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거리들/21구 플로리드스도르프

[참고자료] 신티가 뭐길래!

정준극 2010. 9. 27. 21:58

[참고자료]

신티(Sinti)가 뭐길래!

신티는 독일,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집시들

 

비엔나의 21구 플로리드스도르프에는 신티베그(Sintiweg)라는 거리가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집시를 어찌된 연유인지 신티(Sinti)라고 부른다. 신티베그는 비엔나에 살고 있는 집시들을 기억하여 붙인 이름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집시를 치고이너(Zigeuner)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라사테의 유명한 바이올린 작품인 치고이너봐이젠(Zigeunerweisen)은 집시 멜로디라는 뜻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일반적으로 집시를 로마(Roma) 또는 그냥 롬(Rom)라고 부른다. 그래서 혹시 무슨 자료를 보는데 롬(Rom)이나 로마(Roma), 또는 로마니(Romani)라는 말이 나오면 이건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Roma: Rome)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집시를 말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집시들의 본고장이 루마니아인줄 알고 루마니아(루마니아 말로는 로미나)에서 가출했기 때문에 로마라고 부르는줄 알고 있지만 그것도 사실은 아니다. 루마니아라는 명칭은 로마제국과 관련이 있으면 있지 집시와는 관련이 없다. 국제집시연맹(International Roma Union)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단체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집시를 말하는 로마라는 단어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와 자꾸 혼란을 주므로 차제에 로마, 롬, 로마니 라고 쓸 때에는 앞에다가 R을 하나 더 붙이기로 했다. 그래서 RROMA, RROM, RROMANY 가 되도록 했다. 이것이 집시에 대한 사전적 공식 표현이다. 아무튼 집시에 대하여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므로 본 블로그에서는 개략적인 사항만을 설명코자 한다. 원래 롬(또는 로마, 로마니)라는 말의 뜻은 집시들 언어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집시 댄스 그룹

 

집시들이 살던 집을 떠나 긴 여정 끝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것은 중세였다. 이들은 다시 두 갈래로 나위어져 유럽 본토로 진출하였는데 하나는 Eftavagaria(에프타바가리아), 즉 '일곱 캬라반'이라고 불렸고 다른 하나는 솔직하게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의미로 Estraxarja(에스트라하르야), 즉 '오스트리아로부터'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일곱 캬라반'은 주로 프랑스 쪽으로 발길을 돌렸고 '오스트리아로부터'는 이탈리아, 동구 쪽으로 퍼졌다. 주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공화국, 슬로바키아로 흩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현재 주로 피에드몬트(Piedmont) 지역에 거주하고 있지만 로마와 나폴리 등 남쪽에도 많이 살고 있어서 심지어는 자동차를 잠시 주차해 놓은 사람들은 집시들이 버젓이 바퀴를 빼가지 않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유럽의 로마들인 신티가 셀주크 터키에 있던 이슬람들로서 유럽에 와서 기독교로 개종한 족속들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들이 셀주크 터키를 떠나서 유럽에 온 것은 사회적 신분을 얻기 위해서였을 뿐만 아니라 노예신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중세에 이리저리 방랑하는 집시를 표현한 그림

 

집시에 대한 호칭은 지역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어서 흥미롭다. 그보다도 우선 유럽에서 집시는 어느나라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가? 역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와 같은 이른바 라틴 나라에 많이 살고 있다. 독일에도 적지 아니 살고 있다. 동구에는 넓게 분포되어 있다. 헝가리, 옛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 알바니아, 불가리아, 옛 유고슬라비아 등등. 미국을 비롯한 중남미에도 흘러 들어가서 살고 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집시가 살지 않고 있는 나라는 덴마크 영토의 그린랜드, 그리고 한국과 일본 뿐이라고 한다. 희한하다. 그러면 집시는 무엇이고 로마는 무엇이며 또 신티는 무엇이란 말인가? 엄밀히 말하면 집시의 한 지파가 로마이며 이들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독일 등 중부유럽에 살기 시작하자 유럽사랍을은 이들을 신티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집시이건 로마이건 신티이건 모두 같은 족속들이다. 신티라는 말은 파키스탄 서남부, 주로 편자브(Punjab)주에 있는 신디(Sindhi)라는 지방의 이름에서 비롯하였다고 한다. 유럽사람들은 처음에 집시들이 어디로부터인지 모르지만 보따리를 들고 나타나자 거무틱틱한 피부에 눈망울은 크고 옷은 헐렁하게 입은 이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누구인지를 잘 몰라서 '실례지만 누구십니까'라고 묻자 이들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줄 알고 '신디요 신디'라고 대답하였으며 그로부터 집시들을 신티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문도 모른채 폴란드의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신티(집시)들 

 

상당수 학자들도 집시들의 본적지가 인도 또는 파키스탄이라는데 대하여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인도에는 오래전부터 케이스트라고 하여 4성계급이 존재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천한 계급인 수드라가 바로 집시의 조상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9-10세기 경, 천민으로서 먹고 살기도 힘들고 너무나 천대만 받고 지내니까 기왕에 죽더라도 한번  세상 구경이나 해보고 죽자는 생각에서 보따리를 싸들고 신디지방을 떠나 실크 로드를 따라 흑해 연안까지 도달하였고 이후 몇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유럽으로 진입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집시들의 본고장은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곳, 즉 네팔 쪽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네팔 사람들이 어쩐지 집시들 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즈베키스탄 사라르칸트의 집시 어린이들

 

집시를 간혹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주로 프랑스와 체코에서 그러하다. 보헤미아는 지금의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를 말한다. 예전에 집시들이 아시아의 인도 쯤으로 생각되는 곳으로부터 유럽으로 이동하여 들어오기 시작하자 대개의 나라들은 거렁뱅이 및 난잡성 집시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금지하였지만 보헤미아 왕은 관대하게도 입국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아마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같은 에피소드로 인하여 집시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파리에서 보헤미안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로돌포, 미미, 뮤제타, 마르첼로 등이 진짜 집시족이라는 것은 아니며 프랑스 사람들인데 집시처럼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있는 신티 희생 기념 명판

 

집시를 프랑스에서는 마누셰(Manousches)라고 부르지만 지탄(Git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알랭 들롱이 나오는 영화 르 지탄(Le Gitan)은 바로 주인공인 집시 남자의 운명적인 생활을 그린 것이다. 프랑스에는 지탄느(Gitanes)라는 담배가 있다. 영화를 보면 집시인 알랭 들롱이 즐겨 피는 담배로 되어 있다. 담배 껍데기에는 집시여인이 탬버린을 들고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스페인에서는 집시를 칼레라고도 부르지만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지타노(Gitano)라고도 부른다. 헝가리에서는 차기니이며 북구에서는 어쩐 일인지 타타르라고 부르거나 사라센인이라고 부른다. 타타르건 사라센이건 모두 아시아에서 온 무지막지하고 위생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말한다. 아무튼 동방에서 온 성가시고 께림직한 인간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프랑스의 지탄느 담배. 집시여인이 탬버린을 들고 춤을 추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대부분 유럽에서는 집시들을 롬이나 신티라고 부르지만 시리아와 일부 동남아에서는 돔(Dom)이라고 부르며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동부 아나톨리아에서는 롬(Lom)이라고 부른다. 돔은 돔바(Domba)라고도 하는데 뜻은 잘 모르겠고 인도, 터키, 이집트, 이란, 이락, 리비아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집시들을 말한다. 한편, 이집트에 살고 있는 집시들은 특별히 이집시언(Egyptian)이라고 불렀다. 집시 자신들은 이집시언이라고 부르던지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던지 괘념치 않았지만 이집트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그럼 우리는 뭐냐?'라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아마 당사자인 집시들은 이름이 밥먹여 주느냐는 생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집시라는 말은 바로 이집시언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른바 두음소실 법칙에 의해 앞의 E 가 없어지고 Gyptian만 남았는데 이것이 진화를 거듭하여 Gipcian---Gipsy 가 되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는 집시를 아일랜드 여행자(Irish Travellers)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지만 나중에 설명키로 하자.

 

타자크스탄의 어떤 집시 여인 

  

집시라고 하면 사막의 베두인족들 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지만 예술적인 재능만은 다대하여서 기타와 바이올린같은 악기 연주를 기막히게 잘하며 춤도 놀랄만치 잘 추고 한편 미신적인 요소가 많아서 점이라고 하면 일단 집시 여인들을 생각하게 되고 게다가 도둑질을 잘하여서 유럽의 웬만한 도시에 가서 집시들로부터 소매치기를 당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좀 성생활이 문란할 뿐만 아니라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많아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 이런 불량성 집시들에 대하여 일반 사람들이 고운 눈으로 쳐다볼리는 만무하다. 중세로부터 온갖 핍박을 받아왔다. 더구나 집시들은 악마와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아서 스페인 등지에서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어 숱한 집시여인들이 화형에 처해졌다.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에 나오는 집시여인 아주체나의 스토리를 보면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히틀러를 만났다. 히틀러는 집시(로마 또는 신티)야 말로 이 세상에서 청소해야할 위생불량, 혈통불순, 생활문란, 경제파탄(주로 도둑질) 족속들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청소작업 시작했다. 아이히만이라는 인간이 로마(신티)와 유태인은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히틀러의 지시를 받아 대청소작업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나치 치하에서 애꿎게도 22만명이 넘는 유럽의 로마 또는 신티들이 온갖 고생을 당한 후에 대학살을 당하였다.이를 포라이모스(Poraimos)라고 부르는데 번역하면 Romani Holocaust 이다.

 

나치는 신티들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강제수용소로 보낸후 가스실에서 처리했다.

 

신티 출신으로 유명한 인물은 누가 있는가? 대부분 음악가이다. 가장 유명한 음악가는 아마 기타의 천재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일 것이다. 전통적인 댄스 홀 음악에 1930-40년대의 아메리칸 재즈를 융합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른바 '집시 재즈'의 원조이다. 신토 한셰 봐이쓰(Sinto Hans'che Weiss)라는 독특한 이름의 가수는 1970년대에 독일에서 집시음악을 담은 음반을 내놓아서 인기를 끌었다. 이 음반에는 Poraimos라는 제목의 노래가 들어 있다. 로마 사람에 대한 홀로코스트가 내용이다. 홀로코스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독일의 젊은이들은 이 음악을 듣고 그제서야 홀로코스트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명한 신티는 권투 챔피언 요한 트롤만(Johann Trollmann)이다. 신티 출신이라는 것이 발각되자 1933년에 나치분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슬로베니아의 신티 가수인 오토 페스트너(Oto Pestner)도 유명하다. 그가 구성한 New Swing Quartet는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A.C. Milan에 속하여 있으면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된 축구선수 안드레아 피를로(Andrea Pirlo)도 신티 후손이다. 영국 오스틴 자동차회사에서 나온 집시라는 차종은 나오자 마자 대인기를 끌었던 4륜구동 사파리차였다.

  

집시를 주제로한 뮤지컬, 코미디, 비극, 오페라, 오페레타 등이 많이 있다.  

                                     

집시를 주제로 한 오페라는 여러 편이 있다. 푸치니의 '라 보엠'은 별도이며 직접적으로 집시를 등장시킨 오페라로는 아마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 남작'(Der Zigeuner Baon)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1885년에 초연되었다. 이밖에도 스테픈 손트하임(Sephen Sondheim)의 오페라 '집시'(1959),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의 뮤지컬 '집시 레이디'(Gypsy Lady), 율리우스 베네딕트의 '집시 워닝'(The Gypsy Warning), 토마스 아르느(Thomas Arne)의 '리틀 집시'(The Little Gypsy)도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자전거 상표는 지탄(Gitane)이다. 집시여인이라는 뜻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프랑스에는 지탄느라는 담배가 있다. 집시라는 지명도 있다. 미국 미주리 주에 집시라는 마을이 있으며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도 집시라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1975년 워드 프로세싱 프로그램으로 나온 소프트웨어의 이름이 집시였다. 집시라는 단어를 이름에 넣은 사람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은 2차 대전중 미국의 방송연예인이었던 집시 로즈 리(Gypsy Rose Lee)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집시 출신이라는 것은 아니다. 집시 출신은 아니지만 샤키라(Sahkira)라고 하는 가수가 최근 집시 라는 타이틀의 음반을 내놓아 대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지나칠수 없는 사항이다.

 

샤키라의 집시 음반 커버