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1구 플로리드스도르프

20. Rabnitzweg - Ruthnergasse

정준극 2010. 9. 23. 14:41

20. Rabnitzweg(라브니츠베그)로부터 Ruthnergasse(루트너가쎄)까지

 

- Rabnitzweg(라브니츠베그): 라비니츠는 부르겐란트에 있는 강 이름이다.

 

라비니츠 강

 

- Ragwurzgasse(라그부르츠가쎄): 난초의 종류인 라그부르츠를 말한다.

 

라그부르츠

 

- Rappgasse(라프가쎄): 예들레제 의회의원을 지낸 오스카 라프(1840-1897)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의사였다.

- Rasmuussengasse(라스무쎈가쎄): 덴마크의 극지방 탐헌가 겸 인종학자인 크누드 라스무쎈(1879-1939: 그린랜드 출신)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912-33년의 20여년간 무려 일곱 번이나 그린랜드 북부와 미국, 캐나다의 북극권 지대를 탐험하였다. 그의 탐험목적은 지리적 발견에도 있었지만 아이누족의 언어, 문화, 역사, 전설 등을 발굴하고 보존하는데 있었다.

 

아이누족 문화 보존을 위해 노력한 탐험가 그누드 라스무센

 

- Rathmayergasse(라트마이어가쎄): 초등학교장을 지낸 프란츠 라트마이어(1891-1965)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카그란 지역의 사회민주주의 운동본부 간부로서 비엔나 북부지역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추진하였으며 전쟁 후에는 플로리드스도르프 사회민주주의 교사협의회장을 맡았었다.

- Ratzenhofergasse(라첸호퍼가쎄): 사회학자인 구스타브 라첸호퍼(1842-1904)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는 정치사회학의 기초를 놓은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 Rautenkranzgasse(라우텐크란츠가쎄): 플로리드스도르프 교구사제인 로만 라우텐크란츠(1811-1878)를 기억하여 지은 이름이다.

- Rechte Nordbahngasse(레헤테 노르드반가쎄): 노르드반(북부선 철도)과 나란히 달리는 길이다.

- Regnerweg(레그너베그): 플로리드스도르프 초등학교장을 지낸 요셉 레드너(1914-1973)라는 사람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러므로 레그너베그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 Rehgasse(레가쎄): Reh(레)는 노루를 말한다.

- Reisgasse(라이스가쎄): 독일의 물리학자이며 발명가인 필립 라이스(1834-1874)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오늘날처럼 송화기와 수화기가 떨어져 있는 전화기를 처음 발명했다. 그가 발명하여 만든 기계의 이름이 텔레폰(Telephon)이었다. 이 단어가 나중에 국제적인 용어가 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필립 라이스 기념탑과 1961년 라이스의 전화기 발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독일의 우표

 

- Richard-Neutra-Gasse(리하르트 노이트라 가쎄): 건축가인 리하르트 노이트라(1892-1970)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923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호텔, 병원, 박물관, 도서관 등을 건설했다. 비엔나에 있을 때에는 Werkbundsiedlung(조합주택단지)을 건설했다.

 

리하르트 노이트라가 설계한 주택조합단지의 아파트

 

- Rieglgasse(리글가쎄): 예술사학자인 알로이스 리글(1858-1905)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학파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전문가였다. 비엔나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 Rihosekgasse(리호세크가쎄): 기관차 공학자인 요한 리호세크(1869-1956)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1893년 플로리드스도르프 기관차공작창에 들어와 일하다가 몇 년 후에 제국기관차-객차부서에서 근무하였다. 그는 여러 타입의 기관차를 제작하였는데 BBÖ 번호가 들어간 기관차는 그가 제작한 것이다.

- Ringelseegasse(링겔제가쎄): 12세기부터 주민들이 살기 시작한 링겔제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링겔제는 현재의 플로리드스도르프 일대로서 구체적으로는 도나우슈타트에 해당한다. 링겔제는 16세기 초, 홍수 등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도나우의 홍수와 수리조절 사업으로 사라진 링겔제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도나우강 연안

 

- Rittingergasse(리팅거가쎄): 산악인인 페터 폰 리팅거(1811-187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광산탐사 전문가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소금광산을 개발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광산에서 사용되는 도르레와 같은 설비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초창기 광산에서 채광한 원광을 지상으로 운반하는 시설. 이를 독일어로 포흐베르크(Pochwerk)라고 한다.

 

- Robert-Dienst-Gasse(로베르트 딘스트 가쎄): 축구선수인 로베르트 딘스트(1928-2000)를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여러번에 걸쳐 오스트리아 득점왕상을 받았다. 1954년 스위스의 월드컵에 출전했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로고

 

여담이지만, 우리나라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대회가 1954년의 스위스대회였다. 실은 아프리카-아시아지역을 통틀어서 1장의 티켓이 배정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나라들은 돈도 없는데 무슨 월드컵이냐고 하면서 스스로 포기했고 아시아에서는 인도, 베트남, 대만, 한국, 일본이 출전할 자격이 있었는데 대회본부에서 가만히 보니까 인도와 베트남은 동네축구에도 지는 실력이므로 참가하면 곤란하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역시 스스로 포기했고 이어 대만도 도저히 역부족이어서 포기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이 어웨이, 홈 경기를 치루어 한국이 간신히 이겨서 출전권을 따내게 되었다. 헝가리, 터키, 독일과 같은 조에 속하게 되었다. 한국팀은 여비가 없어서 스위스에 가지 못할뻔 했다. 간신히 미군 군용기를 얻어타고 갔지만 그나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헝가리와의 첫 경기를 놓치고 말았다. 대회본부는 한국의 사정을 불쌍히 여겨서 헝가리와의 대전을 다시 주선해 주었다. 결과는 9대 빵의 참패였다.  이어 터키와의 경기에서는 다행히 7대 빵으로 졌다. 한국은 최강자 독일과의 경기를 남겨 놓고 있었다. 이번엔 몇대 빵일까? 한국팀은 불안한 심정이었다. 한국팀은 독일과의 경기를 위해서 스위스에 며칠 더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한국팀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관비도 내지 못할 정도로 돈이 없었다. 그래서 독일과의 경기를 치루지 않고 그냥 한국으로 줄행랑을 놓아 돌아왔다. 월드컵 역사상 별 일도 다 있었다. 그것이 1954년도 스위스 월드컵이었다. 그런데 실은 출전배당금이라는 것이 있었다. 한국은 8천4백불을 받게 되었다. 조직위원회가 한국팀에게 배당금을 주려고 호텔을 찾아갔으나 한국팀은 그것도 모르고 여관비를 낼 돈이 없어서 독일과의 경기도 치루지 않은채 이미 줄행랑을 놓은 후였다. ㅋㅋ. 그러면 그 돈은 어떻게 되었나? 조직위원회가 수고스럽게도 한국은행으로 송금해 주었다. 한국은행은 축구팀의 외상값 처리로 썼다.

 

 한국팀의 월드컵 첫 출전. 1954년 스위스대회, 헝가리와의 대결(Credit: 대한축구협회)

 

- Robert-Lach-Gasse(로베르트 라흐 가쎄): 음악학자, 시인, 작곡가인 로베르트 라흐(1874-1958)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비엔나대학교 교수였다. 음악사, 음악이론, 음악심리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 Roda-Roda-Gasse(로다 로다 가쎄): 작가인 알렉산더 로다 로다(Sandor Friedrich 깬둘딩와 동일인: 1872-1945)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도나우왕국에 대한 풍자적인 저널리스트였다.

- Roggegasse(로게가쎄): 오스트리아 최초의 신용조합을 설립한 기업가 하인리히 알브레헤트 리터 폰 로게(1811-1872)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신용조합 설립을 위해 2만5천 굴덴을 희사하였다. 오늘날 Erste Bank(EB)의 전신이다.

 

그라벤 끝머리에 있는 에어스테 은행 건물. 골목을 돌아서면 보그너가쎄이다.

 

- Röllgasse(뢸가쎄): 수의사인 모리츠 프리드리히 뢸(1818-1907)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군마연구소 동물 병리학 교수였다. 오스트리아 수의과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 Roman-Felleis-Gasse(로만 펠라이스 가쎄): 정치가인 로만 펠라이스(1903-1944)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사회주의노동청년연맹으로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하여 나중에 수상이 된 브루노 크라이스키와 함께 혁명적사회주의청년(RSJ)연맹을 이끌었다. 그는 1939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다가 1944년 미군의 폭격으로 불행하게 사망했다.

- Romaplatz(로마플라츠): 로마(집시)들과 관련하여 붙인 이름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치고이너라고 불리는 집시들은 사회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이들은 본거지인 루마니아 지방을 떠나서 도나우 강변지대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알테 도나우 강변에 있는 슈트란드가스트하우스 비르너(Strandgasthaus Birner)는 집시의 한 부족인 로바라(Lovara)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갖는 장소로 유명하다. 안 데어 오베렌 알텐 도나우(An der Oberen Alten Donau) 47번지이다.

 

슈트란드가스트하우스 비르너의 한때 

 

- Rosannagasse(로잔나가쎄): 티롤의 로잔나 강을 말한다.

- Rosenzeile(로젠차일레): 이 지역에 대규모 장미단지가 있었다.

- Rothengasse(로텐가쎄): 경작지의 이름이다.

- Rubingasse(루빈가쎄): 특별한 이유는 없이 보석인 루비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 Rodulf-Raschke-Gasse(루돌프 라슈케 가쎄): 1945년 초, 히틀러의 비엔나 파괴령에 항거하여 소련군의 무혈입성을 계획한 ‘라데츠키작전’의 주도적 인물중 한 사람인 루돌프 라슈케(1923-1945)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라슈케는 ‘라데츠키작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치 친위대에 체포되어 플로리드스도르프 슈피츠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펜칭의 카이저 프란츠 요셉 병영은 라데츠키작전으로 희생된 3인의 오스트리아 출신 장교들을 기념하여 비더만-후트-라슈케 병영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 블로그의 [참고자료] 라데츠키 작전 편을 보시라.

 

라데츠키 작전의 주역들(초콜 소령, 비더만 소령, 후트 대위, 라슈케 중위) - 영화에서

 

- Rudolf-Schön-Gasse(루돌프 쇤 가쎄): 국가장학관인 루돌프 쇤(1908-1979)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공립학교 교사의 수준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Rudolf-Schön-Weg(루돌프 쇤 베그)도 그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 Rudolf-Zöhrer-Weg(루돌프 최러 베그): 축구선수인 루돌프 최러(1911-2000)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전설적인 분더팀(Wunderteam)의 득점왕이었다.

- Ruppweg(루프베그): 사회사업가인 칼라 루프(Karla Rupp: 1882-1953)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 Russbergstrasse(루쓰버그슈트라쎄): 경작지의 이름이다.

- Ruth-Brinkmann-Gasse(루트 브링크만 가쎄): 미국의 여배우인 루스 브링크만(1934-1997)을 기념하는 거리이다. 그는 1963년부터 비엔나의 영어극장장을 지냈다. 비엔나영어극장(Vienna's English Theater)는 8구 요셉슈타트의 요셉스가쎄 12번지에 있다. U2는 라트하우스에서, U3는 폭스테아터에서 내리면 된다.

 

비엔나영어극장장인 여배우 루스 브링크만

 

- Ruthnergasse(루트너가쎄): 부자교사인 요한 게오르그 루트너(아버지: 1769-1831)와 아들 요한 게오르그 루트너(1816-1853)를 기념하는 거리이다.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위해 함께 헌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