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1구 플로리드스도르프

[참고자료]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

정준극 2010. 9. 19. 08:54

[참고자료]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

Österreichsche Museum für Volkskunde

(The Austrian Museum of Flik Life and Folk Art)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는 쇤보른 궁. 8구 요셉슈타트 라우돈가쎄에 있다. 시청(라트하우스) 뒤편으로 한참 가면 나온다.  

 

비엔나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비엔나를 조금이라도 더 잘 알기 위해 박물관을 찾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박물관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미술사박물관(국립미술관), 자연사박물관, 벨베데레궁전의 20세기 오스트리아미술관, 리히텐슈타인미술관, 레오폴드박물관 등등...하지만 정작 비엔나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칼스플라츠에 있는 비엔나박물관(Museum der Stadt Wien: Historisches Museum der Stadt Wien)과 라우돈가쎄에 있는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Österreichsche Museum für Volkskunde)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민속과 비엔나시의 역사를 살펴볼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은 필견의 장소이다.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은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에 있기 때문에 지나칠수 있지만 길가에 있기 때문에 전차를 타고 쉽게 찾아갈수 있다.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으로 가려면 전차 5번이나 33번을 타고 가다가 Laudongasse(라우돈가쎄)에서 내리면 되고 만일 전차 43번이나 44번을 타고 간다면 Lange Gasse(랑게 가쎄)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수 있다. 버스는 13A로서 역시 라우돈가쎄에서 내리면 된다. 2010년 9월 현재 입장료는 어른 5유로이며 가족 티켓은 9유로이다.

  

장식장. 기독교 신앙의 기본인 3위일체(성부, 성자, 성신)를 표현하고 있으며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의 옹위를 받고 있는 성모와 아기예수의 모습도 빼놓을수 없는 주제이다.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에는 목각민속작품이 많이 있다. 17-19세기 오스트리아의 목각예술을 일견하려면 다른 곳에 갈 필요가 거의 없다.  

기계악기의 일부, 플르트와 팬파이프를 연주하고 있는 티롤지방의 사람들  

니더외스터라이히 지방의 성화. 집집마다 이런 성화가 있다고 보면 된다.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속박물관으로 8구 요셉슈타트(Josefstadt)의 라우돈가쎄(Laudongasse) 15-19번지에 있는 쇤보른궁(Schlossel Schönborn) 건물에 들어있다.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은 1895년, 당시 자연사박물관의 선사-민족학 부서에서 근무하던 미하엘 하벌란트(Michael Haberlandt)와 빌헬름 하인(Wilhelm Hein)이 공동으로 주도하여 설립하였다. 19구 플로리드스도르프의 하인가쎄(Heingasse)는 빌헬름 하인을 기념하기 위한 길 이름이다. 이들은 이미 1870년에 민속학협회를 설립하여 선사시대 및 중세의 오스트리아 생활상에 대한 연구와 자료수집 활동을 수행하였다. 오스트리아민속박물관의 초대 관장은 하벌란트가 맡았으며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아르투르 하벌란트(Arthur Haberland) 시기에 박물관은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예를 들어 박물관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1894년에는 민속협회(Verein für Volkskunde)가 설립된 것이다.

 

봘트뮐러의 작품. 티롤지방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민속박물관은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의 영토 내에서 사용되었던 민속물품들, 그리고 유럽 각지에 있는 오스트리아 민속관련 개인소장품들을 수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오이게니 골드슈테른(Eugenie Goldsetern)의 개인소장품을 기증받은 것이다. 민속박물관은 처음에 자연사박물관의 한 코너를 사용하였으나 점차 규모가 커지자 독립된 건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마침 라우돈가쎄에 있는 쇤보른궁을 사용할수 있었다. 그리하여 1917년, 세계1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때에 쇤보른궁으로 이전하여 재개관하였다. 1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를 지탱해 오던 바벤버그에 이어 합스부르크 왕조가 몰락을 하고 더구나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가 나치와 합병을 하자 민속박물관의 방향도 어쩔수 없이 오스트리아의 민속만을 고집할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하나의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일과 관련한 민속 전시품은 내용에 있어서 보잘것 없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헝가리의 성슈테판 왕관을 들고 있다. 민속적인 취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자 민속박물관도 본연의 역할에 충실토록 방향을 잡게 되었다. 더구나 1972년 부르겐란트의 키트제(Kittsee)에 민족학박물관이 설치되어 동유럽과 동남유럽의 민속예술품들이 전시되자 비엔나의 민속박물관도 이에 자극을 받게 되었다. 당시 관장인 클라우스 바이틀(Klaus Beithl)은 새로운 개념으로서 박물관의 전시방향을 잡았다. 바이틀 관장은 과거의 일상적인 전시품을 현대의 일상생활과 연계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른바 Land und Leute(지역과 주민들)프로그램이었다. 대단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전시품은 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기의 수집품이었다. 특히 종교가 어떻게 일상생활에 연관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전시품들이 많다. 바이틀 관장은 오스트리아 민속예술품의 전시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직접 민속의 세계에 참여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현재의 관장은 2006년에 취임한 마르고트 쉰들러(Margot Schindler)이다.

 

니더외스터라이히 부르겐란트의 노이지들 암 제(Neusiedl am See)에 있는 18세기 바로크 궁전인 숄로쓰 키트제의 모습. 에스터하지 가문의 파울 에스터하지가 완성했다. 여기에 민속박물관이 있으며 연주회장이 있다. 키트제 섬머 페스티벌은 주로 오페레타와 콘서트를 연주하는 유명한 음악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