 설립하여 불우청소년들을 교육하였다. 비엔나의 교직회 수도회는 슈트레버스도르프에 처음 설립되었다.

 

장 밥티스트 드 라 살레(요한네스 드 라 살레)

 

- Johannes-Fehring-Promenade(요한네스 페링 프로메나데): 작곡가인 요한네스 페링(요한네스 페른바흐: 1926-2004)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955년에 ‘요한네스 페링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여 서독쾰른방송국(WDR)의 방송오케스트라(1963-66), 테아터 안 데어 빈 오케스트라(1965-83), ORF 빅 밴드(1971-83)를 지휘하였다. 그는 1970년 아우스트로팝(Austropop)의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마리안네 멘트(Marianne Mendt)가 그가 작곡한 노래인 A Glock'n die 24 Stunden läut 를 불러 크게 히트하였다.

 

아우스트로팝의 연주. 왼쪽으로부터 Gary Lux, Anita 'Niddl' Ritzi, Wolfgng Ambros, Schiffkowitz, Christian Colonovits. 2008년 11월 비너 슈타트할레(Wiener Stadthalle)에서 비엔나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자선공연을 하고 있는 장면. 

유럽최대규모의 실내연주회장 및 스포츠 경기장인 비너 슈타트할레. 15구 루돌프스하임-휜프하우스 포겔봐이드플라츠(Vogelweidplatz) 14번지에 있다. 비너 슈타트할레(비엔나 시립홀)에 가려면 U6 Burggasse/Stadthalle에서 내리든지 U3 Urban Loritz-Platz에서 내리면 된다. 전차는 6, 9, 18, 49번을 타면 되고 버스는 48A번이다.

 

- Johann-Knoll-Gasse(요한 크놀 가쎄): 훈제식품 명장인 요한 크놀(1856-1924)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예들러스도르프의 지방판사를 겸했었다.

- Johann-Orth-Platz(요한 오르트 플라츠): 지도제작가인 요한 오르트(1929-2004)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연방표준연구소(Eich-und Vermessingswesen)의 직원이었다. 플로리드스도르프 구박물관의 큐레이터 역할을 했다. Johann-Orth-Weg(요한 오르트 베그)도 같은 유래이다.

- Johann-Treixler-Gasse(요한 트라익슬러 가쎄): 그로쓰예들러스도르프 장학관을 지낸 요한 네포무크 트라익슬러(1842-1898)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 Johann-Weber-Strasse(요한 베버 슈트라쎄): 슈탐머스도르프 의회의원을 지낸 요한 베버(1839-1909)를 억지로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 Josef-Baumann-Gasse(요셉 바우만 가쎄): 레오폴다우 시장을 지낸 요셉 바우만(1836-1920)이라는 백성을 생각하여 붙인 이름이다.

- Josef-Brazdovics-Strasse(요셉 브라즈도비치 슈트라쎄): 소방대원인 요셉 브라즈도비치(1904-1969)를 기리는 거리이다. 그는 1934년 2월 오스트리아시민전쟁(혁명: Öserreichischen Bürgerkrieg)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공산주의를 조직하는 임무를 맡았었다. 그로인하여 1944년 나치에게 체포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마우타우젠강제수용소(KZ Mauthausen)에서 감금되어 있다가 요행히 살아남았다.

 

1934년 오스트리아  시민전쟁 때에 육군(Landesheer)이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앞에서 시위대들을 막기 위해 경계를 서고 있다.

 

- Josef-Flandorfer-Strasse(요셉 플라도르퍼 슈트라쎄): 슈탐머스도르프 시장을 지냈으며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던 요셉 플란도르퍼(1844-1920)가 생각이 나서 붙인 이름이다.

 

슈탐머스도르프의 프라이하이트 광장

 

- Josef-Melichar-Gasse(요셉 멜리하르 가쎄): 우편국 직원으로서 소농장인 브루크하우펜(Bruckhaufen)을 창립한 사람이다.

- Josef-Ruston-Gasse(요셉 루스톤 가쎄): 런던 출신의 조선전문가이며 기업가인 요셉 존 라스튼(1809-1895)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832년 비엔나에 와서 증기선을 건설했다. 기업가로서 그는 엘베증기선회사(1848-1851), 트란운제증기선회사(862)를 설립하였다. 이어 1850년에는 프라하에 기계공작창인 Ruston&Evans(러스턴-에반스)회사에 대하여 들어본 일은 있지만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했다고 한다.

- Josef-Türk-Gasse(요셉 튀르크 가쎄): 플로리드스도르프 의회의원을 지냈으며 플로리드스도르프 사회사업기관을 책임 맡았던 요셉 튀르크(1856-1923)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플로리드스도르프에서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시작하였다.

- Josef-Wakovsky-Gasse(요셉 봐코브스키 가쎄): 대중음악 작곡가로서 특히 슈람멜음악가였던 요셉 봐코브스크(일명 페피: 1900-1959)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대표적인 비엔나 노래는 Der narrische Kastanienbaum이다.

- Josef-Zapf-Gasse(요셉 차프 가쎄): 동판제작가인 요셉 차프(1847-190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867년 Lied der Arbeit(노동가)의 가사를 썼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노래였다. 멜로디는 요셉 프란츠 게오르그 쇼이(Josef Franz Georg Scheu)의 작품이다. 10구 화보리텐에 있는 Scheugasse(쇼이가쎄)는 작곡가 쇼이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 Julius-Ficker-Strasse(율리우스 휘커 슈트라쎄): 역사학자인 율리우스 폰 휘커(1826-1902)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1852년부터 인스부르크대학교 교수였다. 그는 특히 오스트리아의 근대사를 외교적인 측면에서 연구하였다.

 

율리우스 폰 휘커 교수

 

- Julius-Schlegel-Gasse(율리우스 슐레겔 가쎄): 의회의원을 지낸 종이상인 율리우스 슐레겔(1895-1958)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2차대전 당시 장교로서 이탈리아전선에 배치되었던 그는 몬테카씨노(Montecassino) 수도원이 미국의 폭격을 받을 때에 수도원에 있던 귀중한 문헌 7만여점과 예술품 1천2백여 점들을 무려 100여대의 차에 싣고 피난하여 보존하였다. 율리우스 슐레겔이 수도원의 청사진 등을 완전하게 보관하였기 때문에 전후 수도원 복구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될수 있었다.

- Justgasse(유스트가쎄): 그로쓰예들러스도르프 교구신부인 페르디난트 유스트(1843-1912)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탈리아의 몬테카씨노 수도원. 2차 대전중 파괴되었으나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일군 장교 율리우스 슐레겐의 기지로 설계도면등 귀중한 문서를 모두 안전하게 보관되어 전후 복구에 어려움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