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1구 플로리드스도르프

[참고자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정준극 2010. 9. 23. 10:35

[참고자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Stift Klosterneuburg - Klosterneuburg Priory

 

웅장한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과 교회

 

비엔나를 방문하는 중에 한나절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비엔나 시내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도나우 강변의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가 보라고 적극 권면하고 싶다. 비엔나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비엔나 숲 지역의 레오폴드버그 산자락에 있다. 사람들은 보통 하루정도 여유시간이 있고 교외로 나가보고 싶으면 십중팔구 바덴이나 멜크를 가게 된다. 물론 바덴이나 멜크도 필견의 명소이다. 하지만 조금 멀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비엔나에서 대중교통수단으로 쉽게 갈수 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비엔나 북부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시에 속하여 있다. 자가용을 타고 가면 쉽게 갈수 있지만 조금 전에도 언급하였듯이 비엔나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욱 실속이 있다. 시내에서는 우선 U4를 타고 종점인 하일리겐슈타트로 가서 그곳에서 클로스터노이부르크로 가는 급행열차(S40) 또는 버스 239번을 타고 가면 얼마후에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시내에 도착한다. S40 급행열차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버스는 매 10-15분마다 떠난다. 버스를 타고 주변 경개를 감상하면서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심심치 않은 일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시내에서 내려 천천히 시내 구경도 하면서 수도원을 방문하면 된다. 버스 241번은 봐이들링(Weidling) 기차역에서 환승하면 된다. 하일리겐슈타트로부터 13km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시내 유원지에서 바라본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의 돔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다. 일찍이 1108년의 문서에 등장하지만 기록상으로는 1136년에 봉헌되었다. 비엔나 서쪽으로 두시간 정도 의 거리에 있는 멜크 수도원도 대단하지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이야말로 역사적으로나 규모면에서 대단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세에 가톨릭 교회의 위세가 얼마나 드높았으며 또한 수도원이라는 곳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에 입장하려면 카이저 아파트멘트라고 불리는 건물을 통해서 들어간다. 카이저 아파트멘트는 글자 그대로 황제의 아파트이다. 레오폴드3세와 그의 아들 레오폴드4세가 거처했던 건물이다. 명칭이야 카이저(황제)라고 했지만 실상 이분들의 직함은 변경백(Markgraf)였다. 아무튼 황제께서 거처하시던 곳이라고 그런지 이 건물의 돔에는 구리로 만들어 번쩍이는 신성로마제국의 커다란 왕관이 놓여있어서 우선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에곤 쉴레가 그린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교회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여러 제단 중에서도 베드룬 제단(Vedruneraltar)이다. 일찍이 1181년에 베드룬의 니콜라스라는 사람이 제작한 병풍 스타일의 제단화가 있어서 베드룬제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금한 동판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두 45장 그려넣은 것이다. 비잔틴 스타일의 작품이다. 비슷한 작품으로는 독일의 쾰른 대성당에 있는 동방박사 세사람을 모신 채플에 있는 그림이다. 원래는 나무 파넬에 그린 것인데 1330년경에 따로 따로 되어 있는 그림을 병풍처럼 조립하였다. 병풍은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의 파트는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다윗과 바벨론 포로시대의 이야기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주제로 삼고 있다. 예수의 생애는 병풍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교회에는 베르둔 제단과 함께 알브레헤트 제단, 레오폴드 제단이 있어서 각각 역사의 향취와 함께  감회를 준다.

  

유명한 베르둔의 제단 그림. 가운데 파트가 넓어서 여러 주제가 들어 있다. 가운데 병풍 위에 있는 조각은 3위1체를

표현한 것이다.

 

바벤버그 왕조의 가계도(Babenberger Stammbaum)를 세밀하게 그린 타페스트리와 같은 작품도 마땅히 보아야 할 작품이다. 말하자면 바벤버그 가문의 족보이다. 양탄자처럼 일일히 실로 짜넣은 작품이다. 잘 아는대로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1108-1114년 오스트리아의 군주(당시는 변경백)인 바벤버그의 레오폴드3세(1073-1136)가 건설했다. 레오폴드3세는 1095년에 군주의 자리에 올라 113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1년동안 오스트리아를 통치했다. 레오폴드3세는 수도원을 짓는 등 신앙심이 돈독하여 교황청에 의해 성자로 시성되었으며 오스트리아, 특히 니더외스터라이히(Lower Austria)의 수호성인으로 받들고 있는 인물이다. 성레오폴드의 축일은 11월 15일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짓는데에는 레오폴드3세가 큰 힘이 되었지만 실상 그의 두번째 부인인 아네스(Agnes)왕비의 공로도 잊을수 없다. 어찌나 신앙심이 독실하였는지 자녀들에게 엄할 정도로 신앙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물론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완성하도록 물심양면의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레오폴드3세와 아네스 왕비 기념상. 모두 수도원을 받들고 봉헌하는 모습이다. 

 

레오폴드3세는 멜크 수도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군주(변경백)인 레오폴드2세이며 어머니는 포름바흐-라텔른버그(Formbach-Ratelnberg)공국의 이다(Ida) 공주였다. 레오폴드는 30세쯤해서 결혼하였지만 상처하고 독일 황제 헨리(하인리히)5세의 여동생인 아네스(Agnes)와 재혼하였다. 아네스는 슈봐비아(Swabia)공국의 프레데릭1세 대공의 미망인이었다. 레오폴드가 독일 황제 가문인 잘리안(Salian)왕조의 아네스와 결혼으로 연결된 것은 결과적으로 바벤버그의 위상을 크게 높여준 것이었다.그로부터 독일 황제 헨리5세는 레오폴드에게 오스트리아를 거의 독립적으로 통치하도록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오스트리아가 제대로의 나라로서 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은 레오폴드3세의 시절부터라고 할수 있다. 한편, 아네스도 역시 재혼이었는데 첫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 콘라트가 나중에 독일 황제가 되었으므로 이 역시 바벤버그의 위상제고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의 거의 독립적인 통치를 인정받은 레오폴드3세는 자신을 Princepts Terrae라고 불렀다. 오스트리아 영토의 독립을 뜻하는 표현이었다. 레오폴드3세는 1125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후보로 올랐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정중히 사양하였다. 이 역시 명예스러운 일로서 바벤버그의 위상을 높여주는 처사였다.

 

카이저 아파르트멘트. 돔 위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이 올려져 있다.

 

신앙심이 남달리 깊었던 레오폴드3세는 오스트리아의 여러 곳에 수도원을 건설했다. 물론 가장 위대한 건설은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성모 마리아가 레오폴드에게 나타나 새로 지을 수도원의 장소로 인도하였는데 그곳에는 아그네스 왕비가 그 전해에 잃어버려 찾지 못하고 있던 베일(수건)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그 장소가 오늘날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이 서 있는 곳이다. 레오폴드는 비엔나의 궁전(암 호프)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에 와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결과적으로 수도원에 연결하여 레오폴드의 숙소가 마련되었으니 이것이 웅장한 카이저 아파트이다. 노이부르크라는 말은 레오폴드의 새로운 궁전이라는 뜻이다. 레오폴드3세는 하일리겐크로이츠(Heiligenkreuz), 클라인마리아첼(Kleinmariazell), 자이텐슈테텐(Seitenstetten)도 건설하였다. 이 모든 수도원과 교회는 레오폴드3세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레오폴드3세는 세상을 떠난후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유해중 머리는 자수로 만든 아름다운 성골함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마 부분은 사람들이 볼수 있게 열어 놓았다. 레오폴드3세의 머리는 대공의 관을 쓰고 있다. 그때까지만해도 오스트리아의 군주는 변경백(Magrave)였고 대공(Archduke)은 아니었지만 그를 예우하여 대공의 관(冠)을 마련한 것이다. 레오폴드3세가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된 것은 레오폴드3세가 세상을 떠난지 거의 6백년 후인 1663년에 레오폴드1세 때였다. 그 전까지는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이 순교자 성콜로만(St Koloman)이었다.

 

고틱 첨탑이 있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교회의 모습

 

이야기가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으로부터 레오폴드3세로 빗나갔음을 죄송하게 생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폴드3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면, 레오폴드3세는 두번째 부인인 아네스와의 사이에 여러 자녀를 두었으니 큰 아들은 부왕에 이어 오스트리아 군주의 자리에 오른 레오폴드4세이며 둘째 아들이 나중에 오스트리아의 군주가 된 유명한 야소미어고트 하인리히2세이다. 잘 아는대로 야소미어고트 하인리히2세는 비엔나의 신앙적인 부흥을 위해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던 아일랜드 수도사들을 초빙하여 쇼텐슈티프트(아일랜드 수도원)와 교회를 세웠다. 오늘날 프라이융에 있는 건물들이다. 레오폴드3세의 또 다른 아들인 콘라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가 되었고 레오폴드3세의 막내아들인 오토(Otto von Freising) 역시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여 1126년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되었다. 오토는 1133년,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아우구스틴 종단 소속으로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레오폴드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스페인의 에스코리알 수도원에 버금하는 곳을 만들고자 했다.  

스페인의 에스코리알 수도원(El Real Monasterio de El Escorial). 스페인도 말할수 없이 대단하다.  

 

장엄한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건물은 레오폴드3세 당시에는 초라한 형편이었지만 그후 1730년과 1834년에 대대적으로 증축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도나우 강변의 언덕에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당장 알아볼수 있다. 네오 고틱 스타일의 두개의 교회 첨탑은 1882년에 완성된 것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은 처음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하였으나 나중에 점차 고틱 스타일의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여기에 바로크 스타일의 건물들이 추가되었다. 옛 건물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레오폴드3세의 묘지는 1318년에 완성된 옛 건물의 레오폴드 채플에 안치되어 있다. 야소미어고트 하인리히2세를 비롯한 훗날의 바벤버그 군주들은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스페인의 유명한 에스코리알(Escorial) 수도원에 버금하는 건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뜻대로 실현하지는 못했다. 다만, 요셉 코른호이젤등 건축가들이 신고전주의 양식을 가미하여 일부 확장하였을 뿐이다. 

 

오스트리아 대공의 모자. '이까짓 모자 하나가?'가 아니라 모자는 그 사람의 신분을 가르키는 것이어서 중요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에는 오스트리아 대공의 모자등을 포함한 왕가의 보물실, 성레오폴드의 유물등을 보관한 성물실, 3만권 이상의 장서를 자랑하는 도서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포도주제조 공장과 저장고(켈러)가 있다. 와인 저장고는 마치 하이델베르크 고성의 지하 터널 와인 저장고와 마찬가지로 규모가 엄청나다. 이곳을 방문하여 포도주 한잔씩을 시음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는 유럽에서도 유일한 포도재배연구소가 있다. 포도뿐만 아니라 과실주를 만드는 과실의 재배도 연구하며 재배뿐만 아니라 포도주 제조, 보관 등에 대한 연구도 하는 와인전문연구소이다. 영어로는 Federal Institute of Viticulture and Pomology라고 한다. 이곳에서 오스트리아 와인의 대부인 프릿츠 츠봐이겔트(Fritz Zweigelt)에 의해 츠봐이겔트, 블라우부르거(Blauburge)와 같은 포도 품종이 개발되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시내에서 바라본 수도원 교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을 관람한 차제에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시내를 둘러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 마을은 그 옛날 로마시대로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로마시대에는 시티움(Citium) 성이 이곳에 있어서 비엔나 방어 요새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시내에도 로마시대의 흔적을 찾아볼수 있다. 시내에서 쇼핑지역은 두 곳을 나뉘어져 있다. 시청이 있는 라트하우스플라츠(Rathausplatz)와 언덕받이에 있는 니더마르크트(Niedermarkt)이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인근에는 2006년에 설립된 세계적인 오스트리아과학기술연구소(IST Austria)가 있다. 기초과학연구로 유명하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서쪽의 한적한 숲속에 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는 도자기로도 유명하다. 도자기 공장에 가서 체험시간을 가질수도 있다. 주로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해마다 열리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음악제(Euro Music Festival and Academy)도 유럽에서는 알아 모시는 것이다. 또한 에쓸박물관(미술관)이 있어서 현대작품들을 감상할수 있다. 자전거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엔나에서부터 파싸우까지의 루트를 경험하지 않을수 없다. 파싸우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부근이므로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서 파싸우까지 버스가 연락부절로 운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자전거로 파싸우까지 와서 자전거를 맡겨 놓고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 와서 엔조이하는 것도 그럴듯하다.

 

2008년에 오스트리아정부가 발행한 10유로 기념주화 

 

오스트리아 정부는 2008년에 10유로짜리 클로스터노이부르크 기념주화를 발행했다. 앞면에는 알프스 자락의 레오폴드버그에서 바라본 수도원과 교회의 모습을 담았다. 로마네스크-고딕 교회와 구리로 만든 돔에 얹어 있는 신성로마제국 왕관의 모습도 볼수 있다. 뒷면에는 고틱 첨탑과 레오폴드3세의 스테인드 글래스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주화는 2010년 유럽에서 올해의 최우수 예술적 주화로 선정되었다. 요셉 하이든과 동생 미하엘 하이든은 비엔나의 성슈테판성당의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간혹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교회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 미하엘 하이든은 훗날(1805년) 레오폴드3세를 위한 미사곡을 작곡했다. Missa sub titulo Santi Leopldi 이다. 안톤 브루크너도 이 교회에 와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교회에는 브루크너의 연주를 기념하는 명판이 붙어 있다.

 

바벤버그 왕조의 가계도를 자수로 놓은 타페스트리 

바벤버그 왕조의 가계도 클로즈 업. 레오폴드3세이다. 그가 지은 수도원과 교회들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런데 양 옆에서 손을 붙잡고 있는 남녀는 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